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다 우울하다 중얼거리면 정말 우울하게 된다.
나는 그것을 20년이 좀 넘는 세월로서 얼추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즐겁다 즐겁다 생각하면 정말 즐겁게 되진 않는다.
그래서 난 내 머릿속이 고장나 있다고 단정지었다.
우울한 분야를 다루는 톱니바퀴는 잘도 기름칠 되어있지만
즐거운 업무의 톱니는 담당 연구원의 게으름으로 인해
녹이 슬어 원활한 워킹을 할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눈알을 내 머릿속으로 거꾸로 비춰 그 망할 놈의 연구원을 찾았다.
연구원 '캐서린 A-2-XQ 3호'가 업무자리를 이탈한 채
시냅스가 교통하는 신경의 맨끝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달팽이관에서만 추출되는 점액으로 빚은 술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 입을 다물고 속으로만 옹알거렸다.
겉으로는 아마도 '음음으음음음음'이라고 들렸겠지만
안에서는-물론 깨끗하진 않지만-맑은 음색으로 연구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자작하다니, 심하잖아. 그럼 술맛이 나니?
네 개인적인 장소가 아니란 걸 알아줬음 해.
게다가 시냅스잖아. 덕분에 반사신경이 더뎌졌어."
연구원은 아무말없이 술만 마셨다. 안주도 없었다.
시냅스 사이의 전기쇼크들이 사뿐한 바람이 일으키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갔다.
"그만 마시고 일어나. 나는 즐거워지고 싶어."
참을 수 없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버렸다.
연구원은 한숨을 쉬었다.
"내 마음도 좀 알아줘봐"
그의 한마디였다. 그는 곧바로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쳐입은 흰 가운에 주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울한 분야의 톱니들은
아주 멀리 있었지만, 그것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미안해"
"아냐 됐어. 뭐, 결국엔 네 몸이 내 몸이니까."
내 입술과 연구원은 아무말없이 걷기만 했다.
"그런데 무슨 일 있니?" 다시 말을 꺼낸건 나였다. 연구원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길을 잃은 사람처럼 망설였다. 비극의 주인공이라도 된듯한 진지함도 비추었다.
낭떠러지에 떨어질듯 말듯, 위태로운 생각의 질주를 벌이다가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이상해. 우울하다 우울하다 중얼거리면 정말로 우울해지는데,
즐겁다 즐겁다 하면 왜 즐거워지지가 않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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