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소한,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는, 안내를 맡은 아르바이트를 탓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입구와 출구를 헷갈리게 만들어놓은 기획자를 탓해야 할까, 이번 관람의 사전 지식이 부족한 자신을 탓해야 할까.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지나왔는데, 검표만 하고 들여다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아르바이트는 익숙한 듯 그렇게 하시라고 말하고, 기계로 표에 작은 구멍을 냈다. 한 번 입장했으므로 다시는 이 표를 사용할 수 없다는 표시다.
기획자를 탓하고 나니, 온도차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도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이대로 밖에 나가면 아까 그 곳이 좋았지, 하고 후회할 게 뻔하지만 일단은 지금 당장 추웠으니까. 살갗이 드러난 곳마다 에어컨 바람이 덮는다. 겨울 바람과 그 냄새처럼 유쾌하지도 않다. 저 사람만큼은 안 춥겠네. 옷을 입었다기보다는 옷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사람의 그림을 보고 작게 조롱하듯 읊조린다. 뭉치마냥 두터운 패딩을 입었고, 패딩에 달린 모자를 쓴 것도 모자라 끈을 잔뜩 조여 창백한 얼굴만 빼꼼 나와 있는 사람.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얹은 벌판에 지나가는 관람객들을 쳐다보며 멀뚱히 서 있는 사람의 그림. 별로 좋은 그림 같지는 않다.
<your essay, 2015, 캔버스에 유채. 95x174cm>
2. 계속 회랑을 지나가고 있노라니, 당혹스러운 웃음이 배어져 나온다. 차곡차곡 쌓인 것처럼 줄을 지어 자신이 들어온 곳으로 지나가, 나가는 사람들. 누가 역주행하고 있는 걸까?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면서도, 혼자만 거꾸로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가늠되기에 나온 웃음이다.
이번에도 글러먹었군, 생각한다. 주어가 이번 관람인지, 자신 그 자체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한번 본 그림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관람하기는 했다. 휴게 공간이자 포토존은 황급히 지난다. 자신에게 아무도 아닌 사람의 사진 속 풍경이 되는 것은 싫다. 다른 사람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은 교만은 아니지만, 최소한 조연이 되는 것은 싫다는 적당한 욕심 때문이다. 자신을 쫓아오는 듯한 가지각색의 셔터 소리. 아무도 아닌 누군가. 나는 이런 게 좋아서 여기 온 건가?
3. <gas, 2015, 캔버스에 유채, 90x168cm>
제대로 들어왔다면 가장 처음 봤을 그림이다.
낡은 양피지를 입에 문 파랑새,
그 뒤로는 배경 대신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eusdosktaakeksvosta
eksmostavoosphuistt
egjaakmusttegjaamus
taazxocxoxovisfueil
utjanastoitjanastoi
momostoiprestueigog
egustoxoxingllapsto
pfresttexoxingllapb
oostopfresttegustoi
qsgustogustomobustt
egehasgusmusktaaksd
jaakmustaazsdgjaaks
ttedjaaksmustdjaaks
ttedjaaksttenegusto
ekgustonegustoekgus
tochevlunkcstotalka
boutsteezekgustogus
tolovegustoloveaisr
gnaa
좋다. 입 사이로 무심코 비어져 나온 마음에 깜짝 놀라 빠르게 입을 다문다. 한참 동안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런 그림이 입구에 있으면 입구부터 막히겠네,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말이야. 당연히 입구 쪽은 한산하다. 저마다 각기 다른 그림들을 쳐다보거나 출구에서부터 시작된 줄을 이어 지나가고 있다. 입구로 나가기 전, 뒤를 돌아본다. 새벽 빛을 한 테셀레이션 패턴의 바닥. 의도적으로 뼈대를 드러낸 어두운 천장에는 전등 위로 검은색의 전깃줄들이 각자를 스치거나 함께 어디론가 지나가고 있다. 벽은 하얗지만 눈이 와서는 아니다. 춥다. 남는 마음이 있지만 그것은 분명 아쉬움은 아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기 때문에, 장막을 걷고 나가면 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밤은 내일이라는 미래를 기다린다. 기다리면, 미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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