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홀로계신 할머니 생신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울 아부지가 장남이고
집도 온가족 모이기 편한 지역에 살아서 우리집에서 항상 큰 행사를 챙기곤 했죠.
그러다 이번에는 작은아버지가 부장으로 승진하시며 서울로 이사를 가고
처음으로 할머니 생신을 치르기로 하여 온가족이 서울로 모였죠..
집도 괜찮고, 서울이다보니 주변에 볼것도 많고.,
외식하고, 집에서 잔치도 하고.
저는 사촌형과 함께 사촌동생들 대리고 볼링장이며 피씨방이며 노래방까지 순회하며
꽤나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열두시즈음 하여 동생들은 다 자고
음주가 가능한 사람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데.
한시간즈음 지나자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게 느껴졌습니다.
울 아부지는 장남입니다.
농사지으시던 할아버지 아래에서 함께 농사일을 하며 힘들지만 근면하게 상고를 졸업하고
동생들 학비 대주시느라 대학 포기하고 회사를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8-90년대 초반에 회사원 월급으로 저도 태어나고, 집안을 부양하기 힘들어
모든걸 다 포기하고 가게를 내었습니다.
덕분에 우리가족 먹여 살리면서도
동생들 대학보내고, 시집보내고, 장가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때문에 모든 가족들 우리 아부지의 위상은 대단했습니다.
단지 아들인 저도 그 위상을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모든 행사에 있어서도 아부지 손을 거치지 않은적이 없었고,
모든 모임에 있어서도 아부지가 중심에 서계시지 않은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몇년전부터는, 그 위상이 사라져 가더군요.
온가족 다 부양하고 나니 요즈음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라는게 힘들어지고,
수입도 완연하게 하락하다보니 집안에서 아부지가 하던것을
차츰 수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대기업 부장, 차장으로 계시는
작은아버지들 손으로 넘어가면서
최근들어서 아부지는 그저. 상징적인 의미만 남아버린것 같습니다..
술자리에서 아부지는 어디 하나 말한마디 하시기가 힘들더군요.
회사생활이라고는 젊어서 잠깐 해보신게 다고.
이제는 조언을 해줄만한 어려움도 없으니.
더 이상 아쉬울거 없는,
어느새 우리집보다 상위 클래스의 생활을 하고있는 친척들은
시시콜콜한 우리 아부지가 하시는 농담이나 가족생활같은 이야기에
잠깐 귀 기울이는듯 하다 어느새 보면
우리 아부지는 대화에서 소외되어 그저 술잔만 기울이고 계시고
친척들은 삼삼오오 그들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더군요.
저는 그 자리에서
친척들 다 있는 행사중에 아부지가 혼자서 담배 피우시러 나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부지가 소외당하는 느낌이라니. 이건 솔찬히 충격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는 장면일줄 알았습니다.
아부지는 주무시러 들어가시고,
남은 친척들은 사람들 자는데 시끄럽다며
2차는 밖에 나가서 하자며 집을 나갔습니다.
저에게도 가자고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너무하시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알고있는 모든 한도내에서 끄집어 생각을 해봐도
작은아버지는 울 아부지한테 손 벌린 기억밖에는 없습니다.
주말을 보낸 그 서울의 아파트도 결국은
우리 가족, 우리 아부지한테 손 벌려다가 전세금 채워서 들어간 아파트.
그 집안에 장만된 대형 lcd 티비 하며, 대형 냉장고에
울 엄니가 그렇게 사고 싶지만 아부지가 구박해서 못 산 가스오븐렌지 하며..
사촌들 방에 있는 최신형 컴퓨터와 피아노에 새 가구들 하며..
분명 처음 봤을때는 와 삼촌 부자됐네.. 잘 산다. 좋다. 했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 갑자기 그 순간부터는 제가 다 억울할 정도더군요.
이렇게 잘 살도록 돈이 모이는 그동안은 도대체 뭘 하셨나.
이토록 잘 살기위해서 우리 아부지께 그동안 손 벌려가며 모여왔나.
그럼에도 아부지는 그 다음날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서도 한점 아쉬운 표정 보이지 않으셧습니다.
집안 참 좋더라는 울 엄니의 말에
그정도면 부장급 치고는 모자라게 사는거야.. 이제 서울로 올라갔으니 더 잘 살겠지..
오히려 모자라보인다는 작은아버지의 살림을 걱정하시는 모습..
그저 집안의 가장으로 이제야 할일을 다 마쳤다는. 그런 생각이셨을까요.
저는 그저. 그래도 좀 억울하시지 않을까..
아부지를 끝까지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울 아부지는
우리집의 가장 역할만 수행하고 계시는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안 모두의 가장 역할을 하고 계셨던 거였죠.
저는 여태 그걸 몰랐습니다.
이 나이를 먹도록 말입니다.
저도 장남이네요.
하지만 저와 제 동생은 모자람 없이 자랐죠.
저는 언제쯤에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일전에 아빠께
"아빠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요.."라고 물었다
아빠는 20대 초반에 결혼하셔서 혼자만의 젊은 시간이랄 것도 가져본 적이 없으셨고
환갑 넘으신 지금까지도 등산 정도의 취미밖에 없으시니
내가 대충 상상한 대답은..
젊을때..아니면..30대..뭐 그런 종류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아빠의 대답은
"너희가 어릴때"였다
의외의 대답이라 왜라고 물을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가 너무나 날 쓸쓸하게 했다
"왜냐면 그때는 너희가 원하는 건 다 해줄 수가 있었거든.."
