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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카 5303-1 Serica Watches Ref. 5303-1

세리카(Serica Watches)는 프랑스 파리의 샤퐁 거리에 위치한 시계 브랜드 겸 판매점이다. A Man & His Watch의 저자이자 WM 브라운 프로젝트(남성 패션 관련 블로그 및 스토어) 운영자인 맷 흐라넥(Matt Hranek)과 제롬 버거트(Jérôme Burgert), 가브리엘 베셰트(Gabriel Vachette), 다비드 가뉴반(David Gagnebin)의 4인이 설립했다. 헤드 디자이너로서 제품의 설계를 맡는 것뿐만 아니라 인터뷰나 홍보 등 대외적인 업무를 제롬 버거트가 주로 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후술할 브랜드 창립의 역사를 보면 아마 세리카도 그의 주도로 만들어졌으리라 추측해본다.

제롬 버거트는 20대 후반 프랑스의 온라인 시계 잡지 레 라비여스(Les Rhabilleurs)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을 때 시계 회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레 라비여스의 시계 스트랩 브랜드인 조셉 보니(Joseph Bonnie)의 제품 디자이너가 되면서 시계의 유형, 제조,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측면의 지식을 쌓게 됐고, 2019년 더티 더즌을 베이스로 한 필드 워치인 4512 컬렉션을 시작으로 21년 7월경 다이버 워치 5303 발매, 그리고 22년 10월 크로노미터 인증 GMT 워치인 8315를 프리오더받기 시작하며 꾸준히 성장하는 브랜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브랜드 명칭의 모티브가 된 세리카(Serica)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리학자들이 일컫던 아시아 극동 국가의 이름 중 하나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육로 실크로드로 도달할 수 있었던 주, 진, 한나라 시대의 북중국을 지칭한다. 라틴어 세리카는 그리스어 Sērikḗ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는 그 이전에 비단을 의미하는 sērikós에서 유래되었다. 14세기의 탐험가들이 도달할 수 있었던 세계의 끝이, 시계로 할 수 있는 가장 먼 탐험을 하고자 하는 본인의 지향점과 맞물려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애니 캐릭터 이름 같아서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진짜 의미도 무척 괜찮게 느껴진다.

 

블루 아카이브의 쿠로미 세리카



 

 

 

 

 

Serica Watches Ref. 5303-1

케이스 사이즈 39mm
케이스 높이 12.20mm
러그 투 러그 46.5mm
러그 너비 20mm
케이스 재질 316L SS
베젤 재질 세라믹 & 스테인리스

글라스 더블 돔 사파이어 크리스탈

316L SS 테이퍼링 폴디드 메쉬 브레이슬릿

-수퍼루미노바 C3

-Soprod P092 무브먼트
-44시간 파워 리저브

-크라운 왼손잡이/ 오른손잡이 옵션

 

 

 

5303은 다이얼이나 베젤의 컬러에 따라 1, 2, 3번 모델로 나누어지며 나머지 스펙은 같기에 가격은 동일하다. 22.10.20 기준 해외 판매가는 1,075유로이고 추가 배송비 50유로가 더 붙는다. 배송은 DHL을 이용하며, 주말 포함하여 주문 뒤 정확히 일주일 째 되는 날 시계를 수령했다.

 

 

 



5303에 일반적인 빈티지 다이버 워치들이 따르는 공식들-올드 라듐 인덱스, 돔 글라스, 작은 사이즈 등-을 대입해봐도 분명히 몇 군데에선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고 그것들이 세련됨이나 고상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전체적인 외관을 보면 빈티지, 또는 레트로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상한 느낌을 '50년대의 사람들이 상상한 미래의 다이버 워치'라는 문장으로 풀어내고 싶은데, 모두가 이런 인상에 동의하진 않을 것이지만 규정할 수 없는 유니크한 디자인이란 점엔 다수가 동의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매료된 것도 이 부분이었고…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고 기본적인 장르의 문법을 빌리되 전혀 새로운 것으로 대체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뮤지션이나 음반에 더 매료되는 경향이 있는데, 취미의 영역이 달라져도 취향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서 재밌다.

