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

로켓 폭죽과 답정너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로켓 폭죽 이야기>는 똑똑하지만 그만큼 독선적이고 자기 위주의 로켓 폭죽이 남들을 깔보고 스스로의 주관대로만 행동하다 결국 버려지고 어찌저찌 폭죽의 본분을 다하기는 했지만 누구도 그 불꽃과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막대기만 남아 거위 등에 떨어져 생을 마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새 무슨 유행이라도 된 것마냥 소위 답정너라 불리는 이들에 대한 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아니, 이미 답정너 퇴치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을 깔아뭉개고 그걸 보고 히히덕대는 이 기이한 행동은 유행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나도 그걸 보면서 웃기도 하고 통쾌함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내 기분이 나쁘다고 남한테 재수 없게 굴어도 될 권리가 없듯이 답정너라고 함부로 돌직구 던지고 막말해도 될 권리를 갖는 건 또 아니다.(물론 이렇게 때리기라도 해야지만 정신 차리는 인간들은 분명 있다)

내가 문제 삼으려는 건 답정너 퇴치가 아니고 그 답정너 까기의 열풍에 눈이 멀어서 진짜 고민을 가진 사람마저 답정너로 몰아세우는 경우에 대한 우려다. 근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읍니다. 인터넷에서 고민을 말했는데 답정너로 몰린 상황에 대한 토로를 몇 번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재수 없는 로켙 폭죽의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대개의 사람들은 어떤 유행에 쉽게 편승할 줄만 알지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깊게 생각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다른 것, 다른 사람, 결과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없다. 그들의 특징을 구체적인 예시로 들어보자면, 많은 관객수가 작품성과 비례하는 줄 알고 있고, MP3엔 이 주의 top 100 노래들이 들어있다. 그리고 맹목적이다시피 좋아하는 아이돌(들)이 있으며 we no speak americano-party rock anthem-강남스타일의 3대 계보를 지겹도록 좋아하고 틀어댔을 것이 틀림 없다.(반농담으로 말한 일반화일 뿐이니 해당되는 게 있다고 기분 나빠하면 제가 좀 곤란하겠읍니다)

아무튼 뭐가 거짓말이고 진짜인지 합성인지 아닌지 농담 진담 구별할 줄 모르고 미러리스 좋아하고 그림이나 음원파일 화질 신경안쓰고 뭐가 고민이고 뭐가 답정넌지 분간도 못하고ㅁㅇㄻㅇㄴㄹ~~하여튼 이런 사람들이랑 같은 종의 동물이고, 부대끼고 말 한마디라도 섞으며 살았고 ,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되게 역겹게 느껴진다.
오스카 와일드는 로켙 폭죽을 되게 부정적으로 묘사하는데 처음엔 내가 의기양양해서 선민의식에 가득 차 있을때의 모습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모습에 뜨끔했었지만 읽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누가 보든 보지 않았든 아름다운 불꽃을 펼치기라도 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의미있는 거라 생각하고 종종 가시가 다 뽑힌 고슴도치마냥 구는 나보단 일관성 있는 재수없음을 유지하는 그 모습이 더 멋지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선택할 수만 있다면 그런 세심하지 못한 사람들이랑 섞이느니 그냥 초라한 막대기가 되어 고고하게 썩어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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