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reView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스포일러 주의

상영 초반 5분이 채 지나기도 전 베인의 포스는 날 압도했다. 말 그대로 그냥 소름이 돋았다. 이전의 배트맨 코믹스나 영화에서 묘사되던 혐오스럽고 멍청한, 왜곡된 베인이 드디어 제 모습을 찾았구나 싶었다. 괴물의 앙다문 이를 연상시키는 마스크나 덩치에서 풍겨나오는 위압감, 나를 단번에 사로잡은 인상 깊은 목소리.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제대로 된 빌런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 위화감은 없었다. 예컨대 느와르같은 분위기가 내내 흘러 넘치는 영화에 뜬금없이 사랑 얘기가 나왔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자신의 부하를 추락하는 비행기에 남도록 하고, 실수 하나로 자신의 부하를 죽이는 것을 스스럼 없이 생각하는 악당이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는가? 오히려 나는 베인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맹목적이라는 점에서 그가 가진 캐릭터성을 재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 것은 베인의 퇴장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거다. 작품의 최후반 십몇여분 쯤을 제한 작품 전체에 등장하고,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배트맨의 정체를 알아냈던 '그' 베인의 최후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캣우먼의 포 한방에 그럴싸한 데드신 하나 없이 바로 캣우먼과 배트맨의 참 멋진 협동작전으로 넘어가다니... 뭐, 개인적인 팬심이 작용한 억지일수도 있겠으나 이전까지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 배트맨 vs. 라스 알 굴, 배트맨 vs. 조커 하는 식으로 악역들이 한 명씩 배트맨과 대칭하는 식으로 등장했고, 또 그들이 주었던 임팩트를 생각해 봤을 때 아무래도 역시 아쉬운 건 아쉬운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배트맨의 대칭 악역의 최후라 하기엔 너무 허무하다.

여러 대가 등장하는 배트모빌과 인상적인 배트윙, 멋지게 바퀴 굴려주시는 배트포드가 한꺼번에 등장하고 비행기가 공중에서 뒤집혔다가 터지고 하는 화려한 액션에 비견해 후반 경찰들 vs. 수용소의 죄수들 격투씬에서 나온 베인과 배트맨의 격투도 다소 심심한 감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동네 아저씨들 싸움 같기에 영화의 성격을 더 잘 드러내주지 않았나 싶다. 눈에서 광선 나가고, 손에 거미줄 쏘는 기계 달고 빌딩 사이를 누비고 망치로 다 때려부수는 히어로를 원한다면 그 영화를 보면 되는거다. 그 평범한 격투씬은 배트맨이 초능력이 없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저 보통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줌을 넘어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나 이야기가 결코 실제 우리의 삶과 괴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치인 것이다.

탈리아 알 굴과 로빈 존 블레이크의 반전은 훌륭했다. 영화의 마지막, 로빈과 폭스, 그리고 알프레드를 교차하며 보여주다 확 터지는 마지막 세 번째 반전 역시 정말 훌륭했다. 배트맨의 퇴장은 그 수순을 바라보며 보는 내내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였다. 배트윙으로 원자로를 끌고 올라가기 전 자동비행장치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하는 부분이나 넌지시 고든에게 자신의 정체를 일러주는 장면, 그리고 도저히 탈출 할 수 없을 것 같은 망망대해에서 일어나는 핵폭발... 그리고 그것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복선도 무리 없이 이끌어내 마침표를 찍는 영화 최후반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짜릿하다. 진주목걸이는 영원히 분실물로 남아 캣우먼의 목에 걸려 있을 것이고, 폭스는 패치된 자동비행장치를 확인했다. 고든은 어릴 적 외투를 덮어준 꼬마가 수리한 조명을 보며 그가 죽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리고, "로빈" 존 블레이크.

다크 나이트 시리즈, 특히 마지막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며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교훈이 그저 선과 악의 대결, 영웅의 번뇌 따위의 흔한 히어로물에서 얘기하는 것만을 느꼈다면 영화 한번 더 보라고 해주고 싶다. 배트맨이나 고든, 블레이크라고 결코 선하게 나온 것이 아니고 베인이라고 무조건 파.괘.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나오지 않았다. 베인은 가슴 한 켠에 사랑을 품고 있었고 비록 현실의 한계때문이라고 했지만 고든은 거짓말로 도시를 지켰으며 배트맨 역시 완전하고 무결한 선이 아닌 정신적으로 무력하고 오만한 브루스 웨인이었다. 그런 선악이 모호한 캐릭터들이 지향하는 목적과 신념이 부딪혔을 때 어떤 모습이 나올 것인지, Rises 라는 단어가 영화 내에서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주목한다면 영화가 새로이 보여질 것이라 확신한다.

아울러 전작에 이어 한스 짐머가 맡은 영화 음악도 꼭 따로 들어보길 바란다. 요점 없이 횡설수설하면서 글 쓴 것 같지만 상관 없어... 쓴걸로 만족한다



오... 헐 위 사진의 베인 얼굴 가만히 보니까 얼굴에 박쥐모양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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