 

 

 


5303이 빈티지 스타일 다이버라는, 혹은 빈티지 다이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첫 번째 단서는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5303의 풀네임은 Ref. 5303인데, 일단 숫자는 최초의 다이버 워치로 '알려진' 롤렉스 서브마리너와 조디악 씨울프가 전시된 1953년 3월의 바젤 월드에서 따왔다. 요컨대 잠수 시 물 속에서 버틸 수 있는 방수 케이스, 물 속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회전 베젤, 어두운 물 밑 환경에서 시인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발광 마커와 같은, '다이버 워치'라는 장르를 대중적으로 정립시킨 해를 네 자리 숫자로 넘버링하여 5303의 장르적 문법이 다이버 워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롤렉스와 조디악이 그랬듯 숫자 앞에 레퍼런스 넘버를 붙여 리스펙의 의미를 이중적으로 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외 부분에서 5303은 가능한 한 최대한의 변주로 독자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Worn & Wound(해외 시계 웹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제롬 버거트가 한 말을 빌려 정리하면, "우리는 (회전 베젤이나 발광 핸즈 같은) 다이버 워치의 코드를 발명하지 않았다. 그 코드는 선구자들이 이미 1953년에 제시함과 동시에 끝냈으며 우리는 남은 요소들을 갖고 놀아야 할 뿐이다."

해당 발언을 보고 꽤나 감탄했는데, 그의 겸손함 때문이 아니라 1. 시계의 하위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음을 보여주고 2. 창작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하면 독창성'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지를 영리하게 잘 파악하고 있는 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이버 워치라는 장르 아래에서 작품을 전개하는 이상 어떤 식으로든 서브마리너 같은 선구자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자명하다. 새로운 시계 장르를 개척한다면 모를까, 독창성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선구자들의 영향을 얼마나 지워내느냐로 그저 흉내낼 수 있을 뿐이다. 제롬과 세리카를 다룬 다른 아티클을 통해 보다 구체화된 방법론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시계의 디자인 단계에서 그가 지칭한 소위 시계 문화(Watch Culture)에 너무 가가이 다가가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이미 존재하는 디자인을 가급적이면 참고하지 않으려 의식하며 자신의 디자인을 정립하는, 요컨대 오마주나 클론 시계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서는 시계의 구성에서 찾을 수 있는데 우선 1. 40mm 미만의 사이즈 2. 돔형 글라스 3. 가드 없는 크라운까지는 일반적인 빈티지 다이버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그 외 특별히 언급할 점이라면 베젤과 애로우 핸즈는 오메가의 씨마스터 300 Ref. CK2913이 떠오르고, 러그는 스피드마스터의 트위스트 러그가 쉽게 연상된다는 것인데 베젤이나 핸즈는 시계의 다른 부분이 그렇듯 빈티지 다이버 워치에서 필요한 부분만 차용했다는 느낌이 든다면 러그는 그렇지 않아서, 시계의 전반적인 디자인에 맞춰 다른 식으로 변주를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제작자도 이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닐 것이고 이게 최선이었겠지만 말이다.

 

지금까지는 5303이 전통적인 빈티지 다이버 워치 양식을 따른 부분들을 서술했다면, 이제부터는 제작자가 청개구리 마인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다른 부분들을 설명할 차례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들을 비틀린 유머감각이라고 생각했고 상당히 재밌다고 느꼈다.

 

 

 

5303은 빈티지 스킨 다이버라는 뼈대 위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교를 부린 제품이다. 다이얼은 언뜻 봤을 때 상당히 난해해 보이고 꽉 찬 듯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꽤나 직관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가장 짧은 길이의 시침과 곧장 맞닿는 10, 11, 1, 2, 4, 5, 7, 8시 동그란 인덱스는 연장되어 있는 챕터링의 선 끝에 매달린 채 다이얼의 중심부로 달려드는 듯한 형태를 그린다. 이 챕터링 연장선은 장식의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5분 단위 구분을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로써도 기능한다.

 

15분 단위의 직관적 시간 구분을 위해 12, 3, 6, 9시 인덱스는 일반적인 위치에 놓여 있으며 빠른 방향 구분을 위해 12시의 직선 막대기 옆에는 알 두개가 추가로 배치되어 있다.

