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 파일럿은 있으니 드레스랑 필드워치중에 하나로 삼신기를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한 때 더티 더즌이 끌린 적도 있었지만 다소 투박한 느낌이 맘에 안 들고, 그렇다고 드레스워치를 찰 만큼 다소곳 라이프를 살고 있진 않은데다 그 단정한 느낌이 좀 별로라서 여기서 멈출가 생각했는데… 구경하다보니 드레스워치에 머리 깨져버림
생각해보면 드레스워치는 독자 장르란 점에서 매력이 있다. 다이버, 파일럿, 필드 워치가 밀리터리와 직간접적으로 역사를 함께 한 데에 반해, 드레스 워치는 그 자체로 특정 복식(주로 포멀한)의 쥬얼리나 장식품 개념으로 접근되는 개념으로 시작한 시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포멀한 복식도 밀리터리와의 접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 큰 결에서 다르다는 것이니 반박시 내 말이 맞음
내 기준의 시계 상한가는 30만원 이하인데 드레스워치는 일견 소위 패션브랜드 워치와 외관 등의 맥락을 공유하는 바가 있다보니 다른 장르보다 더 선택의 여지가 많았다. 상한가에서 두 배 정도 욕심내본다면 그레이마켙에서 융한스 막스 빌 쿼츠까지 생각해볼 수 있을 정도로 가격대도 접근성 있는 편이고?
다만 근본브랜드인 건 좋은데 사파이어 크리스탈 글라스 아니면 쳐다도 안 보기로 했기에 굳이 무리해가면서 막스 빌을 구매할 이유는 없었다.
금액적인 부분 외에 내가 찾는 드레스 워치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37mm~39mm 사이일 것: 얇은 베젤(시계 가장자리 부분)을 가진 드레스워치 특성 상 같은 사이즈라도 더 커보이는 특징이 있다. 손목이 가느다란 편인 나에게 최소 39mm 사이즈가 마지노선이고, 40mm 이상은 예뻐도 후보 자체에 넣지 않기로 함
반대로 너무 작아도 별로일 수 있기 때문에 하한선도 정했음
·미니멀리즘 디자인: 바우하우스 스타일로도 불리는, 노모스나 융한스 등에서 시도하는 미니멀한 디자인. 복잡한 다이얼이 오래 두고 보기 즐겁다는 견해에는 동의하나, 눈이 즐거운 시계는 이미 보유하고 있어서 심플한 시계를 갖고 싶었음.
단, 디자인 특성상 잘못하면 너무 심심해 보이거나, 작은 포인트라도 너무 튀거나, 다니엘 욀링턴 또는 스카겐 등 다이소 디자인 시계처럼 보일 여지가 있기 때문에 선택지는 많았어도 고르는 데에 더 신중을 기하게 되는 점이 있었다.
무튼 예산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 브랜드들은 Braun, Harriot, Sternglas, Nordgreen, About Vintage, Oliver Green, Iron Annie 등이었다.
브라운은 디자인들은 좋지만 사파이어가 아니라 패스. 높은 가격대에서는 사파이어가 있긴 한데 디자인이 취향 아니었음
해리엇은 마음에 드는 모델이 사파이어 아니고(성산) 품절이거나(서해) 사이즈가 커서(40mm) 패스
노드그린(Pioneer)은 사이즈도 그렇지만 디자인이 결정적으로 취향에 맞는다는 느낌은 아니었음
어바웃 빈티지(1844)는 고민 당시 보너스 스트랩과 할인의 이점이 있었으나 역시 사이즈 때문에(41mm) 패스
올리버 그린(Arbor)은 스몰세컨즈만 너무 툭튀라서 패스
아이언 애니. '융커스'라는 예전 이름으로 더 유명한 브랜드인데 디자인이 빈티지하다기보다 그냥 올드하다는 느낌만 들어서 패스했다. 아이언 애니를 포함한 POINTtec의 산하 브랜드들(Zeppelin, Bauhaus) 전부 다 그런 인상임.
