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출신이고, 교직이수하고 우리학교 선생님이 된거다. “난, 반짝이던 전교 1등이었는데, 지금 여기서 멍청한 너희들이나 가르치면서 학교에 처박혀 있는 게 우울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어는 우울해했다.
그러던 어느날, 섭씨와 화씨가 나왔다. 영어가 갑자기 자기 전교 1등이었다며 섭씨를 화씨로 바꾸는 공식을 적기 시작했다. 영어가 틀리게 적길래 우리반 애들이 잘못 외워서 성적 떨어질까 걱정이 된 나는, 손을 들고 정말이지 친절하게 알려드렸다. 하지만 영어는 떨면서 자기가 맞다고 우겼고 결국 교실을 나갔다. 영어는 돌아오지 않았다. 반장이 우리 시험범위 진도 나가야하지 않겠냐며, 자기가 영어를 데려올테니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서 무릎 꿇고 있자고 했다. 반장이 영어를 데려오고, 자진해서 벌받는 애들을 보고 마음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하지만 말했다. “하지만 너! 너는 나가!”
나는 나갔다. 영어가 화가 난 건, 애들이 내 말이 맞을거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나는 과학 잘했고, 현역(?) 이과생이 영어 선생님보다 과학을 더 정확히 아는 게 당연하잖아. 무튼 나는 나갔고, 나가랜다고 나갔다고 또 난리였단다. 나는 영어수업마다 밖에서 책읽으면서 놀았다. 그러다 국어가 나를 봤다. 왜 밖에 있느냐고 물어서 영어시간에 있는 일을 쭉 얘기했다. 영어는 선생님들 사이에선 주니어였고, 국어는 10년 이상 재직한 분이었다. 국어가 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나는 다시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국어는 나에게 칼국수를 사줬다. 그리고 말했다. “또 누가 부모님이랑 같이 안 산다고 괴롭히면 말해.”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영어가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있었던 게, 항의하러 쫓아올 부모님이 없어서였다는 거. 나쁜 선생있고, 또 그걸 넘어설 만큼 좋은 선생있어서 학교였다. 국어 선생님이 고맙다.
이 얘기를 쭉 와이프에게 했더니, 와이프가 물었다. “영어 선생님은 지금 뭐할까?” 그래서 검색했더니 아직 모교 영어 선생님이다. 그 학교에서 내 성정체성이나 가정환경을 이유로 나를 괴롭히던 선생님들도, 또 그 이유로 잘해주던 선생님들도 아직 학교에 많이 남았다. 그곳의 시간은 멈췄을까.
어느덧 나는 그때의 영어나 국어보다 나이가 많아졌고, 술한잔 하면서 와이프에게 옛날에 그랬잖아 하며 지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의 삶은 그 이후 정말 많이 바뀌었는데, 학교의 선생님들은 거기에 그대로 있다니, 너무도 이상한 일이다. 영어가 아직 어려서 그랬겠거니 싶어지다니. 😆
나한테 그렇게 한 거, 이제 용서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