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

hypnotized



곰 안아본 적 있어요?
교복을 입는 게 지독히도 싫었던 나이, 그 때의 애인과 유원지에 놀러갔던 적이 있어요. 좀 걸으면 교복 자켙 안이 약간 덥다 느껴지는 그런 날씨였던 걸로 기억해요. 한 손엔 자켙을 걸치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 애의 손을 잡고 그렇게 불편하게 걸으면서 철창 속의 동물들을 구경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누가 봐도 사육사처럼 보이는 베이지 색 사파리 패션의 여자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거에요.

궁금해서 가 봤더니 종종 하는 이벤트인지 새끼 곰을 풀어놓고 있고, 제 키의 반도 안되는 아이들 위주로 모여 곰을 껴안거나 쓰다듬고 있더라구요. 가만히 서서 구경하고 있는데 어쩌다 사육사가 제게도 곰을 안아보라고 건네길래 얼떨결에 안아보게 됐는데 당연한 거지만 곰인형같은 그런 느낌은 전혀 아니더라구요. 뻣뻣하고 따갑기까지 한 털과, 크고 공허해보이는 눈동자하며, 무게도 만만치가 않고. 여간 실망한 게 아니었지만 세상에 새끼 곰을 품에 안아 본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신기하고 흥분한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유리창 너머로 그 쪽을 처음 봤을 때, 온갖 악기들 사이에서 지휘하듯 손을 젓는 모습에 저는 곰인형 생각을 했어요. 저 손을 잡아보고 싶다. 따뜻하고, 귀엽고, 안아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니 변태같지만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제가 말을 걸었을 때, 그리고 대답하지 않는 그 쪽을 보며 당황하는 저를 보고, 오히려 그 쪽이 더 당황했겠죠. 정말 미안해요. 한시라도 빨리 말을 걸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단 생각에 가득 차 있었어요.

네, 왜 벌써부터 그런 걱정을 하는지 이해하고 너무 멀리 갔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순간 제 부모님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그런 걱정을 했거든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게 선심 쓰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의도로 말하는 것은 아니고 제가 누구에게 선심을 쓴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여유가 있거나 착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요. 앞에 곰 얘기를 꺼냈던 건 솔직히 제 상상과는 그 쪽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에요.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을게요. 처음 곰을 안아봤던 그 때의 감정과 다르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그렇게 손을 가리고 말해줄 필요는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그쪽과 나 사이에 어떤 문제나 벽이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한 말 때문에 괜찮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그런 거라면 괜찮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돼요. 상상 속의 기대가 깨진 것보다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감정에 압도된 게 더 크니까. 당장 그러라는 건 아니에요. 힘들테니까, 차근차근히.

그쪽이 좋아요. 그 쪽은 어떻게 생각해요?







제일 좋은 창가 쪽 자리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포근하지만 작은 긴장이 느껴지는 노란 조명빛의 카페 아래에서 남자는 여자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할 말은 다 했으니 이제 여자의 답을 기다릴 차례였다. 여자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두 손을 가슴께로 올리고는 4분의 4박자를 지휘하듯 천천히, 그리고 아름답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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