 

초침은 분침보다 살짝 더 길어서 다이얼의 가장자리를 스치듯 지나간다. 각 핸즈의 형태와 길이가 명확히 다른 것은 시인성을 보장하는 놀라운 요소 중 하나일 뿐이며 개인적으로 이런 요란한 핸즈를 정말 싫어하는데 이 시계의 경우 다이얼의 빈 공간을 적절히 채워주고 디자인이 의도하는 복잡성을 더해주는 요소이기에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언뜻 이지러지는 듯한 이 소스들을 무광의 검정 다이얼이 차분하게 정돈해주는 느낌도 무척 좋다. 다이얼의 모든 요소들은 연장되는 외부 베젤과도 정렬이 잘 맞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다른 다이버 워치에서 이런 식으로 시분초를 구분하도록 구현한 다이얼은 없고, 다른 장르와의 연관점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파일럿 워치 중 플리거 B타입이 바로 그것이다. 형태만 좀 다를 뿐 기본적인 의도나 구성은 같아서, 아마 플리거 B 타입에서 다이얼의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보통 다이얼의 12시 아래에 위치하게 되는 브랜드명은 공백으로 남고 6시쪽 SERICA SWISS라는 문구로 대체되었다. 노브랜드의 이유가 다이얼 여백 부족이라거나 비용 절감 같은 건 당연히 아닐 것이고, 이것 역시 '이미 존재하는 디자인 양식이기 때문에' 빼버렸다는 해석이 미친 것 같지만 가장 타당한 설명이다. 이런 해석은 다이얼 6시쪽의 세리카 스위스라는 문구에도 연장되어 적용되는데, 세리카 스위스라는 문구 때문에 다소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제품 소개 페이지나 케이스백에 스위스산이라 적힌 문구로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듯, 5303은 스위스 메이드 인증을 받은 시계가 맞다. 보다 명확하게 SWISS MADE라고 각인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기존의 것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이유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다. 상단에 브랜드명을 넣지 않는 대신 선택한 작은 위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시계는 방수 성능조차 정석적으로 표기하지 않는다. 미터와 피트를 잇는 중간 하이픈이 1000ft 쪽에 아주 살짝 치우쳐져 있는데 역시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것처럼 보인다. 바로 아래 적힌 S617로 가면 더 가관인데, S617은 프랑스의 잠수함 이름이다. 다이버 워치와 잠수함은 큰 맥락을 같이 하는 면이 있지만 '그럼 왜 잠수함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연결고리는 없다. 시계를 사면 같이 동봉되는 편지에서 이 오묘한 문구의 단서를 얻을 수 있는데, 전문은 시계 구매자들만을 위한 작은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일부 문장만 인용하면 '세리카 Ref. 5303은 조금씩 다이버 워치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즉, 프랑스의 서브마리너가 되고 싶다는 선언을 메타포로 담아낸 것 같다는 게 내 해석이다.

폰트를 포함한 다이얼에 인쇄된 요소들은 해상도가 높고 깔끔하다.

 

 

 

세라믹 베젤 아래로 스틸 베젤이 둘러져 있다. 분 단위 표시가 바깥에, 시 단위 표시가 안쪽으로 향하는 것은 다이얼의 구성과 같다. 이런 트윈 베젤은 시계의 복잡한 인상을 보강해주며 또한 실제로는 전혀 얇지 않은데도 이중으로 나뉜 탓에 베젤이 얇다는 인상을 주고, 자연스럽게 다이얼도 작아 보이게 되어 실제 케이스 사이즈인 39mm보다 작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베젤의 모든 마커는 음각 위에 페인팅으로 칠해져 있고, 열두시 야광점 오른쪽에 위치한 Heures는, Minutes라는 단어와의 연상작용으로 시간(Hours)을 의미함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발음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각각 에흐, 미뉘 정도로 발음하는 것 같다.

