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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 루즈 Moulin Rouge!, 2001


우리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는 것


사전 정보 없이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어떤 영화인지를 보면서 알아가는 편. 초반의 빠른 카메라 무빙이나 현대 곡을 믹스업해서 부르는 걸 보고 가벼운 성격의 뮤지컬 영화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한 러브 스토리를 소재로 삼은 것도 그렇고, 잊을만 하면 나오는 머머리 유머도 그렇고 일반적이지 않은 뮤지컬 영화 장르를 대중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잘 타협했구나 싶었다. 다만 그래서 어느 정도 이상의 진중함은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무척 깊은 주제를 무리 없이 잘 다뤄서 놀란 영화였다.


영화 내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대사이자 노래 가사, 마지막 대사를 장식하기도 한 영화의 주제인 '우리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는 것'. 즉, <물랑 루즈>의 러닝타임은 이 주제를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등장하는 자유분방한 크리스티앙 일행의 모습이나 보헤미안 같은 이미지 vs. 물랑 루즈, 다이아몬드를 사랑하는 새틴, 탐욕스러운 지들러 같은 전형적인 이미지들을 대립시켜 낭만주의적 관점으로 무작정 몰아붙이는 식으로 관객에게 납득시키려나 했는데 전혀 그게 아니었다. 사랑과 그 안에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설레임, 간절함, 질투, 분노, 후회 같은-들을 상당히 밀도 있게 순차적으로, 때론 교차적으로 그려내고 그로 인한 결과(주로 희생)를 여러 면에서 조명한다. 극한의 상황 속에 인물들을 밀어넣고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예컨대, 공작의 자본과 지들러의 이해관계가 관여된 '물랑 루즈 내에서의 연극'은 크리스티앙 일행이 준비하던 연극과 1도 상관이 없지만 그 안에서 결국 그들이 부르짖는 보헤미안 정신은 체제 전복이나 저항 정신을 더 돋보이게 하는 극적 장치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은 결국 크리스티앙의 분노와 질투, 새틴의 거짓말, 재회와 영원에 대한 바보같은 믿음 따위를 당연히 숭고하게 여기게 만든다. 사랑만큼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위대한 업적은 없다고 믿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뭐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납득했음.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여러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로맨스라는 소재 자체가 지루하게 보이기 쉬운데 그걸 진부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 그런 일련의 모습들을 숨가쁘게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뮤지컬 영화의 흐름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점에 너무 감탄했다. 마지막 원고 장면에서 forever. 라는 단어 뒤에 The End.로 마무리되는 장면까지… 마지막까지 깔끔하고 완벽하게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대부분이 다 좋았지만 역시 가장 좋았던 건 [El Tango de Roxanne]가 흘러나오던 장면. 여담으로 이 곡은 The Police의 [Roxanne]를 Mariano Mores의 [Tanguera]와 믹스업한 곡이라고 한다. 크리스티앙의 질투와 분노, 초조함, 그렇지만 사랑 같은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현란하지만 절제된 카메라 무빙과 각도, 조명, 노래, 춤을 완벽하게 결합해서 표현해낸 씬이라고 생각. 그냥 예술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Lady Marmalade]에 대해서도 꼭 얘기를 하고 싶은데 일단 곡 자체가 지금 들어도 너무 세련됐고 뭐 나처럼 영화는 몰라도 이 곡은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주제랑 가장 밀접한 곡이라 의미도 있고?¿



최초로 녹음된 건 작곡가인 Kenny Nolan이 보컬로 참여한 그룹 The Eleventh Hour의 데모 버전이고 그 뒤에 Labelle이란 그룹에 의해 녹음된 버전이 우리가 아는 곡과 느낌이 더 흡사하다. 데모와 Labelle 버전 둘 다 제각각 매력 있어서 좋음

크리스티나 아기를내놔, 릴 킴, 마이아, 핑끄가 부른 버전은 라이브 퍼포먼스들이 엄청 좋은데 올리기 귀찮으므로 생략한다.


뭐 이거 외에 분명히 아는데 제목은 모르는 곡 중 하나인 [Because We Can]이나 [All You Need Is Love]라든지 하는 이미 익숙한 곡들을 영화에 맞게 재해석해서 OST로 실었기 때문에 눈뿐만 아니라 귀도 즐거웠던 영화였읍니다….

아 그리고 나는 당연히 대역 쓴 줄 알았는데 곡들 전부 이완 맥그리고랑 니콜 키크드먼이 직접 불렀다고 한다. 이완 맥그리거 고음이랑 니콜 키드먼 미모 실화냐?




4.5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