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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SENS / 이방인 (2019) Review


1. COLD WORLD

2. 알아야겠어

3. BUCKY (Feat. Masta Wu, Qim Isle)

4. CLOCK (Feat. 김심야)

5. 그XX아들같이

6. ALL GOOD THING

7. DANCE

8. BOBOS MOTEL

9. BUTTONS

10. 05.30.18

11. RADAR (Feat. 김심야)

12. MTLA (Feat. Masta Wu)

13. BAD IDEA

14. DON (한정반 ONLY)

15. 서울 (한정반 ONLY)




돈의 신성화는 본토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탄생한 순간 태어나 쭉 함께 한 쌍둥이와도 같은 존재였다. Swag, Bling, 그리고 근래의 빠Flex끄 물결까지 이를 일컫는 이름과 형태는 조금 달라졌어도, 힙합에서 언제나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손님 중 한 명이 바로 돈으로 하는 자기자랑이라는 주제일 것이다.

일견 <이방인>은 이런 일련의 물질주의적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제스쳐를 갖고 있기에 돈과 거리를 두는 일종의 염세주의적이고 다분히 '언더힙합스러운' 앨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E SENS의 인디스러운 이미지와 철학이나 전작 <The Anecdote>가 담고 있던 극대화된 고뇌, 진지함과 우울함이라는 주된 정서가 이를 강화하여 선입견으로 작용한 탓도 크다고 본다. 하지만 그가 앨범 전체에서 끝없이 고하고, [알아야겠어]에서는 직접적으로 말한 것처럼('날 염세적이라 말하는 건 이해가 부족한 거지. 난 실패와 성공 둘 모두와 친해 이젠') 오히려 <이방인>은 어떤 랩보다도 더 솔직하고 달리 보면 노골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모습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이방인>이 물질주의적인가, 한다면 그건 또 아니다. 어떻게 보면 언뜻 본 흐린 <이방인>의 모습이 틀린 셈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Flex와 금수저를 조소하지만 동시에 새 차 구매와 돈 모으기 같은 물질적인 것에 대한 노골적인 추구를 하면서, 소위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모순되거나 상반된 개념을 논하는 아이러니는 아니다. 돈이 가져다주고 그럼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행태라는 공통점을 가진 양측을 비판할 뿐이며 그것이 가진 가치를 잘 알고 있고 이를 추구하는 자신의 삶이라는 태도를 기준으로 자신이 누구와도 같지 않다며 차별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돈을 떠받들거나 우상화할 필요는 없지만 경시할 필요도 없으며 그것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바닥에서 치고 올라온 삶 뿐이라는 것, 돈에 솔직해지고 이를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만족과 쾌락에 맞춰 추구하는 삶('어저께 나 새 차 하나 뽑았어. 택시 잡는 거 존나 귀찮아 이태원은 새벽이 지옥이더라고.') 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말이다.