분 마커는 일반적인 분 표시를 하는 게 첫 번째,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카운트 다운을 하는 게 두 번째 기능이자 역할이다. 이러한 카운트 다운 방식 베젤 역시 다이버보다는 파일럿 워치에서 주로 채용하는 디자인이며,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보다 얼마나 남았는지가 중요할 때가 있기는 하다. 주문한 핏자가 예상한 시각에 오는지 아닌지를 계산할 때라든가…

스틸 베젤은 기본적인 시간 표시 외에, 다른 시간대를 표시할 수 있는 GMT 기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베젤은 케이스와 잘 밀착되어 있고, 가장자리는 날카롭지 않은 코인 베젤 형식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손으로 잡고 돌릴 때 미끄러지거나 걸리는 부분이 없으며 조작감은 굉장히 낯설지만 좋다. 마치 금고 다이얼을 연상시키는 소리와 적당한 저항감이다. 묵직한 소리나 저항감 있는 베젤을 좋아한다면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지만 시계의 이미지에는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럽다. 단방향 로테이팅에 120클릭이며 백플레이는 없다.

 

열두시 야광점을 기준으로 양쪽에 복잡한 디자인이 나열되어 있어서 굳이 베젤을 특정 방향에 두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어느 쪽에 돌려놓더라도 상당히 자연스럽고, 오히려 멋지기까지 하다. '옳은 방향'을 정의하지 않기 위한 의도라면 상당히 천재적이라고 평가하고 싶은 부분이다.

 

크라운은 8mm로 꽤 큰 편이며, 가드가 없는 다이버에 큰 크라운이 있는 게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런 빅 크라운을 처음 봤을 땐 부조화스럽다는 인상부터 크게 받았으나 적응의 문제인지 이제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며 크기와 더불어 깊게 브레이크가 들어간 엣지 가공 덕에 잡고 돌리는 게 어렵지는 않다. 전면부는 폴리슁에 아무 각인이 새겨져 있지 않으며 당연히, 스크루 다운 방식이다. 사용된 무브먼트는 원래는 데이트 기능이 있지만 기능을 제거하고 그에 맞는 공정을 거쳤기에 풀린 크라운을 한 번 뽑으면 고스트 포지션 없이 바로 시간 조정이 가능하다. 시간 조정 후에는 반드시 크라운이 완전히 잠겼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크라운의 전체적인 조작감은 수월하면서 부드럽다.

 

5303은 주문 시 크라운의 위치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위치를 바꾼다고 해봤자 다이얼을 뒤집으면 그만이기에 특별한 공정이 없으므로 추가금은 없다. 오른손잡이지만 평소에 오른손에 시계를 차기 때문에 왼손으로 잡고 돌릴 수 있는 크라운이 늘 아쉬웠고, 더욱이 청개구리같은 이런 시계에 '정석적인' 3시 크라운을 둔다는 건 시계의 지향점과 반대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왼손으로 하는 작동이나 손등을 찌르는 크라운이 어색하긴 한데 후회하진 않는 선택이다.

 

 

 

2mm 두께의 더블 돔 사파이어 글라스는 완만한 굴곡을 이루며 베젤과 이어진다. 유리를 포함한 케이스의 높이는 12.20mm로, 사용된 무브먼트의 높이(4.6mm)와 300m의 방수 성능을 고려하면 굉장히 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리는 안쪽으로도 볼록한 형태를 하고 있어 극단적인 각도에서 시계를 보지 않는 이상 항상 훌륭한 시인성을 제공하며, 가장자리에서만 일어나는 은근한 다이얼의 왜곡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세리카 공홈의 제품 페이지에는 가장 최근 발매된 5303-3만 글라스에 무반사 코팅 처리가 되어 있다고 써져 있는데 단순 표기 오류인지 신제품만 그렇게 처리하는진 모르겠다. 만약 외부 코팅이라면, 시계를 오래 쓰고 싶은 입장에서 차라리 없는 게 낫고 내부 코팅이라 하더라도 유무가 크게 상관 없지만 이 부분은 명확히 알고 싶다. 웬만하면 신제품만 코팅 처리를 했구나, 하고 생각하겠는데 5303의 브레이슬릿 재질이 1과 3번 모델은 316L Stainless Steel로 적혀있는데 반해 2번 모델은 그냥 316L Steel로만 일관성 없게 적혀 있어서… 3번 모델을 업데이트함과 동시에 이후 생산품들에도 코팅을 한 건지 처음부터 콭팅을 했는데 뒤늦게야 설명을 추가한건지? 육안상으로 추측만 가능할 뿐 명확히 알 수 없잖슴