소거법으로 Sternglas만 남게 되는데 우선 발음에 관한 부분부터 얘기해보고 싶다. 모 유튜버는 '스턴글라스'로 읽고 국내 욉 검색을 해보면 '슈테른글라스'로 소개되고 있는데 현지인 발음을 들어보면 슈테른보다 슈테안, 슈테언에 가깝게 들린다. 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단순히 시계를 열심히 차고 즐기는 선에서 끝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소비하는 브랜드가 정확히 어떤 이름인지를 알아두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 않나 싶음. 따라서 이제부터 '슈테언글라스'로 표기할 예정이고 Stern은 별, Glas는 유리라 하니 대충 글라스에 별 같은 아름다움을 담는 브랜드다?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갓다.
슈테언글라스는 Dustin Fontaine이 2016년 10월 킥스타터를 통해 시작한 브랜드고, 18년 1월에는 첫 오토매틱 시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1년 9월에는 오토매틱 다이버 워치인 Marus 라인을 발표함으로써 장르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역사가 길지 않고 특별한 족적도 없어 보이지만, 22년 기준 7년의 시간 동안 계속 콜렉션을 확장하면서 브랜드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슈테언글라스가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확보한 괜찮은 마이크로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Sternglas Naos White Quartz 스펙
케이스 사이즈 : 38mm
케이스 높이 : 6mm
러그 너비 : 20mm
러그 투 러그 : 41mm
방수 : 50m
글라스 : 무반사 처리된 돔형 사파이어 글라스
무브먼트 : Ronda 714 쿼츠
재질 : 316L 스테인리스 스틸
슈테언글라스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인 Naos는 크게 케이스 사이즈 33mm인 Naos XS와 38mm인 Naos 라인으로 구분되고, 오토매틱은 일반 Naos에서만 전개되고 있다. 쿼츠와 오토매틱의 차이점은 일단 가격, 두께, 케이스백의 디자인 정도일 것인데 쿼츠는 일반적인 스틸 케이스백인데 반해 오토매틱은 시스루백이다. 오토매틱은 흥미 없어서 쿼츠를 선택했고 가격은 22년 9월 기준 276,000원. Naos를 검색해보면 '고대 그리스의 신전건물내 신상이 배치되는 방'이라고 하는데 다른 제품군의 이름들과 비교해봐도 네이밍의 기준을 모르겠어서 이게 어원인지 아닌지는 몰?루겠다.
디자인으로만 따지면 막스 빌과 비슷한 Hamburg 라인이 조금 더 내 취향이긴 하나 42mm 사이즈때문에 GG. 나오스의 디자인도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이즈만 작았으면 망설임 없이 함부르크를 택했을 것.
브랜드에서 제공하는 WELCOME05 쿠폰을 써서 내가 실제 지불한 비용은 247,950원이고, 8월 30일 입금 확인된 주문을 9월 2일 DHL을 통해 4일만에 수령했다. 메일로 문의했을 때 관세를 포함한 세금에 대한 모든 비용을 슈테언글라스측에서 부담한다는 답장을 받았으니 관부가세는 아마 그 쪽에서 내준 것 같읍니다.
나오스도 미니멀이라는 목적과 본질을 잊지 않는 선에서 길이가 다른 세 개의 인덱스로 마냥 심심하지 않은, 흥미로운 디자인을 구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디자인상의 심심함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란색의 위트 있는 핸즈는 초침 없이 시/분만 구현되어 있는데 일상적으로 볼 일이 없는 초침이니까 과감히 배제한 것이라면, 요컨대 실용성의 측면에서 다이얼을 디자인한 것이라면 마찬가지 맥락에서 빠르고 직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덱스의 길이를 조절했다고 해석함이 맞을 것이다. 형태에 따른 미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분인 것이고.
숫자 인덱스는 12시부터 2 단위로 표시하고 있고, 데이트는 6시 방향에 위치해 있는데 데이트를 선호하지 않지만 이 디자인에선 데이트가 있는 게 전체 밸런스상으로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인덱스와 폰트도 밸런스를 위해 정갈한 느낌으로 잘 선택했다. 상단에는 브랜드의 풀네임인 Sternglas Zeitmesser가 적혀 있다. 이런 구성의 디자인이 300%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교했던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지향하던 느낌에 가장 가깝고 무엇보다 바우하우스의 원산지ㅋㅋ인 독일 브랜드라는 점이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요소 중 하나였다.
