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걱정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안 좋은 일이 닥칠까 걱정한만큼 막상 그 일이 닥쳐오면 대처법을 비교적 잘 떠올리고 부정적 정서에서도 금방 회복한다고.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또한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실적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Watkins, 2008)물론 병적인 걱정은 여러가지 부작용을 불러오지만 적당한 걱정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 중요한 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걱정할 것인지인데, 걱정해봤자 전혀 해결되지 않거나 비현실적인 일을 계속 걱정하는 건 좋지 않고 속으로 나름의 해결책을 마련해보는 등 걱정 해소 과정을 거치는 게 좋다고

누가 자기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하면 일단 그대로 믿으세요

미국애들이 은근히 자주 인용하는 마야 안젤루의 말 중에"When someone shows you who they are, believe them the first time."라는 게 있죠. 누가 자기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하면 일단 그대로 믿으세요. 정병이라 그러면 진짜 정병인거고, 불안정하다 그러면 진짜 불안정한것이라고 생각하고 대해야됨많이 하는 실수가 (아닌 척하면서)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그걸 가지고 거기에 더 깊은 레이어가 있을 거라고 착각하면서 상대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주는 거. 그럼 안됨. 나중에 사고 터졌을 때 저게 다 본인의 쉴드가 되기 때문에. ("나는 이미 경고 했다고!")"쟤는 자학적인 애라서 저런 말을 농담으로 한다" -> 그래도 일단 믿으라고. 문자 그대로.타인에 대한 평가는,..

장례식장에서

내친구 신랑도 내친구 죽었을때 장례식장에서 술먹고 웃고 떠들어서 난 저사람 돌았나 뭐하는 새낀가 그랬는데 뭔얘기 하면서 저리 신났나 들어보니까 우리 OO 그때 무슨옷 입었고 나한테 무슨 말했고 나랑 어디 갔었고 그런 둘만의 추억 계속 얘기하면서 혼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견디고 있었음내 기준에서 그사람이 우는 모습과 슬퍼하는 모습을 봐야 슬픈게 아니구나 그때 처음 알았고 견디는 슬픔도 있다는 거와 내 기준으로 사람을 보면 안된다고 느꼈다. 내 친구의 엄마가 돌아가셨을때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애한테 장례식장에서 니가 이렇게 슬퍼하지 않는거 보니 서운하다는 어르신이 기어이 내 친구를 울렸었다. 그 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버티고 있었는데 기어이는 쓴소리 하시고 가셔서 애를 울리셔서 내가 마음이 ..

언어가 가지는 힘

인공수정이나 난임관련된 병원의 부서를 독일어로 “Kinderwunsch”라고 한다. 대부분의 긴 독일어 단어가 그렇듯 두 단어가 합쳐서 하나가 되었다,“아이를/희망함”. 내가 평생 써온 나의 모국어로는“난임(難姙)”, 임신이 어려운 상태. 단어가, 언어가 가지는 힘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일본유전학회는 현재까지 사용하던 “우성” 과 “열성”이라는 용어를 “현성” 과 “잠성”으로 바꾸기로 결정. 교과서도 바꾸도록 문부과학성에 권고했다고 합니다. -글쓰기 클래스 중에 ‘억울하다’가 ‘나에게 무례하지 않기를 원한다’로 바뀌고, ‘서럽다’가 아니라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원한다’로 변화하는 과정을 목도한다. 서운함, 서러움, 억울함처럼 한국어 특유의 감정 표현은 아주 많은 것을 은폐시킨다.

