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reView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8


…에 대한 글을 쓸까, 말까 하다가. 뭐 음악이라고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영화에 대한 식견은 거의 없다시피하고,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길게 쓰고 싶진 않아서 영화 관련 글은 거의 안 쓰고 있는데 이건 잊기 전에 글로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쓴다.

사실 나는 한국 문화예술에 대해 극단에 가까운 사대주의를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적 있는 것 같지만 아닌 것도 같으니까 다시 씀. 대부분의 한국 영화, 드라마, 음악, 만화, 소설들이 전부 해외에서 누군가 했던 것들을 그대로 또는 교묘히 갖다 베끼는 수준이었고 그런 양상이 항상 일관적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실망하거나 기대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국내표가 붙으면 그게 뭐가 됐든 기대도 안 하고 보는데 음… <벌새>는 2019년에 본 '영화' 중에 최고였다. 한국 영화로 한정하면 <엑시트>는 두번째.


아 뭐 당연하지만 스포 주의








영화를 볼 때 예고편이나 사전 공개 예고편/줄거리등을 의도적으로 보지 않은 채 입장해서 보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뻔한 것들이 있는 반면 <벌새>는 보는 내내 가슴 졸이고 때론 답답하기도 하고 한숨도 나오고 눈물 쏟기만 하는 영화였다.

영화를 본지가 꽤 되어서 더 잊기 전에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빨리 적어야겠다. 우선 생각나는 건 성수대교 붕괴 사고과 그 사고에 영화의 등장 인물들이 반응하는 방식이었다. 그 사고를 경험하거나 기억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기에 그런 규모의 사고가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그래서 성수대교를 지나갈 때도 그냥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무심코 지나가는 정도였는데 사고로 누군가를 잃었든, 스스로를 잃을 뻔 했든, 직접적으로 아무 것도 잃지 않았든 그 자체가 어떤 커다란 충격과 상처로 다가오는 걸 보며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상처라는 건 직접 받아야만 아픈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 다양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 소리 없이 울거나, 울부짖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하여튼 그런 것들을 보면서 모두의 입장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소시민의 집 같은 환경과 가정 내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대하여. 숨 막힐 정도로 세심하고, 사실적으로 그런 분위기라든지 환경이라든지, 그리고 그곳에서 받게 되는 느낌이나 거주함으로써 표출되게 되는 겉모습이라든지 하는 그림들의 연속이 게 한꺼번에 닥쳐오니까 어떤 트라우마가 확 건드려지는 것 같아서 엄청 울기도 하고 한숨만 푹푹 쉬기도 했던 기억. 생각하니까 또 가슴 답답해진다

엄청 고압적으로 굴던 아빠가 은희 수술한다니까 뜬금없이 눈물 쏟고 식사 챙겨주는 등 애정을 보이는 장면, 그 뒤에 도둑질하다 잡힌 은희 그냥 경찰 보내라는 것도 무척 이해가 가면서도 여전히 이해하고 싶지 않던 장면이었음.

그리고 나에게도 김영지 선생림같은 분이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 영화 내에서 의도적으로 김영지는 흐릿한 유령이나 어떤 절대자, 종교처럼 연출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그녀의 죽음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딴 얘긴데 패션 센스가 아주 좋았고… 학원에서 꽂혀진 책들 보여주는 장면에서 '제2의 성'이 있었던 것도 인상적이었음. 김새벽 배우님 아주 멋있읍

그리고 김영지 선생림의 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학원을 그만둬서 미안해. 돌아가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

이것도 참 좋았지만 내게는 "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마. 알겠어? 약속해."라고 말하던 부분이 정말 좋았다. 김영지는 은희가 가정 내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그렇게 말하기 한참 전에 알고 있었고 가족 중 누구보다도 깊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이기에 참고 참았을 마음과… 결국 입을 열더라도 타인이라는 입장에서 드러낼 수 밖에 없는 한계, 또는 배려와 선의의 거리를 둔 상황의 김영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란 걸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물론 이 때도 진짜 펑펑 울었다.

아 그리고 한자 학원에서 김영지가 적은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능히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도 무척이나 마음에 남았던 부분. 왠진 모르겠는데 자꾸 마음에 꽂히더라.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려. 내가 싫어지면 나는 마음을 들여다 보려고 해. 이런 마음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힘들고 우울할 때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을 움직여 봐. 아무것도 못할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음 영화 처음 봤을 땐 뭔가 되게 가슴 안에 꽉 차는 것들이 많았는데 다 잊어버렸다. 뭐 결국 뭉뚱그려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살기 위해 힘겹게 날갯짓을 해야 하는 삶'을 비참하거나 동정의 시선을 철저히 배제한 채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가 <벌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 내에서 은희(와 등장인물들)는 굉장히 다사다난한 비극과 상실을 많이 겪는데 그럼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건 그게 정말 아무 일이 아니거나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날갯짓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냥 눈물 줄줄 흘리며 체념하는 것 같아 보이는 순간조차 견디고 버텨내고 살기 위한 발악이라는 것. 그게 선택지 중에서 고른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에 해야만 했다는 것. 그런 것들을 가감 없이 그려낸 게 너무 좋았고 그렇지만 그 누구에게도 이입하거나 적대하지 않는 점이 너무나 좋았다.


아직도 궁금한 건 영화 중간에 은희 엄마가 멍하니 선 채로 은희가 소리치듯 부르는데도 대답 않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건데 음 영화를 한 번 더 봐야 하려나. 한 번 이상은 꼭 보고 싶은 영화기는 하다. 또 울게 되더라도…

'Silly >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성년 Another Child, 2018  (0) 2020.03.08
조커 Joker, 2019  (2) 2019.10.27
BewhY / The Movie Star (2019) Review  (0) 2019.07.28
E SENS / 이방인 (2019) Review  (2) 2019.07.25
귀를 기울이면 Whisper Of The Heart, 1995  (0) 2019.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