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umc by pcroom11

▒힙합은 전복적 기능의 언어유희다▒


흑인비평가 게이츠는 힙합을 두고 문학적 비평용어로서 정립한 시그니파잉의 문화를 음악화한 것이 바로 정의한적이 있습니다.


시그니파잉이라는 개념은 구조주의 이론에서 사용하는 의미와는 별도로 언어유희를 통한 수사적 전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흑인비평용어로 이해할수 있는데 이 개념은 흑인 엔터테이먼트 문화의 본질이자 흑인들의 민족적 성향을 엿볼수 있는 중요한 의미로 해석되어 지고 있죠.


실제 DJ의 토스팅 기법에 시그니파잉이라는 흑인미학을 적극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하면서 탄생한 음악이 바로 힙합이였으며 이것은 곧 힙합의 아이덴티티의 근간을 이루는 정서였다고도 할수 있습니다.


랩이 재즈의 스캣이나 스포큰워드의 운문성을 토대로 생겨났다는 설이 있는데 저는 거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음조직이나 음의 전개의 유사성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나타날수 있거든요. 사실 빈민가 흑인들에게 라임은 문학이 아니라 그냥 말장난거리나 할수 있는 양식일뿐이였습니다. 게이츠나 베이커같은 학자들이 힙합의 라임을 흑인들의 시그니파잉에서 찾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힙합에서 말하는 격조있는 가사는 문법이 정확하거나 문학적인 가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적인 가사라도 시그니파잉. 즉 전복적인 기능의 언어유희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힙합가사로서는 빵점이 될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런디엠씨도 그랬고 퍼블릭에너미도 그랬고 N.W.A도 그랬고 나스, 투팍, 비기, 제이지, 에미넴까지 모두 다 이런 힙합의 정서를 바탕에 깔고 가사를 쓰고 랩을 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힙합이라는 문화가 그랬고 그것이 힙합이 음악장르로서 정체성을 확립할수 있는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기표와 기의 관계 파괴를 통한 자유연상▒ 


제가 가장 궁금한건 왜 랩을 들으면서 한국어의 일반문법 파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가 입니다. 시문법과 랩문법은 일반적인 언어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정도의 의미의 동일성 내지는 유사성만 담보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일반문법을 파괴한 시문법조차 청자가 받아들이는 정보처리에 도움을 주기위한 목적도 동반되어 있다고 보거든요. 수용된 의미가 사전적인 체계에서 수용된 표층적인 의미인지 시적체계에서 수용된 심층적인 의미인지에 따라 반응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니깐요. 저는 오히려 그러한 문법이 극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보고 있습니다.


랩은 정해진 메트로놈과 박자 마디안에서 메세지를 풀어내야합니다. 중요한건 마디가 넘어갈때 청자들의 정보처리에는 혼돈이 생기기 쉽다는 겁니다. 그래서 최대한 마디단위를 중심으로 의미의 완결성을 두려고 합니다. 일반문학과 랩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땜방으로 김현철의 동네를 불렀다. 나는 그 노래를 라디오에서 들었다" 라는 평범한 일반문법에 더욱 쉬운 이해를 위해 극적인 효과를 준 형태가 "누군가의 땜빵으로 내가 불렀던 노래. 그건 바로 Radio에서 들었던 김현철의 동네였다" 거든요. 둘중에 어떤게 문장 이해가 더 한눈에 들어오나요? 여기서 불필요한 조사등을 빼버린게 일반적인 한국어랩의 문법이라는거죠.


마찬가지입니다. 랩은 문학이 아니고 정해진 메트로놈안에 메세지를 이해시켜야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청자들은 기본적으로 마디에 중심을 두고 문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디별로 의미를 끊어줬을때 더 빠른 이해를 할수 있다는거죠. "벌써 담배 맛을 아는 형들이 알려준" 으로 이미 청자들의 정보 처리는 끝나요. 


"질 나쁜 동네형이 나에게 알려준게 있다."라고 간단하게 정보를 처리해버리는 거죠. 그리고 나선 그 다음 덩어리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돈이 없어도 Jordan 가질 수 있는 법" 그리고 다음 덩어리 "혹시 들켜도 어른들 속이고 튀는 법" 청자들은 마디를 기준으로 간단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질 나쁜 형이 알려준건? 물건 훔치는법, 그리고 들켜도 도망치는법 이라고 말이죠. 랩을 들으면 청자들은 마디 덩어리별로 정보를 처리하려는 습성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는 거죠.


