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reView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인간의 감정을 주제로 다룬 영화를 볼 때, 보다 더 동요할 때는 소외나 외로움을 필두로 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전면에 나섰을 때고 연애나 사랑 같은 걸 다룬 작품엔 크게 감흥이 없는 편이며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한창 우울을 얼굴에 써놓고 다니던 사람들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 더불어 인생영화라고 떠들고 다니던 영화 중 하나인데 이제서야 보게 됐다.

이하 내용은 이 영화를 추천해 준 사람에게 두서없이 떠들던 걸 두서없이 정리함

 

조제가 너무 귀엽읍니다

 

일단 영화 속 착장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남주 피쉬테일이랑 할머니 더플코트, 조제의 거의 모든 옷들 다 좋았고 처음 관람할 때 좀 삐딱하게 바라보게 됐던 점이 '장애인 여성을 비장애인 남성이 구원한다'는 구도를 어디서 많이 본 적이 있고 이게 좀 혐오스러웠기 때문이다. 근데 감독이나 제작진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그런 걸 충분히 고려하고 고민한 흔적이 많이 났다. 섬세하게 접근한 느낌을 많이 받았고 나위무키 문서에 황진미 평론가가 "장애인에 대한 가장 올바른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라는 평을 써놨는데 뭐 아주 동의하는 바였다.

이 말을 하고 메모해두고 싶은 대사가 많았다고 썼는데 지금 다시 보면서 써놔야겠음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있잖아, 눈 감아봐. 뭐가 보여? / 그냥 깜깜하기만 해.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 왜?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 그랬구나. 조제는 해저에서 살았구나.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 외로웠겠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앞에서도 썼듯 외로움의 정서가 극대화될 때 감명을 정말 크게 받은 것 같네. 근데 어떤 감정을 다루든 담백하다, 또는 정적이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가 괜찮기는 했다. 초반에 둘이 섬 탈 때의 미묘한 손잡음이나 연근요리 먹여주기로 호감을 표시하는 것, 이별이 임박했을 때 네비게이션을 끄는 행위 같은 것들로 감정선을 표현하는 것 등등

영화 마지막에 조제가 고등어를 요리하고 풀썩 쓰러지는데 이게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닌다'는 표현 그대로인 것 같아서 좀 재밌었고 정말 그런대로 나쁘지 않게, 담담하게 살아가는 조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은 결말 선택이라고 생각하였다. 의존적일 수 밖에 없는 여러 환경속에 놓여있고 외로움을 알게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속내는 강인한 멋진 인물이란 걸 깔끔하게 잘 보여준 것 같음

뭐 이런 것들 말고는 크게 감흥받은 게 없어서 적을 것도 없다. 제목만 알고 어떤 내용인지는 아주 조금 궁금해하던 영화를 마참내 보게 됐다는 데에 의의를 둘 수 있는 정도. 그래도 전체적인 내용을 두고 점수를 준다면 꽤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함. 그래서 제 점수는요

4/5…인데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이 다음 작품인 <메종 드 힘있고>가 점수는 더 낮지만(3점) 나한테는 좀 더 재밌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영화였음. 이것도 대충 적어놓은 건 있는데 나중에 안 귀찮으면 적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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