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endra Banhart / Ape in Pink Marble (2016)
패션고자의 길을 걷고자 강제 다짐한 지 몇 개월이 되었지만 이 뮤지션의 이름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디매빨 옷 브랜드 <반하트 디 알바자>였다. 별로 좋아하는 브랜드도 아니니 헛소리는 한 문장으로 집어치우고, 이 사람이 <Ape in Pink Marble>에서 제시하고 있는 프릭 포크라는 장르는 2012년 이후로 활동이 없는 cldscp로 가볍게 접한 바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고 오히려 심심하다는 인상을 대체적으로 받았던 기존 포크 장르를 흥미롭게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물론 이를 관문 삼아 정통 포크를 들을 생각은 전혀 없다). 이 사람이 프릭 포크의 흐름을 이끌어 온 대표주자라고 하니 도대체 프릭 포크 장르가 어떤 규격인지 궁금하다면 한 번쯤은 들어봐도 좋겠다.
Top Three Tracks *선호도 순임. <트랙넘버. 이름>으로 기재함.
10. Saturday Night
노래만큼이나 아늑하고 아찔한 날씨 너무 좋다 저기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6. Fig in Leather
13. Celebration
Pomo / The Other Day (2014)
캐내다 출신으로 HW&W(Huh What and Where) 레이블 소속이며 같은 소속의 KAYTRANADA나 Ta-Ku처럼 '듣기 좋은' 음악을 '잘' 만든다. 신디사이저 기반의 일렉트로닉 훵크로 대충 색채를 정의할 수 있지만, 레이블처럼 본인도 다양한 색을 추구하려고 노력은 하는 듯 하다. 결과물이 몇 없어도 굉장한 인지도가 있는 실력파이며 몇 번 내한한 적도 있다. 8번 트랙 [Distant Luvver]로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됐는데 여전히 애낀다.
Top Three Tracks
8. Distant Luvver
5. On My Mind
1. So Fine
The Flaming Lips / Oczy Mlody (2017)
앨범 제목 <Oczy Mlody>는 폴란드어로 (4번 트랙의 부제이기도 한) Eyes of the Young이라는 뜻인데, 사실 이것은 앨범 제목을 정확히 설명해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마구잡이로 생각하다가 어디선가 주워 들은 단어 중 하나를 떠올린 건데 찾아보니 그러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라고 하며, 'Eyes of the Young'이라는 뜻이 자신들에게 강하게 어필한 것은 맞지만 타이틀의 본 의미는 아니라고 한다. 그냥 Oxy(Oxycodone) Melody와 어감이 유사해서, 미래에 만들어질 약물의 이름 같은 어감이 좋았다고….
비틀즈 트리뷰트 앨범인 '14년작 <With a Little Help from My Fwends>를 제외하면 '13년 <The Terror> 이후의 정규 앨범인데, 무슨 영향을 받았는지 몰라도 앨범이 많이 유해졌다는 느낌이다. 난해한 워드플레이와 사운드 진행에서 느끼는 그들 특유의 감각은 여전하지만, 확실히 많이 듣기 편해졌고 [The Castle]같은 경우는 너무 편하고 좋아서 일단은 내 1월 베스트 트랙이다. 뮤비도 최고
Top Three Tracks
10. The Castle
7. Almost Home (Blisko Domu)
5. Nigdy Nie (Never No)
Ratatat / Magnifique (2015)
일렉트릭 기타를 끼얹은 것이 특징인 일렉트로닉 듀오. '10년 <LP4> 이후 5년만의 정규인데 역시나 아주 좋음. 절대 질리지 않는 기타 리프와 멜로디라인. 춤 추는 음악 싫어하는데 그냥 고개 끄덕거리면서 듣기에 아주 좋다. 그냥 평이하게 좋아서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Top Three Tracks
2. Cream On Chrome
8. Nightclub Amnesia
9. Cold Fingers
Max Cooper / Emergence (2016)
Brian Eno, Aphex Twin, Amon Tobin등을 위시한 앰비언트 장르는 내 취향이 아니라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사실은 지금까지 그냥 듣고 싶지 않아 하던 것이었다. 역시 IDM은 위대합니다…. 사실 즈즈지증우우우웅 하는 행성소리만 있었다면 여전히 듣고 싶지 않아하고 있겠지만 그를 처음 접한 곡 [Waves]는 그저 듣고 지나치기에는 아쉬움 이상으로 괜찮았고 괜찮음 이상으로 훌륭했다. 이건 어쩌다 알게 된 거지만 Kevin McGloughlin이 제작한 [Waves] 오피셜 비디오@유튜브는 앨범에 수록된 것보다 1분 정도가 짧고, 곡 막바지에서 페이드아웃되는 부분이 급하게 잘려져 있다. 원곡이 상대적으로 러닝타임이 길다 보니 긴 영상은 쉽게 패스하는 사람들의 니즈에 맞췄거나 비디오를 끝까지 만들기가 힘들었거나.