오히려 "벌써 담배 맛을 아는 형들이, 돈이 없어도 Jordan 가질 수 있는 법과 혹시 들켜도 어른들 속이고 튀는 법을 알려 주었다" 라고 하면 오히려 정보처리가 늦어질뿐 아니라 극적인 효과가 무뎌진다는 겁니다. (꾸며주는 관형사와 꾸밈을 받는 명사는 문장 속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어떤 관형사가 어떤 명사를 꾸며 주고 있는지 추적하기 곤란해지거든요.) 이 의견은 마디나 템포의 제한이 없는 문학에서나 먹히는 의견이지 마디를 중심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랩음악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랩은 시 아니예요. 문학? 아닙니다. 시에서 유래되었고 문학적인 요소가 내포 되었을지언정 랩은 그냥 랩이예요. 그냥 음악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러한 랩의 문법이 랩양식에 맞게 변형,발전된 형태로 보거든요. 왜 식상한 일반문법의 표현력에 목을 매는건지 랩가사는 충분히 일반문법의 기표나 기의를 파괴할수 있고 거기서 더 극적이고 다양한 표현이 파생될수 있는데 말이죠. 지금도 힙합식의 재밌는 혹은 기발한 표현이 많습니다. 저는 그것 자체가 일반문법을 파괴함으로서 나올수 있었던 표현법이고 그러한 문법을 랩의 문법으로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겁니다. 그게 다른 문학과 구분되는 힙합만의 매력이 될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영어혼용은 개인의 스타일일뿐이지 랩의 문법이나 방법론과는 전혀 관계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레발과 허우대뿐인 애들이 음악이라고 그 동안 내놓은 껍질만 예쁘게 꾸민 그런 역겨운 소음 듣고참느라 수고들 많았어

잘난 체 가사는 이제 자제하기로 했었지. 쭉 이러다간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는 사막에서 혼자노래하는 꼴 나겠어.

온갖 경고와 걱정의 말들이 들려왔지. 뭐 대단한 위기에 봉착했던 건 아니였지만 신기한 게 몇 장의 앨범을 거치며 단계적으로 바뀌는 나를 보게 됐어.

가짜들에게 무자비하게 독을 뱉어내던 내가 서서히 변해가고 숨어서 씹던 애들 다 딱한 인생이란 걸 알게 되고 많이 생각하게 되었지. 

날 둘러싼 딱딱한 껍질은 파괴되었지. 이게 성장이라는 건지는 잘모르겠지만 이게 또 음악에 배었지. 하긴 많이 배웠지 


위에 버벌가사보면 일반문법을 많이 훼손하지않은 가사도 많아요. 하지만 저는 이런 가사보다 좀더 랩음악의 특성에 맞게 변형된 힙합 특유의 문체와 문법을 좋아한답니다.^^ 



ps. 


연,고대는 좋은 학교 일까요? 송유근은 천재일까요?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한 보편적인 사고로 연고대는 좋은 학교고 송유근은 천재라고 할겁니다. 그리고 대다수가 인정하는 보편적인 사고는 곧 정설이 되어버리죠.


힙합의 보편적인 사고는 라임이 있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해왔고 지금도 다들 그렇게 하고 그렇게 발전해 왔습니다. 더이상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정말 '인간은 모두 죽는다'나 '바다의 주성분은 물이다'처럼 모두가 동의할수 있는 불변의 진리를 원하시는건가요?? 그렇다면 예술에 대한 모든 토론자체는 그순간부터 무의미 해지는겁니다.


제가 유엠씨의 반감을 가지는건 단 한가지 입니다. 그의 방법론 인정할수 있습니다. 뻘짓인건 알지만 저는 반대 안합니다. 실험은 자유니깐요. 그리고 저는 대인배니깐요. 다른사람이 사기당해도 나만 아니면 되는거니깐요. (죄송! 농담임ㅎ)


그런데 그 방법론은 유엠씨라는 사람이 힙합이라는 음악을 뿌리에 두고 연구한 새로운 방법론일 뿐이지 힙합의 근간을 흔들수 있는 전통에 대한 실험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니깐 왜 계속 유엠씨의 방법론이 기존의 랩방법론과 결부가 되는지 왜 그로 인해서 힙합 본질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야 되는지 왜 그런 이슈화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지 저는 이해할수가 없다는 겁니다. 


