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아버지한테서 문자가 왔었다.
할머니가 말기 암인데, 큰 병원에서도 손쓸 수가 없어서 요양원으로 보내진 상태라더라.
근데 좀 웃긴게... 할머니의 여러 친척들(='아들딸들과 부인들, 손자손녀들'이라는 의미임)들은, 이 할머니에 대해 그동안 다들 무관심했다.
물론 그나마 조금 관심을 가진 친척들도 있긴 했는데, 대체로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할머니는 서울 어느 동네의 단칸방에서 혼자 따로 살았다. 친척들과 만나서 같이 밥먹는 건 명절 때에만 예외적으로 볼수 있는 풍경이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할머니들이 있다.
다들 뽀글머리를 해서 비슷비슷한 이미지이긴 하지만, 저마다 다 다른 성격을 가진... 다 다른 할머니인 것이다.
'나이를 많이 먹은 인간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당신의 할머니와 나의 할머니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이다...
이 할머니는 친척들 중 누구한테도 별로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그런 할머니였다.....
정말 제멋대로에 소리를 꽥 지르고 주위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그런 성격이었다.
나이를 먹어서 성격이 그렇게 변한 게 아니라... 이 할머니의 경우는 옛날부터 쭉 그런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예전 일화들을 들어보면, 오히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심했던 것 같다.
이 할머니의 성격은... 내 아버지의 성격과 정말 판박이어서... 굉장히 거부감이 든다.
자기 기분을 남한테도 강요하며... 대화가 조금도 안 통하며... 인생에서 양보란 없으며... 가족과 친척들을 지치고 피곤하게 하며... 독단적인 결정으로 가정형편을 밑바닥까지 갉아먹으며... 특유의 시끄러운 말과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며...
아니다 그만두자.........
가정사에 대한 설명은 해도해도 끝이 없으며,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꼭 누군가한테는 오해를 받고 욕을 처먹게 되더라....
아무튼... 나는 '할머니가 말기 암 상태이니 XXXX 요양원에 와 달라'는 아버지의 문자를 그저께 받았었지만,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서 또 같은 부탁을 하더라...
결국... 그냥 가기로 했다... 여기서 한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라 존나 먼데..... 아 몰라 그냥 가기로 했다...
부모-자식 사이에는 애증이든 애정이든 어쨌든 정 비슷한 게 있는 것 같지만
조부모-손자 사이에는 그런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나의 손자(만약 있다면.)가 나에 대해 정을 느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내 손자가 나의 죽음을 별로 진심으로 슬퍼하지 않아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
물론 사람 인생은 더 살아봐야 아는 거고 사람 생각은 그때그때 조금씩 바뀌어가는 거라지만
적어도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요양원에 도착했다.
요양원은... 겉보기에는 병원 비슷한 생김새지만, 병원에 비하면 딱 봐도 치료시설 같은 게 굉장히 부족해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병실 하나에는 여섯 명 정도의 할머니들이 누워 있었다(할아버지들은 다른 층에 있는 걸까? 이 층에는 할머니들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말기암 환자가 되어버린 할머니를 보았다.
그런데 나는 요양원이라는 곳을 이번에 처음 와본 것이다.
나는 '요양원'이라고 하면 막연히 뭔가... 정성스러운 간병인이 바로 옆에 딱 붙어서 헌신적인 간병을 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환자 수는 많은데, 간병인들이 몇 명 없었다. 계속 이 병실 저 병실을 옮겨다니더라.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것에 비하면 뭔가 헌신적인 느낌도 별로 없고... 그냥 보통 병원의 환자 대하듯 하는... 그런 분위기처럼 느껴졌다.
(물론 여기 말고 다른 요양원은 여기보다 상황이 나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친척들도 내가 상상하던 거에 비하면 병실에 그다지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는 않더라.
(물론 '공식적으로 허용된' 면회 시간이 얼마 없긴 하다)
그리고 병실 하나당 TV가 하나씩 있었는데... TV 볼륨이 너무 컸다.
아무리 봐도 이 병실의 할머니들 중 TV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볼륨을 조금 줄였다...
이 병실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늙은 환자들이 있는데, TV 속에는 젊은 배우들이 무슨... 사랑이 어쩌네 저쩌네 하며 열내고 싸우고 있었다.
요양원 풍경은 한마디로... 정말 외롭고 (그리고 환자 본인에게는 고통스러운) 그런 풍경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요양원 풍경과 달라서 조금 놀랐다......
아주 무한히 외롭고 괴로운 풍경이었다.
죽음은 무섭다.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우리에게 죽음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무섭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장례식장보다 이 요양원이 더 무서운 것 같다.
장례식장은 죽음이라는 이미 끝난 사건을 다루는 공간이지만...
요양원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죽음도 무섭지만, 죽음보다 더 무서운건 '곧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데... 그 그림자에게서 도망칠 힘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뒷걸음질 칠 수는 없고, 그저 앞으로 계속 떠밀려가는 채로... 무섭고 소름끼치는 새까만 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이다...
언젠가 나도 죽을 것이다.
나도 요양원에서 이렇게 허술한 간병을 받으며 고독하게 죽음을 맞게 될까?
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내 자식들(있을지 모르겠지만, 있다고 가정하자)은 나의 죽음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질까?
근데 아무리 혈육 사이일지라도, 서로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효심이나 공경심,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 같은 건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생길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생물로서의 본능 같은 게 있으니까, 생물로서 후손으로서 슬픔이라는 감정이 작동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인간으로서 한 인간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건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혈육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느냐 마느냐 하는 건...
그들이 함께 살면서 서로를 어떤 인간이라고 느꼈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다
제발 자신이 느끼는 슬픔과 같은(혹은 비슷한) 슬픔을 느끼기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 쓰는데 왠지 기분이 복잡하다
서로 모순되는 기분들이 뒤섞여 있어서... 아마 이 글 속에서도 굉장히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많이 발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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