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라임 by mazingo

P-Type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


언젠가 이런 이론을 주장하던 자들이 있었다. “영어 랩의 방법론은 한국어 랩의 방법론이 될 수 없다. 

한국어 랩은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에 맞는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머지않아 이 자리를 통해, 내가 이 말에만 집중하여 꽤 노골적인 시비를 걸 수 있는 시간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된다. 딱 잘라 결론만 짚고 넘어가자. 언젠가 당신을 매료시켰던 그것은 영어식 방법론을 지닌 

그 힙합이 아니었던가? 당신이 즐기기를 넘어 행하기로 한 힙합이 영어식의 그 힙합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식으로 재해석되어 새로운 방법론을 지니게 된 다른 어떤 무엇인지 스스로 심각하게 

의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방법론은 그 소속을 결정짓는다.” 


이제 앞서 언급했던 ‘새로운 방법론의 모색’이라는 말은 우리 모두 이렇게 생각하며 무시하기로 하자. 

“이 방식이 싫으면 그냥 다른 거 하지?” 



흑인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그루브의 완성을 그 목적으로 하는 리듬 중심의 음악이라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랩은 타악화 된 보컬의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 랩은 또 다른 드럼(drum)인 셈이다. 

랩을 운율(rhyme)이라는 기본단위로 이루어진 또 다른 타악기로 이해한다면, 

운율이라는 그 기본단위는 언어의 음운들이 덩어리 덩어리로 

뭉쳐져 만들어내는 한 번의 타악소리 울림과도 같다. 


따라서 잘 짜여진 랩이란, 운율이라는 단위로 이뤄지는 

리듬의 진행을 통해 궁극적으로 그루브의 완성에 도달하는 그런 랩일 것이다.

그리고 잘 쓴 랩 가사란, 음악적으로는 그루브를 이끌어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훌륭한 문장을 이루어내는 그런 랩 가사일 것이다. 

그리고 잘 하는 랩퍼란, 랩을 잘 만들며 가사를 잘 쓰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랩을 한 명의 보컬 세션으로서 훌륭히 노래해내는 그런 랩퍼일 것이다. 


세상에 많고 많은 소리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흔한 소리일지도 모를 "말". 그 "말"로 만들어내는 리듬악기. 

그게 랩이다. 


- P-TYPE, 리드머 칼럼 중



P-Type : 라임이 소용없다는 말부터 반박을 하자면, 그렇게 따지면 국어로는 랩이 안 된다는 소리다. 

어차피 받아들여온 문화고 외국의 방법론에는 라임이 있는데 한국말로는 라임이 불가능하다고 해버리면 

한국에서는 힙합이나 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소리인거다.


칼럼에서도 얘기했지만 그 방식이 싫으면 그것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방법론이 싫기 때문에 방법론만 바꾸고 힙합 혹은 랩이란 이름은 달고 가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란 생각밖에 안 든다.



P-Type : 라임이 극대화되고 구체화된 방법론이 랩이다. 쉽게 얘기하면 라임 자체가 언어 상의 리듬으로 볼 수 있다. 

국어시간에 운율이란, 언어 자체가 가지는 음악성이라고 배웠지 않은가. 라임은 단지 그것일 뿐이다. 

음악적으로 표현되는 어떤 문학에서도 라임, 즉 운율이란 요소가 빠질 순 없다. 

어떤 음악도 리듬 없이는, 박자라는 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리듬이란 특성이 극대화된 것이 힙합이라고 한다면, 

라임이란 형식이 극대화된 것이 랩이다. 똑같은 이치다.


리드머 : 여기서 잠깐 UMC의 얘기를 빌리자면, 예전에 어떤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고명한 국어학자들도 

한글의 운율 개념에 대한 결론을 못 내렸다고 하면서 한글로는 라임이 필요 없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P-Type :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UMC와 나는 같은 수업을 들었었다. 당시에 교수가 이런 얘기를 했다. 

국어는 문장이나 단어의 끝 쪽에 의미를 치중하는 영어와는 다르게, 각운보다는 두운이 살아나는 언어기 때문에 

말의 끝 쪽에 같은 말을 맞추는 라임이라는 건 국어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나는 그 얘기가 상당히 인상 깊었고, 

그래서 기말고사 때 쓰라는 답은 안 쓰고 그에 대한 장문의 반박론을 거의 두 페이지에 걸쳐 쓰고 나왔던 적이 있다. 

전혀 다른 분야의 얘기가 될 수가 있다. 그것은 철저하게 문학의 이야기고, 

음악이라는 4분의4박자라는 틀 안에 들어가는 문장의 경우에 두운이 각운이 될 수도 있고 각운이 두운이 될 수도 있다. 

박자단위 마디의 처음에 문장의 처음이 위치할 수도 있고 문장의 끝이 위치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플로우를 짜고 랩 메이킹을 하는 사람의 역량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 

두운/각운의 차이가 이미 없어지는 것 아닌가? 마디의 처음에 문장의 머리가 올지 허리가 올지 꼬리가 올지 

그것은 주체의 맘이다. 그게 랩퍼의 능력인 것 같다. 


단순히 국어에서 불가능하다는 이론은, 뭐 시인이 그런 말을 하면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적어도 랩퍼가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역량 부족을 감추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 

문장을 마디에서 마음대로 옮겨 다니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시도해보지도 않고 

귀찮아서 연구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갖다 붙인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P-Type : 그들의 이론은 방법론 자체를 해체시키자는 거였다. 