힙합을 새롭게 해석하는것에 대해선 어떤 제약도 있을수 없고 누구라도 자유롭게 실험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통에 대한 훼손은 1g도 용납될수 없는겁니다. 


자신의 방법론을 만드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것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정통적인 방법론과 연결시키고 결부시키면 안된다는 겁니다. 철저히 자기 영역안에서만 실험하라는 말입니다. 


황병기라는 전통음악가가 있는데 이분은 정통파 출신이지만 서양음악의 작곡개념을 통해서 화성적 요소를 가야금 곡에 도입하는 등 전통음악의 퓨전화를 시도하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국악의 음조직은 5음 음계적인 틀안에서 계면조,평조,우조 세개의 조로 구성되어 있고 국악 선율의 특징 중 하나는 농현을 한다는 것과 화성이 없다는점인데 황병기님은 음조직에 있어서 전통적인 5음계를 주요 구성음, 리듬구조에 있어서는 전통음악장단을 지키면서 서구 화성적 요소까지 전통음악에 도입했고 이 시도는 전통음악 범위를 확장시켜놓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중요한건 새로운 확장이지 전통의 근간을 바꾼게 아니라는 겁니다. 황병기 님이 이제 국악의 전통은 화성까지 포함한다. 라고 했다면 문제가 있었겠죠.


랩은 라임이다라는 의견이 나오면 지나가던 아무개가 아무런 생각없이 한마디 합니다. (실제로 봤던 리플입니다.)


왜 님들이 만든 잣대를 가져다가 힙합을 끼워맞춥니까? 본토에서 그렇게 하니깐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되나요?ㅋㅋ 한국사람의 정서가 다르고 대가리수가 다르도 땅어어리가 달라도 본토에서 그렇게 하니깐 그냥 따라해야 하는건가요??ㅋㅋ (마무리는 꼭 ㅋㅋ로 함) 


부가적인 설명은 넘기고 비슷한 예로 지금 상황을 정리하겠습니다. 


미국의 흑인이 드럼비트에 서구의 성악발성법으로 노래하는데 판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옆에 백인친구가 "판소리는 기본적으로 기식성음인데 니가 하는거랑은 발성법 자체가 달라"라고 설명하죠.


흑인이랑 백인이랑 한창 논쟁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라티노가 백인에게 한마디 던지고 사라집니다.


"왜 님들이 만든 잣대를 가져다가 판소리를 정의 하는 겁니까? 한국에서 그렇게 하니깐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되나요?ㅋㅋ 미국사람의 정서가 다르고 대가리수가 다르도 땅어어리가 달라도 본토에서 그렇게 하니깐 그냥 따라해야 하는건가요??ㅋㅋ (마무리는 꼭 ㅋㅋ로 함)


예술에 작가의 중심사상과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이라는 그릇이 없다면 이는 예술이라 일컬어 지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예술은 시공을 초월한 공상적인 소재와 주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것이 역사와 시대와 경험의 산물인 만큼 저마다 나름대로의 역사성과 양식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니깐요.


위에 판소리 예는 한(韓)민족의 역사와 전통의 형식을 가지고 미국인들이 지들 마음대로 지지고 볶고 싸우고 있는 광경을 묘사한겁니다. 명창 성우향 선생님이 기식성음을 얻기위해 목에서 피를 토했는데 미국인들이 "그렇게 안해도됨"하고 지들 마음대로 한국문화의 정의를 갈아 치우면 피까지 토한 성우향선생님 얼굴은 당연히 창백해지겠죠.


마찬가지입니다. 랩이 토착전통의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수 있는 흑인들의 뛰어난 언변, 즉 시그니파잉의 미학을 예술적 가치로 까지 끌어올린 흑인문화란걸 상기해 본다면 한국에서의 라임논쟁은 감히 무례하고 주제넘은 논쟁이라고 말할수 있는겁니다.


흑인토착음악을 기반으로 언어유희를 통한 수사적 전략을 극대화한 랩방법론은 기법상의 탁월함과 (흑인)문화적인 감수성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서 스스로 존재가치를 증명해 냈습니다.


결국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80년대 정립된 신흑인미학[New Black Aesthetic]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랩이 논의될수 있었던건 힙합도 역시 민족적 정서와 역사가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며 그에 따라 고유의 어법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거죠.


