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reView

헤어질 결심, 2021

<테넷>과 다른 의미에서 어려운 영화인데 인물의 특성, 그런 인물간의 관계, 사건의 흐름 등을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장면이나 사물의 배치, 행동 등을 통해 마치 상징처럼 모호하고 아주 빠르게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마치 파도처럼

 

 

모호함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물론 매력적이고 그런 것들이 쌓여서 이런 작품이 탄생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 같은 보통 닌겐의 머가리로는 그런 순간의 연속을 단번에 파악하고 이해할 수 없음이 아쉬웠다. 물론 이건 영화가 아니라 내 탓이고 때문에 재관람은 필수옵션 정도고 그게 싫으면 식견을 갖춘 사람의 리뷰를 통해 재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봤을 땐 미친 싸이코패스 여자와 좀 웃기면서 불쌍한 경찰의 웃픈 불륜 영화 정도로 보이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지독히도 이상적인 사랑을 그려내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건 양자 관측같은 영화이다 서로 다른 두 상태가 동시에 존재해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안이 해준에게 담배 끊으라고 잔소리하며 약을 구해다주는 건 그냥 웃긴 장면 정도로 생각할수도 있고 부부끼리 할 수 있는 가벼운 간섭과 일상 정도로 여기는 게 보통이지만 영화에선 그게 억압이라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 억압은 단순히 어떤 상황에서 연출로만 보여지는 게 아니라 영화 전반적으로 '기존에 형성된 관계'들 모두가 억압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준-정안, 도수-서래, 호신-서래, 더 나아가면 부산이라는 도시와 해준의 관계조차도 억압이며 영화가 클라이맠스로 흘러감과 함께 배경도 바뀌며 갈등이 해소된다.

이런 관계의 상징성이 뇌피셜에서 확신으로 굳어진 시점이 처음 해준의 서래 취조장면인데 스시 먹은 다음 테이블을 치울 때 마치 두 사람이 오랜 시간 함께 한 부부마냥 깔끔하게 정리하는데, 이것도 그냥 보면 웃긴 장면이지만 앞서 말한 억압으로 상징되는 장면들과 비교하면 극명한 대비를 이루게 되며 이를 기점으로 '해방'이 시작된다. 이런 의미심장한 장면과 장치들을 언뜻 보면 코미디처럼 표현한 것도 참 변태스럽고 참….

 

 

무튼 '서로가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서로가 너무 닮아 그 동질성만을 탐하면 그만인 관계가 진짜 이상적인 사랑인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 시점에서 떠오르게 되는데 해준의 불면증 치료와 붕괴, 서래의 사랑 깨닫기 등으로 감독은 그게 맛다고 차근히 대답해주게 된다. 사실 사랑 이상론 자체가 유별난 주제는 아니나 개십변태만이 생각할 수 있는 스토리와 인물상을 창조해내서 굉장히 독창적으로 보이는 점이 있고 그걸 관객이 이해하길 바라는 것도 굉장히 변태스럽고 좋았다. 그리고 보통 영화들이 현실을 기반으로 적당한 영화적 상상을 더한다는 느낌이라면 이건 영화적 상상이 뿌리가 되고 현실이 뭔가 비현실, 또는 어떤 비유처럼 느껴지는 기분이었는데 그것도 참 오묘하고 좋았음.

 

 

"핸드폰은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요.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이라는 말을 해준이 여러 번 돌려 들을 때조차 서래가 이 말을 사랑한다는 말로 해석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비범한 자에겐 사랑의 방식 역시 다르게 작용한다는 걸 잘 보여줬다고 생각하고 전남편들의 생물학적 죽음으로 얻지 못했던 해방을 해준의 정신적 죽음으로써 얻게 되며 이게 정말 "심장"을 얻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도 생각함.

다만 "당신이 사랑을 말한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라는 대사를 기점으로 서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억압되고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깨닫게 되며 자신의 죽음으로 사랑일 수 있었던 무엇인가에 대한 속죄를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비범한 사람이 하는 사랑의 마지막 답가로도 볼 수 있겠고 이렇게 나이브하게 본다면 정말 낭만적인 로맨스 영화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러닝타임이 138분인 점, 해준이라는 이름에 바다가 들어가고 영화마 마무리되는 장소도 바다, 벽지나 옷 등에서도 파란색이 강조되는 경향 등 소소한 재미는 말 그대로 재미포인트 정도이니 각자 재관람하면서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논하기에 더 얘기할 것들이 많은 영화가 <헤어질 결심>이고 나는 이게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해학으로 감춰놓은 비장한 상징, 철저히 계산된 의도에 따라 때론 웃고 때론 바짝 긴장하게 되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그런 작품이고 영화를 다 보고 한참 뒤에서야 '그게 사랑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내가 서래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고 영화 밖에서조차 영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느낌이 너무 재밌었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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