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

스크랩

우리는 짐승 중의 짐승, 물질의 노예가 된 아이들에 지나지 않네. 우리가 여느 짐승과 다른 것이 있다면 여느 짐승보다 더 무력하다는 것이야. 하지만 우리는 필멸(必滅)의 운명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짐승과 달라. 따라서 인생이 우연히, 요긴하게 우리에게 베풀어 준 것들을 다 즐긴 연후에 그 죽음의 순간을 준비해야 하네. P85







보시라고. 정직한 인간 제1의 조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 그것이 무엇인가. 죽음이다. 바로 그 죽음을 두려워할 것을 가르치고, 운명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아름다운 것, 그것이 무엇인가. 삶이다. 바로 그 삶을 증오할 것을 가르치는 종교를 경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지. 우리는 그럴 것이 아니라 무수한 행성이 영원의 복락을 누리는 저 하늘을 열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무수한 행성이 상을 받거나 벌을 받을 것인가? 천만에……. 무한 허공의 품 안에서 영원한 운행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의 현자들처럼 당당하게, 죽음을 초연한 눈으로 직시하되 두려워하지 말 일이다. 예수님은, 죽음을 기다리면서 진땀을 너무 흘리셨다. 부활할 것을 뻔히 알고 있었을 터인데 왜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P86







제 일순간의 분노를 달래느라고 우리의 영원한 비애를 요구하는 신을 어떻게 자비롭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우리 이웃을 용서하면 이웃도 우리를 용서해야 할 것이 아닌가? P87







그리스 역사가 스트라보의 말에 따르면 갈리시아 어에는 인간보다 높은 존재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코스타(이자 역시 예수회 사제였다만)의 말에 따르면, 서인도 제도 사람들에게 하느님 이야기를 할 때 선교사들은 스페인어 <디오스>라는 말밖에는 쓸 수 없었다. 자네에게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 지역의 토속어에는 적당한 말이 없었던 거다. 자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이라는 개념을 전할 수 없다면, 하느님이라는 것은 인간의 발명품임에 분명하다. / 진정한 철인이 바라는 것은, 사물의 질서를 전복하는 것이 아니다. 철인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철인의 희망 사항은, 강력한 정신에 어울리는 사상의 계발이 허용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철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다행히도, 반역과 범죄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대중의 고삐를 쥐고 있는 신부와 주교가 있다. 국가와 질서는 행동의 획일성을 요구하는데, 종교는 이 방향으로 민중을 계도하는데 필요한 물건이다. 그러자면 현자는 자기 자유의 일부를 희생시켜야 사회가 안정을 유지한다. P111







책의 목적이 무엇일까? 그것은 가르침과 재미를 동시에 주는 것이야. 책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의 올무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 P113 / 움베르토 에코 / 전날의 섬 - 열린책들







이 세상에서 아무도 나와 함게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의 가슴은 죄어드는 듯 했다. P127







인간이 느끼는 최초의 공포는 신에게서 버림받는데서부터 생겨났다. 하지만 생활이라는 것이 그 공포를 쫓아내주며, 신의 영상을 본떠서 창조된 인간들이 고독한 우리들을 위로해준다. 그러나 그 위안과 사랑조차 우리들을 버리고 나면 우리들은 하느님과 인간들, 그 양자에게서 다 버림을 받았다고 느끼게 되고, 말 없는 자연조차 우리들을 위로해 주기는커녕 우리들을 놀라게 한다. P129







만약 수면이란 것이 없다고 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밤의 사자가 우리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자가 우리들의 눈을 감길 때, 아침이 되면 그 눈을 다시 열어주어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려 줄 것인가를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최초의 인간이 이 믿을 수 없는 친구의 팔에 몸을 맡길 때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했으리라. 만약에 인간의 속성 속에 우리들이 당연히 믿어야 할 것들에 대해 믿음과 헌신을 강요하는 무엇인가가 없다고 한다면 인간이 아무리 피로하다 하더라도 자유의사로 그 미지의 꿈나라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 P178