"그것을 누가 정의했는데?" 라고 아무 생각없이 말을 던기전에 자신이 그 문화에 대한 소양을 어느정도를 갖추고 있었는지를 먼저 되돌아보길 권합니다. 저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겠습니다.


사실 유엠씨 음악에 대해서 하고 싶은말이 많은데 다음에 해야겠네요. 방전됐거든요.ㄷ















글을 분해해가면서 토론하는 방식 별로 안좋아합니다; 여튼 전체적으로 제 글을 잘못 이해하시고 분해하신거 같아서 다시 쓸게요.


시그니파잉이라는 흑인특유의 유희적 언어습관을 언급한건 랩의 근본적 정체성에 대한 담론을 위해서 였습니다. 시그니파잉?? 쉽게 말해 그냥 말장난입니다. 영미권에 들어온 흑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라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시그니파잉의 정서를 발산했던거죠.


앞서 말했지만 흑인비평가들이 랩의 근간을 흑인들의 언어습관인 시그니파잉에서 찾았다는건 적어도 흑인들에게 라임의 의미는 시문학의 운문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기 보단 언어유희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져 있었다는걸 뜻하는 겁니다. 흑인들이 라임을 소구하기 시작한건 운율의 필요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그니파잉. 즉 언어유희의 필요성으로 인해 시작 되었다고 보는 거죠.


여기서 의견이 갈리는 거예요. euronymous님은 랩의 형식미의 완성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재즈의 스캣과 스포큰워드의 운문성이 있다고 했지만 저는  DJ들이 리듬에 맞춰 떠들어대던 토스팅기법과 흑인들의 유희적 언어습관이었던 시그니파잉에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제 글을 하나씩 뜯어가며 엉뚱하게 해석하신 게 많은데 랩의 형식적인 인접성에 대한 답변은 바로 위에 벌써 나와 있습니다. 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68년도에 발매된 멜빈 밴 피블스(Melvin Van Peebles)의 [Brel soul]이라는 음반을 필히 접하게 될겁니다. 언어에 기반을 두는 랩의 형태가 조금이나마 나타난 최초의 음반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그 음반에서 들을수 있는 애드립은 사실 재즈의 스캣보다 자메이카 DJ들이 리듬위에 뱉어내던 토스팅의 형태에 더 가까웠다는 겁니다. 님이 제기하신 형식적 인접성에 대한 답변이 어느정도 됐을꺼라 생각합니다.


재즈의 스캣을 보면 D,B,Y,L등의 자음과 A,E,I,O,U의 모음을 함게 사용하는데 스캣실라블스로써 많이 사용되는 이 단어의 특징을 보면 사람의 육성과 가장 비슷한 음색을 가지고 있는 관악기의 소리를 무난하게 표현할수 있다는것과 스윙의 리듬감, 보컬 가창 특성인 레카토, 그리고 악기 연주특성인 아티큘레이션등을 동시에 표현할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냐면 재즈의 스캣과 힙합의 랩은 리듬과 멜로디의 표현함에 있어서 접근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른영역에 있다는것을 뜻하는겁니다. 하지만 DJ의 토스팅은 리듬분절 방법과 표현에 있어서 힙합의 랩과 그 맥이 닿아있습니다. 또한 힙합 샘플링의 기원 역시 파티 DJ들의 루핑에서 찾을수 있다는 사실도 인접성에 대한 좋은 답변이 되지 않을까 하네요.


각설하고 유엠씨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부터 말할 내용은 모두 위에 밝혔던 주장에 기인한 것임을 먼저 알아주세요.


유엠씨 가사 센스 뛰어납니다. 대상을 관찰하는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개성적으로 풀어낼수 있는 자신만의 문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견을 내세우기에 앞서 하나의 전제를 깔아놓았습니다. 맞습니다. 유엠씨는 좋은 작사가입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말은 그것이 힙합의 어법은 아니라는 겁니다. 앞서 말했지만 힙합은 시그니파잉의 정서가 담긴 문화고, 전복적인 기능의 언어유희야 말로 힙합을 대변할수 있는 힙합의 어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지금까지 대다수의 리스너 그리고 뮤지션들은 라임의 중요성을 리듬학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봤고 유엠씨 역시 힙합의 근간을 이루었던 정서, 즉 시그니파잉 문화를 배제한 운문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라임을 논해 왔다는 사실이 그자체로서 엄청난 오류가 아니었나 생각해 왔습니다. 결국 제 눈에는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을 배제한채 많은 이들이 서로 자기 주장을 앞세워 힙합의 정체성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으로 보였다는 겁니다.