PC가 언제 조롱 당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PC가 언제 조롱 당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PC는 탄생할 때부터 웃기는 애들이라고 맨날 농담의 대상이있던 개념임. 그리고 누누이 말하지만 "농담"은 공격성을 다루는 기술임. 모든 농담은 근본적으로 상대를 공격합니다. 즉 완벽하게 평등한 상태에서는 농담 자체가 성립하지를 않음. 그럼 PC주위자들은 어떻게 농담을 하나? 맨날 (뻔한) 백인/이성애자/남자를 까대잖아요. 즉 "PC는 농담거리가 되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하면서 지들은 맨날 너무 쉬운, 뻔한 대상만 타겟으로 삼아 농담을 하는 것임. 이게 또 웃기잖아. 스스로 비웃음의 무한동력을 가동하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아니 그러니까 "PC를 농담으로 삼지 말아라! PC한 농담을 해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니까 PC한 농담이 뭔가"에 대한 답..

우리는 어째서 성노동을 노동으로 바라볼 수 없을까?

우리는 어째서 성노동을 노동으로 바라볼 수 없을까? 일차적으로 그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낭만적 사랑의 개념에 심각하게 위배되기 때문이다. 가정이란 신성한 것이어야 하며 사랑은 순수한 것으로 남아야 한다. 그건 우리가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무언가다. 왜냐하면 가정을 통치하는 테크놀로지가 결국 국가를 통치하는 테크놀로지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수신제가어쩌고를 말하진 않겠고, 가정과 국가에 대한 지배의 모델을 두고 그리이스부터 시작되는 계보학적 접근도 하지 않겠다. 트위터에서라면 그건 거의 자명하다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적 모델은 결혼을 여자의 교환으로 보았는데, 우린 이를 두고 남성중심적이라 비난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그 사회적 '구조'가 '친족구조'에 의해 규명되고 있음을 살펴야 한다. 그렇다. 레비스트로스에겐..

히든 피겨스

정말 좋다. 이전의 이야기지만 오히려 더 나아간 이야기. 놀랍게도 보다 더구별을 빙자한 백인/유색인종 차별, 남성/여성 차별이 상식이던 시절인데 차별주의자들을 괴물처럼 그리지 않아서 좋았다. 그 차별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고 그 악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용기없고 어리석은 보통 사람일 뿐이니까세상이 더 나아지는 것을 막는 사람들은 고래적의 정신 나간 노예 농장주가 아니라 '화이트 온리 섹션에 유색인종이 들어오는 건 좀...','배울 학 자 아래 변에 계집 녀 자를 병기하는 건 좀...'하고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

취향

이젠 더이상 어떤 사람의 보여지는 취향만 보고 그 사람을 동경하거나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단순히 어떤 멋진 영화를 좋아하고 힙한 음악을 듣는다고해서 그 사람이 그 정도의 깊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소비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전시는 더욱이 아무나 할 수 있다.'어떻게' 그 영화/책/음악/아티스트/회화를 접하게 되었는지,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아무리 누벨바그 프랑스 영화를 보고, 뉴에이지 음악을 듣고, 마르지엘라를 입고, 비싼 전시를 다 보고 다닌다고 해도 그 사람 자체가 그런 취향을 누릴 정도의 깊이가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외국엔 Artsy fartsy, culture vulture란 말이 있어서 저렇게 사람 자..

순결반지

그래서 젊은이의 투쟁 수단이라는 게 비연애/비혼/비출산 같은 수동공격적 방법이라는 게 좀 괴상하지 않냐구. 좀 생각을 해봐. 아무리 억울이 시대정신이라지만...십대 애들이 자기 입으로 비연애/비섹스하겠다는 게, 순결반지, 순결사탕이랑 뭐가 달라. 그냥 같은 현상이 다른 언어로 정당화되고 있을 뿐이라고. 성인들이 그걸 잘한다 잘한다 그러면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성병, 임신이 결국 핑계란 소리 아녀. 생각을 좀 해봐. 그래서 10대 20대 백인 여성이 남자 HPV 감염율땜에 섹스를 포기하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게 그려지는지. 결국은 "안하는 게 더 마음 편한 상태"라는 게 (동)아시아적이라서 웃기고 슬프다는 거지. 결과적으로 엄마 말 잘 듣는 딸 되는... 그게 선택이고 자발적이라고 믿는 게 웃기고 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