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슈퍼문

우선 밝히건데, 누군가의 아픔에 잘 공감한다거나 정이 많다는 수식어와는 특별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낭만적인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정도도 그저 모든 평범한 사람만큼일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슈퍼문이라길래, 얇고 닳은 후드를 입고 밖을 나섰다. 평소 달을 보러 밖을 나선 적은 없으니, 여기서만 봐도 난 그저 희소하고 특별한 경험을 좇는 단순한 속물이다. 언젠가 식사나 술자리에서 들고나온 이야깃거리가 동났을 때, 타이밍 좋게 '지구에서 달이 가장 가까워지는 슈퍼문을 봤는데 말이야...'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밖을 나섰다고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얇은 긴 팔 후드가 쾌적할 만큼 밤바람이 선선했다. 슈퍼문은 보통때의 달보다 0.5mm정도 큰 듯했는데, 그조차 내 기분탓인지 의심스럽다. 크기야 어쨌거나 의미가 중요한 거니까 괜찮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중 여자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지나칠 수 있었지만, 원래 타인의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 흥미있는 법이다. 불켜진 2층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였다. 얼마간 화단에 앉아 엿들었다.
 

페이스북에는 좋아요 버튼밖에 없다. 페이스북에는 행복한 모습밖에 올라오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자신의 불행, 혹은 불운을 한탄하는 글들도 결국에는 그런 불행을 견디는 자신의 대단함을 숨기고 있다. 누가 더 불행한가 겨루는 것은, 결국 누가 더 행복하고 대단한가를 겨루는 것에 불과하다. 불행배틀이라고 하던가.
 
익명이 없는 공간에서는 행복이 너무 많다. 숨막힐 정도다. 반면 익명 게시판에는 부정적인 글이 넘친다. 그곳의 글들은 원초적 욕망과 시기심, 분노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것들을 들여다보면 삶에 대한 불안이 생긴다. 하지만 나는 익명게시판이 더 편안하다. 자신의 재치, 순수함, 올곧음, 똑똑함, 정직함, 위악을 가장한 위선이 불편하다.
 
누군가의 한맺힌 통곡을 듣고서야 세상의 고통이라는 일면을 깨달을 정도로, 웃음이 염병처럼 만연한 세상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밝히지만, 나는 특별히 어두운 사람이라거나 불행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누구나처럼 밝음을 바라고 타인의 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저, 누구나 그렇듯 어둠이 더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이다. 한없이 밝고 환한 세상에 있다보면 어둠이 더 진실되고 소중한 것처럼 보이듯이.







http://blog.naver.com/lookane/90175716757

'Screep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형  (1) 2013.09.13
염증  (0) 2013.09.13
불의에 대한 정의의 불의  (0) 2013.09.13
교통사고 합의요령  (0) 2013.09.13
생물학적 원칙에 위배되는 동성애??  (0) 2013.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