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reView

바그다드 카페 Bagdad Cafe, 1987



남자는 발로 아무렇게나 차도 괜찮을만큼 녹슬고 얇은 철제 건조물, 여자는 덜 녹슨 은색 승용차 문 뒤에서 소변을 보는 풍경을 교대로 보여주며 개선 행진에서 들을 법한 음악이 자랑스럽게 깔린다. 그 뒤 자못 심각한 표정과 언어와 행동을 보이며 두 지긋한 중년 남녀가 싸우는 장면을 연출하지만 행진 음악은 의도적인 감상의 방해요소로 작용하며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건 영화 안의 또다른 영상을 어떤 복선으로써 보여주는 건가, 아니면 저들의 유치한 감정 표출 방식을 촌극처럼 느끼게 해주려는 도움장치인가, 그냥 아이러니한 연출일 뿐인가? 이 부부가 영원히 갈라서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화면의 구성과 연출은 그 장면이 지나간 몇 분 후에도 나를 벙하게 만들며 생각할 시간을 갖게 만들 정도로 다분히 오해 유발적이다. 웃기면서 난해하게 만들어놨다.

한편, 건조한 사막 어딘가에 누군가 마시고 버린 음료수 캔처럼 덩그러니 놓여진 건물이 있다. 하지만 분명 사람이 산다는 흔적은 느껴질법한 곳이다. 무표정하고 이방인들에게 관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그 모텔, 주유소,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분노한다. '로젠하임'이란 글씨가 새겨진 커피 보온병을 줏어오자 버리라고 다그치는 아내를 향해 영원한 안녕을 말하는 남편. 사소한 이유때문이지만 그 뒤로 이들이 퍽퍽하고 삭막한 일상을 곱씹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수많은 금들이 한순간에 깨져버린 것임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이렇게 대치하는 두 이별은 승용차 문 뒤에 숨어 소변을 보다 졸지에 이혼하게 된 뚱뚱한 여성-야스민이 보온병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되어버린 브렌다의 모텔에 숙식을 하려 하면서 새 만남의 장으로 변한다. 그 뒤는 대강 눈치챌 수 있듯 각자 뚜렷한 인종, 외모, 성격,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부딪히며 동글동글해지는 휴머니즘을 그려내고 있다. 브렌다의 말 한마디에 치고 있던 피아노를 멈춰야 할 정도로 무력하고 앳되어 보이는 아들에게 책임져야 할 갓난 아기가 있다거나(이유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매번 파트너들을 바꿔가며 놀다 오는 브렌다의 양아치 딸, '나는 힙스터다'라는 걸 온 몸으로 표현하는, 이마에 반다나를 두른 멋진 할아버지 등이 피부색때문에 더욱 더 또렷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흑인 브렌다와 백인 여성 야스민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가벼운 대립과 평화, 그리고 절정의 위기와 가볍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결말을 구성한다.

나는 이 영화가 '죽기전에 꼭 봐야할 명작 XX선' 따위에 등재되어야 한다고는 절대 생각하진 않지만, 아무나가 쓴 영화 추천글에 '이 영화 명작이니 꼭 보세요'라고 성의없이 휘갈겨진 설명과 저화질 jpg 포스터와 함께 추천명단 어딘가에 올라와있어도 안 될 영화라고 생각한다. 고급스러운 영화는 아니지만 쉽게 생각하고 봐서는 안될 품격은 있다. 스토리 전개 방식이 급하고, 영화 전체적인 면에서 뻔하고 유치한 면이 적잖게 있지만 한 번 쯤은 보고 난 뒤 영화 속 각자의 입장 속에서 작은 역할극을 하며 일련의 장면들을 곱씹어 볼 만큼의 여유와 여지를 주는 영화다.

아래는 이 영화의 OST이자 어디서 한 번 들어봤을 법한 Jevetta Steele의 Calling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