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reView

양우석 / 냉장보관 (2018) Review


1. 맥박

2. 지네

3. 매미 (Feat. Momojein)

4. 안대

5. 만거




1995년생 양우석은 본명을 랩 네임으로 쓰는 뮤지션이다.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7년 [나방], 그리고 2018년 [냉장보관]이라는 믹스테잎을 온라인으로 발매했다. 원래는 냉장보관-냉동보관 연작으로 기획되었으나 [냉동보관]은 연기되었고 현재 [양우석 단편선1]이라는 제목의 믹스테잎을 준비 중에 있다.


양우석의 명확한 장점은 우선 한국말 랩에서의 라임을 정확히, 그것도 무척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점에 있다. 소울 컴퍼니(화나라고 콕 찝어서 말은 안 하겠다)가 전개하고 리스너들의 괄호 놀음으로 절정에 다다른 한국 랩 라임 방법론은 지금까지도 그런 뿌리를 기반으로 답습되고 있고 심지어는 그런 라임조차 무시하는 게 요즘의 시류인 것 같다. 그런데 양우석은 '단순 모음 맞추기'를 떠나, '비슷한 발음을 맞추는' 정석적인 라이밍을 굉장히 안정적으로 구사한다. 2번 트랙 <지네>에서 '젊음은 저무는 저능들', '벌이가 벌이가 되려면 버릴 것 버리고' 같은 부분이 훌륭한 예시가 되겠다. 발음을 비슷하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어미를 흐리거나, 톤을 낮추거나, 읊조리는 식으로 라이밍을 강조하기도 하며 그런 방법론이 라이밍의 강조라는 기능 이상으로 음악의 완성도 자체에 보컬이라는 악기로써 기여하게 되는 점은 여느 프로 뮤지션보다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나는 '음악가는 소리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지 메시지를 갖고 노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모토로 음악을 비평해왔다. 그러나 이것이 메시지를 등한시해도 괜찮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비교적 직설적인 언어를 빠르게 내뱉는 랩 음악의 특성(그리고 기타 태생적인 이유 등등) 상 보컬은 직접적인 악기로써 음악 안에서 기능한다. 따라서, 드럼이 몇 박자고 어떤 악기가 쓰였고를 생각하는 것처럼 청자는 보컬의 구성 또한 자연스레 파악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메시지이며 그 메시지가 드라마틱한 서사를 담고 있을 때 랩은 더욱 생기를 얻게 된다. 비록 '물론 아냐 라면'같은 괴물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펀치라인 놀이가 왜 부흥기를 맞았었겠는가. 또 켄드릭 라마의 아버지 서사가 없었다면 [DAMN]은 결코 완결될 수 없었다. 트랩과 멈블 장르가 누군가에게 재미가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장르 자체가 가진 메시지의 부재라는 한계 때문이다.

개별 트랙의 주제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냉장보관]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거나 겪어 봤을 감정과 경험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만거]처럼 개인의 특수한 상황이 개입해 있는 트랙도 부분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에 기반한다. 그리고 구체적 메시지를 음악적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개념을 한번 꼬아서 암시적이며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도 화자의 의도나 생각을 파악하는 과정이라는 즐거움을 준다. '젊음은 비어, 성공은 기억하기 나름이라며 말하던 애는 코가 매우 빨갰지', '이 새끼는 기집애 같다는 말, 그 세 글자를 죽였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날 알까'같은 문장들로 심상을 언뜻 내비치면서, 문장의 도치를 철저히 배제하고 어감에 어울리는 보컬 운용 등의 방식을 통해 감정을 증폭시킨다. 예를 들어 [지네]에서 '우울하네. 난 이런 파티엔 어울리지 않아. 술도 안 마시고 담배만 거의 한갑을 피운 거 같은데 불은 켜질 생각을…' 부분에서는 톤의 강세나 발음이 낮춰지고 흐려지는 식이다. 앨범의 구성도 괄목할 만한데, 가령 [만거]에서 '너의 선택은 피운 뒤에 다시 또 지네'라는 구절로 이 트랙이 2번 트랙 [지네]와 간접적인 접점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이런 부분들은 모두 작품의 완성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통상적인 컨셔스 랩은 정치, 경제, 차별 등 화자를 억압하는 '외부' 세계에 대한 저항 의식을 위주로 각자의 신념을 내뱉는 것을 이야기한다. 방식과 결과물은 다양하나 결국 대상성이 자신과 분리된 타자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양우석의 음악은 그 반대다. [냉장보관]은 전체적으로 뮤지션의 '내부'로 에너지가 투사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외부 세계나 제3자가 등장하기는 하나 관조하는 것 이상으로 평가하지는 않으며 결국 자신을 구심점으로 던진 공이 돌아오는 걸 받고, 다시 던지는 식으로 트랙은 진행된다. 결국 각종 사회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은 스스로의 경험일 것이고 그것을 그만의 매력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양우석이라는 한 개인이 자신을 관찰하고 서술한 글은 앨범이 되고 청자에게 닿는 순간 감정의 울림이 된다. 듣는 사람이 누구건 간에, 그런 울림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재능을 양우석은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내가 양우석을 조금 특별한 컨셔스 래퍼로 칭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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