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만화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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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만화의 스토리를 '미리 알고' 봐도 그 만화가 재미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연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출이 잘 되어있는 만화는 독자를 몰입시킵니다.
독자들은 그 만화에 정말로 몰입하게 돼서, 자기가 스포일러를 당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만화 안의 흐름에 빨려들어갑니다.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심리에 동화되어, 작가의 계획대로 계속 이리저리 휘둘려다니고 맙니다.

그래서 연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스토리를 '어떻게 전하느냐'가 바로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며, 그건 다시 '구성'과 '연출'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르게 나누어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뭐 딱히 이런 걸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고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한 것들을 쓰는 것들이어서, 그냥 제 편의상 저렇게 나누어 보았습니다...

일단 '구성'이란
1) 이야기의 순서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2) 독자들에게 어떤 사실들을 알려줄 것인지
등이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서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도입부부터 갑자기 주인공이 맞아죽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 후에, 왜 주인공이 그렇게 맞아죽었는지를 설명하는 과거 회상이 쭉 전개되는... 그런 게 1)에 해당되겠죠. 그냥 시간순서대로 쭉 전개하는 것보다, 시간을 건너뛰어 이렇게 인상적인 장면을 먼저 드러내는 게 독자들에게 더 충격과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방법을 잘못 써먹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독자들이 '뭐야 얘는? 왜 갑자기 맞아죽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어렵고 이해안된다;;;'라고 반응할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시간의 흐름을 뒤집어서는 안 되고, 독자들의 흥미를 일으킬 만한 부분을 함께 담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2)의 예를 들어보면요... 주인공이 살인마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상황이고, 어느 낡은 집 안에 숨어들어 문을 잠갔습니다. 주인공은 이제 무사합니다. 독자들도 '오, 이제 문을 잠갔으니 주인공이 무사하겠지!' 라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여기서 독자들에게만 이런 사실이 추가되면 어떨까요? '사실 이 집 안에는 살인마의 동료가 이미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요! 오오오오오!!!!!!! 시발 주인공아 거긴 위험해!!! 라는 생각이 들면서, 독자들은 주인공에 몰입하게 되겠죠(스토리텔링 용어로는 이런 상황을 '서스펜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정확하지않음;) 이처럼, 독자에게 어떤 사실을 알려주느냐에 따라 독자들의 몰입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어? 처음엔 그냥 연출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구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얘기를 좀 하게 됐네요.

그리고 연출은.... 만화에서의 연출은요, 대체로 '컷 연출'과 거의 같이 가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컷의 '크기'에 관해서만 얘기를 드리면요, 각 컷의 크기를 크게 하느냐 작게 하느냐에 따라 독자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크기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과 악당이 서로 칼부림을 하며 싸우는 상황이라고 쳐요. 그리고 서로 칼을 몇 번 챙 챙 주고받다가 갑자기 악당이 주인공 배에 칼을 찌르는 상황이라고 쳐요.
이 상황을, 모~든 컷의 크기를 다 똑같이 한 채로 처리하면, 마지막에 '주인공이 칼 맞은 상황'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다른 컷들은 일부러 좀 작게 처리하고, 주인공이 칼 맞은 컷만 엄~청 큰 컷으로 처리해 주면, 독자들이 그 상황을 매우 인상적으로 느끼고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아 쓰기귀찮다



2

만화 연출은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덧셈'의 근본적인 원리를 배우고 나면, 그 후에는 2+7이든 30+99든 무한히 응용이 가능한 것처럼,
만화 연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연출의 근본 원리를 확실히 알고 있다면 무한히 다양한 연출을 만화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연출의 근본 원리란, 바로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면 재미 없으실 것 같아서 예를 들자면...
우리는 흔히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할 때 '큰 컷'을 쓰지만, 그 큰 컷을 독자들이 인상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그 큰 컷이 나오기 이전에 작은 컷들이 나와줘야 할 것입니다. 계속 큰 컷만 주르륵 나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과연 그 큰 컷이 정말 인상적으로 느껴질까요?

컷 크기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느낄 때 '차이'를 통해 느낍니다.
어, 저 사람 키 크다... 라고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그 사람 주위에 키 작은 사람이 있어줘야 합니다.
저 사람 예쁘다... 라고 확실히 느끼기 위해서는, 그 사람 주위에 못 생긴 사람이 있어줘야 합니다.

만화 속 등장인물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워낙 그림을 못 그리기도 하지만, 등장인물을 그릴 때 몇 가지 철칙을 세워둡니다. 그 중 하나가 '예쁘고 잘생긴 인물만 넣는 것을 최대한 피한다'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물들이 다 선남선녀가 돼버리면, 그 중에 딱히 누구를 '예쁜 인물'이라고 묘사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인물을 다른 인물과 구별하기도 굉장히 힘들어지구요. 이는 특히 흑백만화에서 더 두드러지는 부분입니다.
컬러 만화에서는 등장인물들 머리카락 색이 참 다양하기도 하죠... 분명 다 한국인이고 동양계 사람들인데도 말이에요.
예쁜 사람을 예쁘게 연출하려면, 안 예쁜 사람들이 여럿 나와줘야 합니다.

한편,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롭고 잔잔한 펜 터치로 일관하다가,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총살이나 참수 등이 나오는 컷에서는 펜터치가 급격히 거칠어지면 독자들은 그 장면에 몰입하게 될 것입니다.
컷 크기도 물론 그 전에는 작았다가 사건이 터진 바로 그 컷에서만 컷 크기가 커져야 할 거구요.

이처럼, 모든 연출은 '차이'를 얼마나 인상적으로 드러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그 근본 원리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만화 연출을 잘 아는 분들이 보면 중구난방인 이론으로만 보이겠지만, 적어도 저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만화를 그리네요.
워낙 책도 안 읽는 사람이고 만화책도 거의 안 보는 편이라, 이렇게 글 써놓고도 기분이 거시기하네요...

아무튼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차이'를 느끼게 만들 것인가...
이 부분을 주로 고민하다보면 여러 가지 자신만의 연출법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