트랙리스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관념적이고 현학적이고 상징적인 단어들로 네이밍이 되어있다. 일례로 8번 트랙 [Impermanence](비영속성)와 11번 트랙 [Unbounded](영속성)가 대칭(Symmetry)을 이루고 있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라 앨범 타이틀이기도 한 <Emergence>라는 제재를 중심으로 전체 트랙들이 어떤 것은 느슨히, 어떤 것은 타이트하게 하나의 유기물처럼 공전하고 있다는 이미지가 느껴진다.
그냥 생각 없이 넘어가기는 싫고, 구글링이나 네이벙(? 이 단어 맘에 드네 앞으로 써먹어야겠다)해서 남의 의견 줏대 없이 짜깁기하기는 더 싫어서 철저히 주관적으로 해석해봤는데 세상의 모든 생명을 이루는 가장 원초적인 부분인 DNA 형태를 하고 있는 앨범 아트웤, 그리고 Emergence라는 단어의 의미로 유추해보면 이 앨범은 우리의 최초인, 우주라는 순환하는 세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공전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부터 이런 이미지가 어렴풋하게 떠오르기는 했다.
이야기는 총 두 개의 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1번부터 6번까지가 1부, 7번부터 11번까지가 2부다.
1부
우주는 아직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과 형태가 아니며,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결합된 어떤 세계(Seed) 속에서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Symmetry). 하지만 Kathrin deBoer의 보컬은 이 평화는 언젠가 깨어질 것임을 비관적인 에코로 예고하며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어떠한 자극에 의해 세계는 폭발하고 회오리치며 우주로써 팽창한다(Waves). 빛보다도 빨리 팽창한 나머지 우리가 출발한 곳은 저 멀리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빛의 점이 되어버렸다(Distant Light). 그저 폭발하기만 하는 원시의 세계에서 원자들은 결합하고 지금의 우주를 이루는 물질들로 재탄생하며, 파괴 속에서 질서가 탄생하는 이 광경은 가히 하나의 신화라고 할 만 하다(Myth, Order from Chaos).
2부
7번 트랙은 이러한 장엄한 과정이 사실은 수없이 탄생하고 소멸해가는 다중우주 중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고, 결코 위대한 연대기가 아닌 개인사와도 같음을 상기시키며 우주가 처음 탄생하던 때로 우리를 되돌린다(Cyclic). 하지만 이 앨범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우주는 빅 프리즈나 빅 크런치에 의해 끝장나지만(Impermanence), 그것 역시 오래 전부터 있었던 원칙, 질서에 의해 예견된 것일 뿐이며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부가 아닌 전부라고 해도,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결코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우리를 위로한다(Trust, Organa, Unbounded). 파괴 속의 질서, 질서 속의 파괴. 덧없어 보였던 것은 사실 영원한 것이었고 이것은 처음 맥스 쿠퍼가 제시한 균형(Symmetry)에서부터 시작한 대칭적 순환이었을 뿐이다.
아니(No)면 말고.
Top Three Track
3. Waves
6. Order from Chaos
7. Imperman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