안타깝게도, 내가 이미 여러 미디어 장르들을 통해 알아 왔고 복습한 것처럼(싸이, 파-이-스-트-무-브-먼-트, 스크릴렉스, MA-1, 쏘로굿, 범람했던 재난영화들) 역시 한국인의 문화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 영화였다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그들의 저능한 기대치때문에 덩달아 부푼 마음과 기대로 영화를 보았다가 실망하여 왓챠에 낮은 별점을 매긴 사람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더 짜증나는 것은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라는 것. 적당히 눈치챌 수 있는 복선(영화 초반 아서에게 융통성 없음을 지적하는 해리의 모습 등)과 노골적이지 않은 재미있는 암시, 그리고 패러디들(두유워너빌더스노우맨 노크, "마티니, 당연히 보드카가 아닌 진으로, 오픈되지 않은 베르무트 병을 바라보며 10초 ..
남자는 발로 아무렇게나 차도 괜찮을만큼 녹슬고 얇은 철제 건조물, 여자는 덜 녹슨 은색 승용차 문 뒤에서 소변을 보는 풍경을 교대로 보여주며 개선 행진에서 들을 법한 음악이 자랑스럽게 깔린다. 그 뒤 자못 심각한 표정과 언어와 행동을 보이며 두 지긋한 중년 남녀가 싸우는 장면을 연출하지만 행진 음악은 의도적인 감상의 방해요소로 작용하며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건 영화 안의 또다른 영상을 어떤 복선으로써 보여주는 건가, 아니면 저들의 유치한 감정 표출 방식을 촌극처럼 느끼게 해주려는 도움장치인가, 그냥 아이러니한 연출일 뿐인가? 이 부부가 영원히 갈라서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화면의 구성과 연출은 그 장면이 지나간 몇 분 후에도 나를 벙하게 만들며 생각할 시간을 갖게 만들 정도로 다분히 오해 유발적이다...
스포일러 주의 상영 초반 5분이 채 지나기도 전 베인의 포스는 날 압도했다. 말 그대로 그냥 소름이 돋았다. 이전의 배트맨 코믹스나 영화에서 묘사되던 혐오스럽고 멍청한, 왜곡된 베인이 드디어 제 모습을 찾았구나 싶었다. 괴물의 앙다문 이를 연상시키는 마스크나 덩치에서 풍겨나오는 위압감, 나를 단번에 사로잡은 인상 깊은 목소리.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제대로 된 빌런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 위화감은 없었다. 예컨대 느와르같은 분위기가 내내 흘러 넘치는 영화에 뜬금없이 사랑 얘기가 나왔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자신의 부하를 추락하는 비행기에 남도록 하고, 실수 하나로 자신의 부하를 죽이는 것을 스스럼 없이 생각하는 악당이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는가? 오히려 나는 베인이 추구하는..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연옥과 림보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악인도 성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사후에 가는 장소라는 공통적 속성 탓에 림보의 한자식 표기가 연옥이라는 둥의 이음동의어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앨범 감상의 이해에 도움이 될 정도로만 구분하자면, 그 기간이 문제일 뿐 언젠가 죄를 씻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필연적으로 가게되는 곳이 연옥이고,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모든 것이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고통은 없지만 그렇다고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구원이 있는 것도 아닌 곳이 림보=고성소다. 음울한 비트가 배경이 되어,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허수아비]의 여배우 앨런 페니(Allan Penney)의 대사가 뒤이어질 이야기를 예고하는 전경이 되어 흐른다(Dead, It..
일찌감치 영국 BBC Radio를 비롯한 일렉트로니카/힙합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라디오 쇼들에서 소개되며 국내보다는 국외의 비트 씬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던 시모(Simo)와 무드 슐라(Mood Schula). 꽤 낯설어 보일 수 있는 이름을 가진 이 프로젝트 듀오가 국내의 마니아들에겐 물론 국외적으로는 세계 각국의 음악들을 소개하는 MTV Iggy에까지 소개되며 주목을 받는다는 건, 긴 글로 구구절절이 하는 긴 설명보다 이 앨범이 일단 음악성에 대해선 확실히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뮤지션과 앨범 이름, 그리고 수록곡을 사이 좋게 반씩 나눠서 담당한 시모와 무드 슐라의 [Mood Shula EP]는, 하지만 음악성 외에도 한국 힙합의 역사에 있어 새로운 시도와 그 가능성을 연 앨범으로써 주목해야만 ..
'스웨거'라는, 힙합에서 비교적 흔하게 다뤄지는 주제를 중심으로 스킷을 포함 총 12개의 곡이 큰 끊김 없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유일하게 스웨거를 다루지 않은, 외로움의 감성을 담담히 다루는 7번 트랙 "Lost"가 모난 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앨범의 주축인 두 뮤지션의 노련함으로 앨범 감상 중에 뜬금없이 나올 수 있었던 물음표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간 발매했던 앨범, 혹은 피쳐링을 통해 보여주고 증명해왔던 대로 둘의 랩 실력은 건재할뿐더러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을 삼키는 일 없이 잘 조화된 곡들을 차례로 선보인다. 비단 수려한 랩핑뿐만이 아니라 곡들 사이에 숨어 있는 센스있는 가사는 절대 쉽게 지나쳐선 안 될 요소들이다. 비트에 있어선, 도끼가 전곡 프로듀싱을 맡았기에 하나의 커다란 주제에 맞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