왜 우리들은 자신의 마음속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해명하려고 애를 써야 한단 말인가? 결국 자연에 있어서나 인간에게 있어서나 우리의 마음속에 있어서나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의 마음이 가장 잘 끌리는 것이 아닌가. / 누구에게나 해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데, 우리들은 그것을 영감이거나 운명 혹은 성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엄연히 찾아오는 원칙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행동을 분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P180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들판에 핀 꽃들에게 왜 피었느냐고 물어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P200 / 막스 뮐러 / 독일인의 사랑 - 까먹음







폭력적 계급성

메이플 스토리와 대구 사건의 비극은 상관이 있다. 메이플 스토리나 리니지 같은 MMORPG 게임이 성공한 건 현실세계를 모방했기 때문이다. 현실의 모습이 아니라 현실의 본질을 반영했다. 계급성 말이다. MMORPG 게임에서 모든 캐릭터는 평등하게 태어난다. 게이머가 노력해서 아이템을 모으면 기사도 되고 왕도 될 수 있다. MMORPG의 쾌감은 남보다 높은 계급이 됐다는 우월감에서 나온다. 아이들이 사는 학교는 철저한 계급 구조다. 성적과 외모와 싸움 실력에 따라 차별된다. 아이들이 MMORPG의 세계에 매료되는 과정은 2단계일 수 있다. 학교처럼 경쟁적이라 쉽게 빠져들고 학교에서의 좌절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 때문에 중독된다. 오히려 게임세계가 학교보다 더 공정하다. 대구 피해자가 다녔던 중학교는 "자살한 애 영웅 만들 일 있느냐"며 학생들의 헌화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계급사회에서 자살은 비극이 아니라 패배다. 가해자는 게임 속에서 때리고 맞는 폭력성을 흉내낸 게 아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적 계급성을 내면화한 것뿐이다. 구태여 게임을 모방할 필요가 없다. 가상과 현실은 서로를 모방한다. 현실은 가상의 겉모습을 흉내낼 뿐이다. 코스프레처럼 말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늘 현실에 있다. 현실이 가상 탓을 하는 건 비겁한 변명이다.







여기 오해에 시달리는 단어가 있다. 시뮬라크르(Simulacre). 가짜, 모조라는 오명 덕분에 세상이 기피하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그것이야말로 오해다. 이 단어는 보드리야르식 해석이 아니라 들뢰즈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뮬라크르는 곧 '사건'이다. 순간적으로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것이다. A나 B가 아니라, A에서 B로 넘어가는 '순간'이 중요하다. 세상의 서쪽에 살든 동쪽에 살든 사람들은 존재와 무(無)를 가장 근원적인 사건으로 여긴다. 존재를 희망삼아 가급적 무를 멀리하려 한다. 전통 철학에서도 사건이란 아주 덧없는 것으로 여겨왔다. 오래가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대신 덧없는 것, 순간적인 것은 가치 없는 것, 허망한 것으로 생각했다. 고대(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신), 근대(데카르트)가 다르지 않았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모두 덧없는 것들이다. 바람이 불어야 깃발의 소리 없는 아우성의 의미를 사유하듯이 그 '순간적'인 것이 삶을 채워나간다. 현대 철학은 그 '사건'을 어떻게 사유하느냐에, 현대 미술은 그 '순간적'인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모든 것을 걸었다. 생성의 사유로서의 사건을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이승과 저승만큼이나 멀다. A became B, A나 B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became(become)을 사유하는 자만이 세상의 기운생동을 느낄 수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눈물의 '의미'를 느끼는 자만이 함께 울 수 있는 것과 같다. '슬픔'이라는 문화적, 인간적 관계로 넘어가는 그 경계선을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 서두가 길었다. 그 의미의 경계를 바라보는 한 평론가의 글을 상찬한다는 것이 사족이 되어버렸다.






 

'Sil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찬님 만나기  (1) 2014.01.31
대박사건  (2) 2014.01.19
안알랴줌  (0) 2013.12.30
바라건대  (0) 2013.12.10
시계태엽 오렌지  (0) 2013.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