그 전까지는 울 아부지가 장남이고
집도 온가족 모이기 편한 지역에 살아서 우리집에서 항상 큰 행사를 챙기곤 했죠.
그러다 이번에는 작은아버지가 부장으로 승진하시며 서울로 이사를 가고
처음으로 할머니 생신을 치르기로 하여 온가족이 서울로 모였죠..
집도 괜찮고, 서울이다보니 주변에 볼것도 많고.,
외식하고, 집에서 잔치도 하고.
저는 사촌형과 함께 사촌동생들 대리고 볼링장이며 피씨방이며 노래방까지 순회하며
꽤나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열두시즈음 하여 동생들은 다 자고
음주가 가능한 사람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데.
한시간즈음 지나자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게 느껴졌습니다.
울 아부지는 장남입니다.
농사지으시던 할아버지 아래에서 함께 농사일을 하며 힘들지만 근면하게 상고를 졸업하고
동생들 학비 대주시느라 대학 포기하고 회사를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8-90년대 초반에 회사원 월급으로 저도 태어나고, 집안을 부양하기 힘들어
모든걸 다 포기하고 가게를 내었습니다.
덕분에 우리가족 먹여 살리면서도
동생들 대학보내고, 시집보내고, 장가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때문에 모든 가족들 우리 아부지의 위상은 대단했습니다.
단지 아들인 저도 그 위상을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모든 행사에 있어서도 아부지 손을 거치지 않은적이 없었고,
모든 모임에 있어서도 아부지가 중심에 서계시지 않은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몇년전부터는, 그 위상이 사라져 가더군요.
온가족 다 부양하고 나니 요즈음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라는게 힘들어지고,
수입도 완연하게 하락하다보니 집안에서 아부지가 하던것을
차츰 수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대기업 부장, 차장으로 계시는
작은아버지들 손으로 넘어가면서
최근들어서 아부지는 그저. 상징적인 의미만 남아버린것 같습니다..
술자리에서 아부지는 어디 하나 말한마디 하시기가 힘들더군요.
회사생활이라고는 젊어서 잠깐 해보신게 다고.
이제는 조언을 해줄만한 어려움도 없으니.
더 이상 아쉬울거 없는,
어느새 우리집보다 상위 클래스의 생활을 하고있는 친척들은
시시콜콜한 우리 아부지가 하시는 농담이나 가족생활같은 이야기에
잠깐 귀 기울이는듯 하다 어느새 보면
우리 아부지는 대화에서 소외되어 그저 술잔만 기울이고 계시고
친척들은 삼삼오오 그들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더군요.
저는 그 자리에서
친척들 다 있는 행사중에 아부지가 혼자서 담배 피우시러 나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부지가 소외당하는 느낌이라니. 이건 솔찬히 충격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는 장면일줄 알았습니다.
아부지는 주무시러 들어가시고,
남은 친척들은 사람들 자는데 시끄럽다며
2차는 밖에 나가서 하자며 집을 나갔습니다.
저에게도 가자고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너무하시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알고있는 모든 한도내에서 끄집어 생각을 해봐도
작은아버지는 울 아부지한테 손 벌린 기억밖에는 없습니다.
주말을 보낸 그 서울의 아파트도 결국은
우리 가족, 우리 아부지한테 손 벌려다가 전세금 채워서 들어간 아파트.
그 집안에 장만된 대형 lcd 티비 하며, 대형 냉장고에
울 엄니가 그렇게 사고 싶지만 아부지가 구박해서 못 산 가스오븐렌지 하며..
사촌들 방에 있는 최신형 컴퓨터와 피아노에 새 가구들 하며..
분명 처음 봤을때는 와 삼촌 부자됐네.. 잘 산다. 좋다. 했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 갑자기 그 순간부터는 제가 다 억울할 정도더군요.
이렇게 잘 살도록 돈이 모이는 그동안은 도대체 뭘 하셨나.
이토록 잘 살기위해서 우리 아부지께 그동안 손 벌려가며 모여왔나.
그럼에도 아부지는 그 다음날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서도 한점 아쉬운 표정 보이지 않으셧습니다.
집안 참 좋더라는 울 엄니의 말에
그정도면 부장급 치고는 모자라게 사는거야.. 이제 서울로 올라갔으니 더 잘 살겠지..
오히려 모자라보인다는 작은아버지의 살림을 걱정하시는 모습..
그저 집안의 가장으로 이제야 할일을 다 마쳤다는. 그런 생각이셨을까요.
저는 그저. 그래도 좀 억울하시지 않을까..
아부지를 끝까지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울 아부지는
우리집의 가장 역할만 수행하고 계시는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안 모두의 가장 역할을 하고 계셨던 거였죠.
저는 여태 그걸 몰랐습니다.
이 나이를 먹도록 말입니다.
저도 장남이네요.
하지만 저와 제 동생은 모자람 없이 자랐죠.
저는 언제쯤에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일전에 아빠께
"아빠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요.."라고 물었다
아빠는 20대 초반에 결혼하셔서 혼자만의 젊은 시간이랄 것도 가져본 적이 없으셨고
환갑 넘으신 지금까지도 등산 정도의 취미밖에 없으시니
내가 대충 상상한 대답은..
젊을때..아니면..30대..뭐 그런 종류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아빠의 대답은
"너희가 어릴때"였다
의외의 대답이라 왜라고 물을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가 너무나 날 쓸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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