힙합에서 말하는 격조있는 가사는 문법이 정확하거나 문학적인 가사가 아니라 문학적인 가사라도 시그니파잉, 즉 전복적인 기능의 언어유희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힙합가사로서는 빵점이 될수도 있다는 저의 말은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된 의견이었습니다.


힙합의 근원이 되는 시그니파잉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채 운율의 배치만으로 힙합의 아이덴티티를 재정의해 버리고 기존의 정체성과 대립구도를 만들었다는거에 저는 거부감을 표시한겁니다.


유엠씨의 랩은 좋은 문학이 될수도 있으며 좋은 음악이 될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적인 운율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수도 있다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것은 힙합의 정통성과는 하등 관계가 없으며 힙합의 정체성과 결부 시키지 말았으면 하는게 제 의견이었던 겁니다.


학교종이 땡~땡 welcome to ma class-es


잘들어봐 내 래~앱은 졸면은 맴~매


출석 체~엑 1분단부터 2분단 3분단 4분단까지


자 부른다(네 네 네 네)


이 가사에서 펀치라인은 마지막 "네네네네"입니다. 이 "네네네네"라는 펀치라인이 터지기까지 전체적인 네러티브구조를 보세요. 주제의 효과적 표현을 위한 사건의 인과적 질서 뿐만 아니라 스토리 전개에서 보여지는 라이밍의 개연성 등 "네네네네"라는 펀치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기발하고 치밀한 전개방식이 동원되었는지를 말입니다. 라임의 개연성. 라임으로 만들어낸 언어유희. 이런게 바로 힙합만의 어법이라고 생각하는거예요.


"republic of korea. 힙합은 공산주의야 삐약 삐약~ 병아리보고 이야~ 한단 이야기야" 이 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삐약"은 애송이를 뜻하는 의성어도 "이야"는 대단하다는 뜻의 감탄사입니다. 비언어학적인 음성으로 만들어낸 라임의 개연성. 이런게 바로 전복적인 기능의 언어유희고 다른장르와 차별화되는 힙합의 개성적인 어법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일장기의 붉은점은 우리 조상의 핏방울"이라는 구절 굉장히 딥한 표현이고 센스있는 메타포죠. 하지만 "내 사상에 뿌리깊은 역사의 핍박을"이라는 앞의 구절이 매치 되었을때 힙합의 어법이 완성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유엠씨의 가사는 "일장기의 붉은점은 우리 조상의 핏방울" 이 구절만으로 끝입니다. 죽이는 메타포지만 힙합의 어법은 아니라는 거죠. (단순히 예를 든거임)


물론 리듬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했을때도 유형의 방법론보다 기존의 방법론이 더욱 발전된 형태로 보고 있습니다. 라임방법론이 유엠씨의 방법론 자체를 이미 다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음수율, 음보율, 음위율, 음성율 등 음보와 음절의 배열, 음성의 뉘앙스같은 운율체계는 랩방법론에 이미 다 포함되어있는 개념이고 오히려 유엠씨가 연구하는 그런 방법론의 상위개념으로 음수율, 음보율등이 한국어 특성이 비트분절에 맞게 훨씬 고도로 분화되고 발전 변형된 형태가 라임방법론이라는 거죠.


라임방법론이 음수율과 음보율을 배제한 별개의 방법론인줄 아신느 분이 있는데 랩에서 라임이라는 운율체계가 이미 음보와 음절의 배열, 음성의 뉘앙스까지 단순한 4음보, 3444형태 ?따위의 기본적 배열에서 더 치밀하게 쪼개지고 덧 붙혀지면서 발전된 종합적인 율격 형태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유엠씨의 랩도 매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2011년을 사는 사람들이 1960년대 음악을 찾아듣는것과 이치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10가지 요소가 꽉찬 갑이란 음악에서 2~3가지 요소를 뺏을때 갑이란 음악에서 느낄수 없는 네츄럴함에 매력을 느끼는 현상말이죠. 이런 성향의 음악은 잘못하면 구시대 음악처럼 촌스럽게 느껴 질수 있는데 유엠씨 거둔 음악성과 중 인정하는 하나는 이러한 음악을 촌스러운 느낌이 없게 유지, 발전 시켰다는 겁니다.


헐;; 일이 있어서 여기 까지만..주말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