결국 이센스에게는 쇼미더머니와 제이통('돈으로 매겨지지 않는 걸 왜 여기 와서 찾지?')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인데 그렇다고 그들을 적대하는 것은 아니며 그저 자신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짚어 언급하고도 있다('난 어떤 그 누구와도 다르다며 깝치는 게 아냐. 날 다루는 방법이 다른 것 뿐. 패배와 승리, 아래 위, 다 무의미.'). 비단 이런 부분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알아야겠어]의 인용문 등 음악 감상이라는 일방적인 소통에서 빚어질 수 있는 오해까지 상정하고 곡 안에서 미리 해명까지 해 두는 파트가 참 많은데 몇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가사의 내용 및 펀치라인과 더불어 창작 과정에서 강박에 가까운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무튼 이런 서사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앨범 타이틀인 <이방인>이다. 앨범 소개글에 적힌 'Don't walk behind me; I may not lead. Don't walk in front of me; I may not follow. Just walk beside me and be my friend.'라는 인용문과 여러 인터뷰를 단서로 알베르 카뮈의 동명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데 실제 소설의 내용과 앨범의 맥락상의 공통점은 없다. 실제로 이센스는 인터뷰에서 '출소 이후 음악 신과 괴리되어 있던 자신의 위치를 표현하는 적당한 단어여서 선택했을 뿐'이라고 했으며 따라서 모티브라기보다는 인용 정도가 적당한 단어 초이스라고 본다. 아무튼 음악 외적으로는 그렇고, 음악 내적으로 이방인이 가리키는 지점은 언더그라운드도, 오버그라운드도 아닌 음악을 대하는 이센스의 태도에 있다고 보여진다. 명확하거나 단순하지 않고 경계선에 걸쳐져 있는 흐릿한 태도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이런 방관자적 입장의 연극적 가사를 비트가 더 몽환적이고 연극적인 연출로 부각시키고 유지하고 있는데 프로듀서진은 굉장히 다양하지만 1차적으로 이센스의 비트 초이스가, 2차적으로 FRNK와 Cautious Clay의 편곡이 이 유기성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리버브된 소스만이 비트 사운드를 배가시키고 있을 뿐 건조하고 미니멀리즘한 분위기를 베이스로 한 트랩 위주의 비트들은 보컬의 뒤에서 분위기를 받쳐주거나 가사가 형성한 앨범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을 뿐이다. 물론 [COLD WORLD]의 '내 비전, 믿어'에서 비트가 일시적으로 뮤트되는 것처럼 상호작용하는 부분도 있지만 가령 일종의 skit 역할을 하는 [BOBOS MOTEL]의 후반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이센스의 랩이 앨범 전체를 메우고 있으니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비트 자체의 퀄러티를 폄하하는 말은 당연히 아니며 오히려 진부하거나 뻔할 수 있는 트랩 사운드를 어떻게 하면 독자적으로 연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이 담긴 결과물이라고 느낀다. 결론적으로 그만큼 <The Anecdote> 이후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많았거나 그냥 이센스 개인의 음악 스타일 문제라고 보았다.


랩에 대해서는 보컬 톤이나 라임 운용 방식 등 이센스가 랩이라는 악기가 가진 개별 체계를 완벽에 가깝게 이해하고 체화하고 스타일을 확립한 지 오래이기에 별다르게 언급하거나 지적할만 한 부분은 없다. 팔로알토나 딥플로우같은 올드 래퍼처럼 지나치게 정직하고 뻔히 예상되는 전개를 가진 것도 아니고, 유행처럼 번지는 라임 경시 현상과 그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노잼 랩들과는 확실한 차별점이 있는 점이 좋았을 뿐이다. 글로 엮어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을 문장을 플로우와 라임이라는 기본적인 요소로 재구성하는데 더해 이를 응용하고, 특유의 엇박으로 극대화되는 청각적 긴장감은 한국 힙합을 들으며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오랜만에 들게 해 주었다.

피쳐링진으로 참여한 뮤지션 중 김심야를 제외하고는 평소에 좋아하던 아티스트들이었기에 꽤나 기대하던 부분이 있었고 역시나 준수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Qim Isle은 초창기보다 안정된 톤에 어느 정도 정형화된 구조의 랩을 선호하게 된 것 같은데 물론 여전히 독보적이긴 하나 다소 평이하고 재밌지 않은 랩을 한 감이 컸고 Masta Wu는 항상 그렇듯 비트를 잘 이해하고 어떤 랩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김심야였다. 평소 김심야의 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방인>에서는 훌륭히 제 몫을 해내는 것은 기본이고 [RADAR]에서는 주체가 되는 이센스보다 김심야의 훅만이 기억에 남았을 정도로 뛰어난 랩을 선보여주었다. <이방인>을 통해 두 뮤지션에 대한 긍정적인 제고를 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그의 음악이 음울하고 날 선 혼자만의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지만 그런 음악이 다수의 청중에게 큰 위로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인 목표와 그 추구, 다소 자조적인 태도, 확고한 주관과 신념 등을 담은 가사는 이센스가 딱히 청자는 물론 특정 대상을 향해 쓴 것이 아님에도 그 콘텐츠가 한 개인의 특수한 경험만이 아니기에 큰 위안이 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내 인생은 조금 꼬였었지만 사실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도망 안 쳐. 안 숨어.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서. 남들이 무모하다 말 하는 것들 중에 꼭 보석이 박혀있지.'처럼, 어떠한 고난을 실제로 지나 이겨낸 사람의 증언이기에 더 설득력 있게 이해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지점 말이다. 고립되었던 한 이방인이 수많은 다른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긴 <이방인>은 그래서, 특히 요즘 같은 때에 더 가치있다. 외로운 음악을 들으며 외롭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가.


8.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