 

 

 

전면부의 인상 때문에 비교적 단순해 보이지만 트위스트 러그로 변주를 준 케이스는 중간 폴리쉬된 부분을 경계로 상단과 측면부가 브러슁되어 있다. 러그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뻗는 형태로, 러그 투 러그가 짧아 실착용시 굉장히 안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브러슁된 케이스백 가장자리에는 제품의 모델 넘버 5303과 그를 대칭으로 한 반대편 자리에 시리얼 넘버가 음각되어 있고, 그 안쪽으로 세리카 시계 회사(Cie Des Montres Serica), 메이드 인 스위스(Fab. Suisse), 오토매틱,  방수 성능이 호를 그리며 마찬가지로 음각되어 있다. 케이스백에서조차 장난을 멈출 수 없다고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세리카의 심볼이 비대칭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게 또 재미있는 부분이다.

 

 

 

5303의 무브먼트로는 소프로드(Soprod)사의 P902가 사용되었다. 소프로드는 처음에는 Soprod SA라는 이름으로 1966년 스위스에서 설립되었고, 이 때는 기계식 시계 부품 생산-즉 무브먼트 부품 하청 생산업체였다. 이후 2005년 레만 캐피탈(Léman Capital)에 인수된 후 쿼츠 무브먼트 생산업체인 SFT 그룹과 합병하여 STM Holding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2007년 홍콩 기반의 피스 마크(Peace Mark)에 인수되었지만, 1년 뒤 재정 문제로 스위스 기계식 무브먼트 사업부를 페스티나(Festina, 스페인 시계 브랜드)에 매각하게 된다.

페스티나 그룹의 주도 아래 2020년 공개된 소프로드 뉴턴은 대량 생산을 통해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스위스 무브먼트 시리즈이다. P092는 뉴턴 시리즈의 첫 번째 제품이자 소프로드의 첫 번째 인하우스 무브먼트이기도 하다. 기본 스펙으로 데이트, 초침 해킹, 44시간 파워 리저브 등이 제공되며 시간당 28,800회, 초당 8회 진동수를 갖고 있어 초침의 움직임이 상당히 매끄럽다. 앞서 적은 기본 스펙을 베이스로 두 가지 퀄러티 버전으로 나뉘어 생산되는데 하나는 일오차 ±7초, 3개의 자세차가 조정된 소피스티케이티드급(Sophisticated)이고, 나머지 하나는 일오차 ±4초와 5개의 자세차가 조정된 탑 플라이트(Top Flight)급이다. 5303에는 노 데이트가 적용된 탑 플라이트급 P092가 사용되었다.

Watch Accuracy Meter 앱으로 측정해본 결과 9시 방향이 위로 왔을 때를 제외한 나머지 5개 포지션에서 -1~+4초의 일오차를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는 12시 방향이 위로 왔을 때 +4초, 3시 방향이 위로 왔을 때 -1초, 6시 방향이 위로 왔을 때 +3초, 9시 방향이 위로 왔을 때 +9초, 뒤집어 놓았을 때 +2초, 뒤집지 않았을 때 +2초였다.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무브먼트 관련 이슈가 있다. 첫 번째 배치 한정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알려져 '있으며', 크라운을 풀었을 때 스프링의 반발에 의해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거나, 시간 설정 시 분침이 튀거나 초침 해킹이 되지 않는 현상 등 다양한 문제를 호소하는 내용을 구글이나 유튜브 등지에서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세리카 측에선 이슈가 생긴 첫 배치 제품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이후 배치에 대한 점검을 했으나 문제는 첫 배치 이슈 때 해결된 것은 스템을 원인으로 하는 크라운 포지션에 관한 이슈 뿐이고, 분침 튐이나 초침 해킹과 관련된, 무브먼트가 원인이 되는 이슈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세리카는 관련한 문제로 문의하는 고객들 한정으로 '해당 이슈는 신생 무브먼트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특성이며, 뉴턴이 가진 다른 장점들(정확성, 내충격성 등)이 단점에 비해 월등히 좋다.'같은 말들로 설득하는 식으로 노선을 바꾼 듯 하며, 공개적으로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까지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그들은 어쨌든 제품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지 굳이 단점을 짚어가며 분석하는 비평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뭐… '자연스러운 특성'이란 말이 마냥 억지는 아닌 것이, 가령 오리스(Oris)의 캘리버 400 같은 경우도 분침 튐 이슈가 있었으니, 가격을 떠나 이미 검증된 것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무브먼트를 쓰는 시계를 사용한다면 이런 현상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 물론, 불쾌감을 안고 굳이 감내할 필요가 없다는 선택지도 있다. 내가 받은 제품은 다행히 어떠한 문제도 없었지만, 구매를 고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이슈에 대해 충분히 인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논의가 더 궁금하다면 링크 참조.

