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뜨(Roland Barthes, 1915~80)는 사진에는 크게 두개의 층위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코드에 따라 사진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는것. 이를 '스투디움(studium)'이라고 한다. 일반적 해석의 틀에 따라 사진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진의 감상이 그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는 해석학적 과정에 불과한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바르뜨는 이제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진의 또다른 층위를 소개한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스투디움과 관계없이, 때로는 그것을 전복시키며 보는 이의 가슴과 머리를 찌르는 효과다. 똑같은 메시지를 담은 사진이라도 어떤 것은 별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나, 다른 것은 왠지 모르게 나를 사로잡고, 나를 아프게하며, 나에게 상처를 준다. 이때 사진과의 만남은 그저 머리로 의미를 읽어내는 해석학적 작업을 넘어 신체와 영혼으로 사진의 본질을 체험하는 실존적 사건이 된다. 이것이 바르뜨가 사진의 진정한 본질로 꼽은 '푼크툼(punctum)'이다. 바르뜨는 그것을 "고유한 우연성이며 순수한 우연, 고유한 기회이자 고유한 만남"으로 정의한다. 푼크툼은 본질적으로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나 대상과의 진정한 만남은 이런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함에 틀림없다.
'사건'처럼 우리를 엄습하여 사로잡아버리는 사진의 효과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푼크툼은 "코드 없는 메시지"이기에 예술가가 의도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본질이 푼크툼에 있다면, 예술가는 그 본질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진중권,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p.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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