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살면서 저지른 최악의 불효가 뭐였냐면 21살에 암판정 받은 지 얼마 안되고 현실을 부정하던 시기가 있었거든. 그때 엄마는 온갖 민간요법에 몸에 좋다는 건 다 나한테 먹이려 했어. 무슨 야채즙, 무슨 영양제 어쩌구저쩌구. 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따위 야채즙으로 나을 병이면 애초에 이정도까지 아프진 않았겠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도 무엇보다 이걸 먹으면 진짜 내가 환자라는 걸 내 스스로가 인정하게 되는 꼴이 되는 것 같아서 먹기도 싫었고 다 꼴보기 싫었어.
어느날 엄마가 청국장환을 한통을 사온거야. 청심환 크기의 동그란 환이었는대 이걸 하루에 3번 30알씩 먹어야 된다는 거야. 그 순간 너무 화가 났어.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 그냥 너무 화가났고 먹고 싶지 않았어 그냥 이딴거 소용 없고 난 암환자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어. 안먹는다니까 엄마가 나한테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는거야. 이거 먹어야 산다고. 그 말에 내가 빡 돌았던 거 같아
그 청국장환이 들어있는 통을, 2키로 정도 들어있는 꽤 무거운 통인데 그걸 내가 먹기 싫다고 울면서 집어던졌어. 뚜껑이 열리면서 청국장환 수백개 수천개가 온 집안에 와르르 쏟아졌어. 그리고 그대로 집을 나왔어. 핸드폰도 끄고 집에 돌아가기 싫어서 무작정 서울역에 가서 기차표를 끊고 당시에 롱디였던 남자친구가 사는 도시로 갔어. 평일이었는데 남자친구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가서 하루 자고 가겠다고 했지. 그리고 자기 전에 핸드폰을 켰는데 외할머니가 음성메세지를 남긴거야. 할머니가 나를 타일렀어. 그래도 이거 먹어 보자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고. 넌 젊으니까 나을 수 있다고, 엄마가 너 그렇게 나가고 너무 속상해 하니까 엄마한테 연락 하나 넣으라고.
그리고 다음날 집에 갔더니 식탁 위에 그 청국장환이 통 안에 그대로 들어있는 거야. 그니까 엄마는 바닥에 쏟아진 수백개 수천개의 청국장 환을 일일이 다 찾아서 쓸어 담아서 다시 통에 넣었던 거야. 그걸 보고 내가 아주 큰 불효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지.. 청국장환을 하나씩 주으면서 엄마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도 안가는 거야.
나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는 절대 암환자 당사자의 심정을 모를 거라고 생각만 했어. 근데 반대로 나도 자식이 암에 걸린 엄마의 심정을 모르는 거잖아. 그때 그걸 처음 깨달았어. 엄마가 내 심정을 이해 못하듯 나도 엄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왜 내 맘을 몰라주냐고 화내는 대신에,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각자의 슬픔이 있다고 인정하게 됐어. 그치만 그때 내 행동은 아직까지도 후회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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