그것은 힙합의 방법론은 우리나라에 맞지 않으니까 우리 식의 방법론을 만들어서 

힙합이란 이름을 쓰자는 이론 밖에 되지 않는다.


리드머 : 대충 라임은 미국의 것이니까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것 같다.


P-Type : 라임은 미국의 것이 아니라 ‘힙합의 것’이다. 힙합이기 때문에 라임이고, 힙합이려면 라임이 있어야 한다. 


힙합은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게임에는 룰이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그 룰을 제일 잘 지키면서 제일 멋지게 지키는 사람이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믿는 

내 입장에서는 진짜와 가짜는 방법론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기준선이란 것이 없어서도 안 되고, 또 힙합이 태어날 때부터 기준선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 P-TYPE, 리드머 인터뷰 중




본글 글쓴이(hahahavm 님) : 


개인적인 "취향"으로 전 UMC를 좋아합니다. 라임을 맞추겠다는 말로 가사를 보지 않으면 종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랩, 

또는 가사를 보아도 무슨 내용을 닮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자기 만족적인 랩보다는, 

'내용의 전달'이라는 본질에 좀 더 충실하였던, 진짜로 한국말로 랩을 해보려 노력했던 그의 Hip Hop을 말이죠. 

뭐 이건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Verbal Jint :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음악에는 실력의 우위라는 건 없고 '취향'의 차이이며, 

자기한테 좋은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들 말하는데 힙합에 있어서 그런 얘기 쉽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수준 낮은 상대가 시비를 걸면 듣고 평가하는 사람들에 의해 매장 당해야하는데 

그 평가하는 질서가 형성이 되어있지 않다고 느꼈어요. 심사위원들의 자질이 그 정도라는 것에 가시가 돋쳤죠


- Verbal Jint, 리드머 인터뷰 중





리드머: 국내 힙합씬에 대한 생각은?


P-Type : 누가 봐도 아직 '과도기'다. 


외래문화인 힙합이 국내에 상륙해서 발을 디딘 순간에 이미 정착했다고 믿어버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정착은 아직도 머나먼 얘기인 것 같고, 아직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과도기 상태로 봐야한다.


- P-TYPE, 리드머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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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관련해서...리드머에 올라온 글 가지고 왔던 것.




‘듣기 좋은 음악이 좋은 음악이다.’


얼추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참으로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이 말 한마디로 ‘비평 문화’ 자체가 완전히 헛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듣기 좋으면 좋은 음악인데 쓸데없이 비평을 뭣 하러 하나? 동시에 리드머닷넷은 ‘흑인음악에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꾸려나가는 멋진 비평 매체’에서 ‘자칭 음악매니아란 놈들이 잘난 척이나 하고 헛소리나 해대는 사기 사이트’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그 죄질(?)이 나쁘기 때문에 어쩌면 최악의 경우 사기 혐의로 잡혀갈지도 모를 일이다.


음악보다 비평 문화가 훨씬 활성화되어 있는 영화 쪽을 예로 들어보자. 그저 재미있고 흥행에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조폭마누라]같은 영화가 ‘좋은 영화’로 인정받고 있는가? 아니면 [매트릭스]의 심오한 철학관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오고 가는 온라인 토론의 장에다 누가 ‘영화는 영화입니다. 그냥 보고 좋으면 그만이에요. 재밌으면 됐지 뭘 그렇게 따지고 듭니까. 그렇게 잘난 척 하지 말고 그냥 영화를 즐기세요. 님’ 이렇게 리플을 달던가?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 한 문화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좀 더 ‘제대로’ 그 문화를 항유하려는 이들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행위나 다름없다. 비평가들이 설 곳을 잃고 험난한 취업 전선에 다시 뛰어들어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이 수밖에 없다. 듣기 좋다/싫다가 좋은 음악의 판단 기준이니, 즉 ‘비평’이란 게 아예 허용이 안 되고, 따라서 ‘주관’이 개입되어서도 안 되니까, 이런 식의 글쓰기가 최선이다. 


‘이 앨범의 제목은 뭐뭐고, 인트로에는 드럼이 총 87번 나온다. 그리고 3음절 라이밍은 한번도 안나오며, Nigga란 단어는 한 500번은 나오는 것 같다.............(중략)’


그리곤 글의 끝에 한 줄로 간략하게 ‘이 앨범은 대체로 듣기 좋은 거 같으니까 좋은 음악인 것 같다!’는 문구를 넣어주는 거다. 그런데, 듣기 좋은 거 싫은 거 느끼는 것도 결국은 ‘주관’이고 ‘개인적’인 것 아닌가? 

으악......내 머리론 도저히 답이 안나온다. 포기.



-음악은 가슴으로, 평가는 냉정히-


결론은, ‘비평’과 ‘감상’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 단적인 예로, ‘감상하기에는 좋은데, 비평의 입장에서 볼 때는 썩 좋지는 않은 음악’이라는 명제는 분명히 성립한다는 것. LL의 클럽송을 듣고 목뼈가 부러지게 머리를 흔들어대면서도 리뷰를 통해서는-그 나름대로의 음악적 근거를 토대로-비판을 가할 수 있다는 것.


음악은 가슴으로 듣되, 평가는 머리로 냉정히 하자.


‘듣기 좋은 음악이 좋은 음악이다’라는 명제는 ‘듣기 좋은 음악이 꼭 좋은 음악만은 아니다’라고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출처 : RHYTHMER.NET 김봉현님의 기획기사 "2 Subjects For 1 Colum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