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이제는 정말 죽어야지 하고 구글에 온갖 자살 방법을 검색하곤 했었는데 며칠 밤을 새서 서치하다가 우연히 어떤 블로그 하나를 찾았었다. 포스팅 된 게시물은 모두 자살에 관련된 내용이었고 방법마다 따르는 고통과 실패시 얻게 될 후유증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적혀있었다. 블로그 주인은 뭐하는 사람일까 호기심을 품고 자살 논문 수준의 다양한 포스팅을 세 개쯤 읽었을까? 블로그 주인의 댓글이 보여 읽어보니 그는 공익이었고 어떠한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죽음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이었다.
포스팅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들에 충격을 받기도 했고 이렇게까지 죽고싶어하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사실에 위로아닌 위로를 받기도 했다. 수 많은 방법 중에 하나는 실행해 본 적도 있었지만 난이도 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는 못했다. 죽는게 이리도 어려웠다니. 글로 적어놓은 자살은 쉬워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나의 존재가 소멸하는 순간 자체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블랙아웃이 오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을 치게 된다.
그렇게 매일 매일 그 블로그의 포스팅을 읽으며 어떤 방법이 좋을까 생각하며 몇 달을 보냈는데 한동안 포스팅이 올라오지 않아서 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는지 죽을 방법을 찾으러 방문한 다른 사람들도 블로그 주인의 생사를 묻기 시작했고 불러도 답 없는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안부를 물으러 찾아오는 사람도 꽤 많았다.
1년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결국 블로그 주인은 자신이 고찰했던 방법 중에 하나를 택해 성공을 한걸까하고. 바라던 것을 이뤘으니 축하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자살을 바라고 찾은 블로그에서 타인의 생사유무를 걱정하고 있는 내가 모순적이고 우습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더 지나고 삶에 치여 살다 문득 궁금해져서 들어가 본 블로그는 국가에서 유해 사이트로 지정해서 차단을 했는지 백업 사이트에서만 볼 수 있게 됐고 내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잊혀졌다.
그리고 오늘. 우울한 기분을 버리지 못하고 이것 저것 검색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기억에서 거의 지워진 블로그 닉네임을 쥐어짜 생각해냈고 링크를 간신히 찾아냈다. 간만에 들어가보니 프로필 사진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바뀌어있고 닉네임도 본명으로 바뀐 것을 보고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그 몇 년동안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뭐라 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는지, 사실 이 사람이 계획에 성공했다면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다. 몇 년동안 죽음만 좇던 사람이 지금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프로필 사진이라니 웃음도 나고. 나도 저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악독한 고찰은 기억 저 편에 묻어두고 취미 하나에 웃으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 하는 무언의 위안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검색을 마쳤다. 매일 밤 무섭도록 진지해져도 시간 지나가면 다 아무것도 아닐테지.
누구보다 죽음을 갈망하던 사람이 고작 애니메이션 하나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면 나한테도 앞으로 고작 어떤 것들이 생기겠지. 고작 그것들로 살아가게 되겠지. 마지막 포스팅의 숫자를 본다. 2015년. 6년이 흘렀다. 저마다 어떤 사정으로 그 블로그에서 마주쳤던 지금은 다들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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