특이한 점 하나로 나오스의 디자인이 한 차례 변경된 것 같다는 건데, 예전 리뷰를 보면 데이트창이 3시에 있고 하단 문구도 38MM BAUHAUS로 적혀져 있었다. 케이스 사이즈와 바우하우스라는 문구가 굳이 적혀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의 더 간결해진 디자인이 맘에 든다.
대부분의 드레스워치가 그렇듯 따로 야광기능은 없으며 이를 위해 핸즈나 인덱스의 너비가 넓어지게 되거나, 야광점이 있었다면 오히려 별로였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야광에 집착하는 스타일인데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완벽한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시계의 모든 색감은 맨 처음 올린 사진과 제일 가깝다고 생각해주면 되겠다. 핸즈는 톤다운된 차분한 무광 파란색이며 구운 핸즈인지는 모르겠음. 가격 생각해보면 굽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아니어도 상관 없음
한 번 언급했지만 브랜드명을 포함한 모든 폰트가 정갈하고 깔끔하며, 무엇보다 그런 느낌을 최종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프린팅이 완벽하게 되어 있다.
시계의 모든 면이 폴리싱 처리되어 있고 뒷면 상단에는 브랜드 이름, 하단에는 함부르크에서 설립됨(아마도), 5기압 방수, 사파이어 글라스, 시리얼 넘버가 표기되어 있다. 시리얼 넘버는 일월년을 뒤집은 숫자+시계 생산 넘버를 섞은 것 같다.
스틸 케이스백은 네 개의 일자 나사로 고정되어 있다. 럭 투 럭은 41mm로 굉장히 짧아 시계의 작은 느낌을 보존하려고 하는 느낌이다. 확실히 처음 찼을 때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당황했었다.
푸쉬-풀 방식의 크라운에는 음각의 슈테언글라스 로고가 있고, 1단을 뽑았을 때 날짜 조정, 2단을 뽑았을 때 시간 조정을 할 수 있다. 초침은 따로 없는데 나는 애초에 시계를 1-2분 정도 빠르게 돌려놓는 편이라 불편함은 없었다.
글라스는 직각의 꺾임 같은 게 없는 원을 그리는 돔 글라스로, 더블 돔인지 가장자리에서 다이얼의 왜곡이 없다.
50m의 방수 성능은 나오스의 실용성이라는 콘셉트를 완벽히 마무리해주는 옵션인 듯 하다. 땀이나 먼지 등으로 오염되었을 때 가볍게 흐르는 물에 씻어줄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성능이라 아주 만족스럽다.
나오스 화이트 쿼츠는 브라운 카프레더 스트랩이 고정 옵션인데, 메일로 러버 스트랩으로 교환할 수 있는지 문의했고 선뜻 커스텀 오더를 받아주었다. 원래는 다이버 워치용으로 나온 스트랩이라 다소 위화감은 있으나 개인적으론 아주 만족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폭이 20mm라 시계의 작은 맛을 조금 더 살려준다. 두께는 3.5mm로, 보이는 인상만큼 탄탄하고 단단하나 체결하기 힘들만큼 딱딱하지는 않다.
스트랩 안쪽에는 튀어나온 시곗줄을 고정하기 위한 키퍼까지 정사각형 구조로 요철 처리를 해서 땀이 쉽게 차지 않도록 신경 썼고, 퀵 릴리즈 교체방식이라 혹시 변덕이 생겼을 때 편리하게 스트랩을 교체할 수 있다. 버클과 스트랩 내부에 슈테언글라스 마킹이 되어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긴팔에 찰 시계에 드레스워치만큼 적합한 장르는 없는 것 같다. 또 겨울엔 보통 코트처럼 포멀한 느낌으로 입다보니 그 느낌을 더 잘 살려서 찰 수 있을 것도 같고. 원하는 조합의 시계를 빠르게 수령할 수 있게 도와준 슈테언글라스의 Sarah에게 아주 감사하며… 덕분에 처음(?) 시도해보는 드레스 워치 경험을 아주 만족스럽게 할 수 있었다. 돔 사파이어 글라스에 괜찮은 방수성능 등의 옵션을 가진 독일 시계를 이 정도 가격에 손목에 찰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하며, 시계 찰 손목은 하나인데 벌써부터 Marus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과연 언제까지 안 사고 참을 수 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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