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레고

내가 처음 레고를 갖게 된것은 7살 때였다.

그 이전에는 코코블럭을 갖고 놀았었는데.

레고는 그에 비하면 초정밀한 장난감인 것이다.

여튼간 나는 레고를 통해 극에 달할 정도로 나의 모든 창조성을 쏟아부을 정도였다.

레고인간들 각각에게 모두 이름과 별명, 그리고 고향과 나이, 성격을 모두 정해놓을 정도였다.

나는 항상 어디에 놀러가든지 레고를 갖고 놀러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시골에 가게 되었다.

당시 나는 9살 정도였고, 친척형은 10살이었다.

친척형 역시나 레고를 갖고 있었으며, 서로의 레고를 합쳐서 갖고 놀게 되었다.

몇시간이나 갖고 놀았을까...

앞으로 일어날 재앙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하였다.

이제 그만 파 해야할 시간이 다가왔고.

서로의 레고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친척형이 개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야 형꺼는 0937이라고 써있어. 니꺼는 LEGO라고 써있고!'

그러면서 내꺼중에 탐이 나는것은 죄다 0937이라고 개드립치면서 가져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에 깜빡 속아서.

분하게도 상당량의 레고 부속품들을 눈 뜨고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나의 레고 왕국은 번성하기만 했다.

누군가의 경제력에 의존한다기 보다는. 자력에 의존한 번영과, 동네 아이들과의 대연정을 통한.

규모의 레고를 성취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방학때가 되면, 매일같이 우리집은 레고놀이를 통해, 북적거렸으며.

항상 나는 레고공화국의 온화한조정자로, 아이들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등.

마치 그린스펀과 미국 대통령을 합쳐놓은 듯한, 그러한 모양새였다.

이미 레고놀이를 통하여, 각종 경제정책에 통달한 나였다.

나의 탁월한 신들린듯한 금리조정의 타이밍과, 적절한 조세정의! 절대 학연지연에 연연하지 않는 철저히

소외된 객관성을 유지하는 철인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동창들이라고 해서 그들에게 웃돈을 얹어주거나, 특혜를 주는 일 따윈 없었다.

나의 레고공화국은 그렇게 위대한 영도자를 통해 날이 갈수록 번영해 나가던 것이다.

레고인간의 인구도 어느덧 200여명을 넘어가게 될 정도였으며, 그들의 주민등록증까지도 이미 완전하게

관리되고 있는 상태인 것 이었다.

이미 나의 레고공화국은 아이들의 놀이 장난감의 수준을 넘어간 것이었다.

주식시장이 생겨났으며, 선물옵션과 부동산매매, 카지노와 복권, 그리고 파산제도와 각종 복지시스템

까지도 생겨나게 된것이었으며,

초창기에는 중세시대에서 출발하여, 현대시대에서 미래우주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인 변화까지도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화폐의 발전또한, 초창기에는 레고 빤짝이 원등으로 시작되던것이, 레고머니 금본위제에서, 또 다시

부루마블의 씨앗은행의 화폐도입에 이르기까지, 그 발전은 엄청난 것이었다.

심지어, 부루마블 게임 3개치에 달하는, 씨앗은행권이 통화되기에 이르렀다.

과도기에 이르러서는, 일부 욕심 많은 아이들로 부터 위폐(부루마블 개인구입)가 유입되기도 했었지만,

그러한 문제는, 2만5000원짜리 부루마블의 화폐가 도입되면서 일단락 되었다.

또한, 철저하리만큼 치밀한 레고공화국의 스토리라인은 아이들로 하여금 항상 긴박하고 치열한 두뇌다툼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일부 경제적으로 낙오된 아이들은 공산주의자가 되기도 했으며, 일부는 극렬한 무정부주의자나

반동분자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사회복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기초생활보조금을 지급하기에 이르렀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서, 현찰(\)을 받고 레고골드를 판매하기도 하였다.

당시 10 주화의 레고골드는 1000원에 팔렸으며, 1000만S\(씨앗 원)의 가치가 있었다.

물론 그로인해 얻어진 소득은 레고공화국의 이민자 유입에 사용 되어졌다.


집의 공간적 한계로 인해, 우리집에 방문하는 아이들의 숫자는 대체로 10명 이하로 통제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손버릇이 좋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에는 철저한 몸수색(양말+신발)까지도 거행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상습범의 경우에는 장의 권위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장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LOTUS1-2-3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재산까지도 철저하게 관리해 나갔다.

그렇게 레고공화국의 역사는 서기에 의해서, 일거수 일투족 모조리 기록되기 까지 이르렀을 정도로.

하나의 공동의 창조적인 미디움이 되었다.

물론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모든 이들이 찬성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에 대한 안티테제 또한 만만치

않았으며, 그것은 어른이라는 이름의 폭력이기도 했다.

나이값도 못하는 연장자들은 끼워달랍시고, 철저하게도 시장경제를 무시하며, 밑도 끝도없이 폭력적이고

권위적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공들인 금자탑을 부셔버리거나, 아이들을 협박하여 내쫓는 강압적인 모습등도 자주 연출 되었다.

또, 어떤 어른의 경우에는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며, 큰 소리를 치고- 불과 오후 5시 밖에 안됐음에도.

아이들의 복귀를 촉구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우리의 NEW WORLD ORDER는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덧 나의 나이는 지우학의 나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언젠가는 LEGO의 임원 말석이라도 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게 될 무렵이었다.

충년의 나이에선 그래도 체제의 존속은 가능하였을지 몰라도.

이제 더 이상 나의 유희가 존속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결국 예상되었던 수순대로

내가 15살이 되던 해에.

나는 강제로 나의 보물과도 같은 레고와 그들의 삶의 터전을 강탈 당해야만 했다...

나의 창의성의 원천인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를 짖밟은 정체는 다름아닌 가족이라는 이름의 구성원이었다.

단지, 나이가 15살 이라는 이유만으로 레고에 대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더욱 나를 분노케 하는것은 강탈당한 그 레고가

단순히 구성원이 술 한잔의 쾌락을 제공받는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이름도 알지 못할 유아에게 넘어가게 된 것이다.

필시 레고의 그 가치는 사용하는자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것은 LEGORIAN에게는 청천벽력같이 놀랍고도 슬픈 일이었다.

아무리 레고의 경제적인 가치를 몰라도, 이것은 너무하는 것 이었다.

그 이후로 나의 레고에 대한 꿈과, 열정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덴마크 이민의 꿈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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