 

 

 

5303은 어두울 때 시계가 어떻게 보일지까지도 염두에 둔 것 같다. 곡선 위주의 손목 시계에서 인덱스들이 만들어내는 마름모 형태는 어두워질 때 오히려 보이게 되는 역설적인 야광의 성질과도 잘 어울린다. 시/ 분/ 초 핸즈에 발라진 야광의 길이는 어둠 속에서도 시간을 구분하기에 매우 적절하게 칠해져 있다. 전체적인 야광 성능은 준수하며 다만 12시 야광점이 다이얼 야광의 색이나 밝기보다 희미해서 다소 이질적인 면이 있다.

 

 

 

다이버에 메쉬 브레이슬릿을 기본 줄로 채용하는 게 5303이 처음은 아니지만 일반 쥬빌레, 또는 오이스터 스타일 스틸이나 러버 스트랩에 비해 흔한 일은 아니다. 호불호도 크게 갈릴 브레이슬릿이지만 개인의 호오를 떠나 최소한 5303과는 굉장히 잘 어울린다. 물론 퀄러티 좋은 엔드 링크로 일체감을 더하고, 보다 두껍고 촘촘한 소재의 메쉬를 사용함으로써 고급감을 더하는 등의 노력이 함께 했기에 이런 설득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리라. 엔드 링크도 없이 그냥 메쉬만 달려 있었다면 고민 없이 바로 러버 스트랩으로 교체했겠지만 꽤 괜찮아서 애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브레이슬릿의 두께는 20mm로 시작해서 끝으로 갈수록 16mm로 좁아지는 테이퍼드 스타일이고, 비록 메쉬간의 유격이 적긴 하나 팔의 체모가 걸리기는 한다.

 

착용법은 다소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브레이슬릿 안쪽의 요철에 버클의 고정쇠를 맞추고 고정시키는 잠금 방식인데, 손목에 차지 않았을 때는 버클과 스트랩의 요철을 잘 맞닿게 할 수 있지만 실착용할 때는 버클이 부드럽게 눌려지느냐, 아니냐의 오직 감각만으로 요철의 걸림을 판단해야만 한다. 감각만 잘 익혔다면 비교적 능숙하게 시계를 풀고 찰 수 있게 되긴 하는데 여전히 마음 놓고 체결/ 분리를 할 수 있는 스트랩 스타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러버 스트랩도 같이 구매하려 했으나 블랙 컬러가 품절이어서 못 샀다. 아무튼 부드럽게 눌린 버클을 다시한 번 더 눌러 마지막 클릭까지 확인한 후 손목을 내려놓으면 되겠다. 둘레 16cm 이하 손목의 경우 브레이슬릿 요철과 고정쇠가 맞지 않을 수 있는데 세리카에서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그냥 요철의 더 안쪽에 고정쇠를 강제로 맞추고 잠그는 것이다.

 

 

 

Ref. 5303은 기계식 시계 카테고리에 속해 있고, 가격 역시 절대 저렴한 편이 아니라 성격이 내 구매 기준과 크게 달랐음에도 결국 살 수 밖에 없었다.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란 명목 하에 결국 오마주로 수렴되는 디자인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고, 비용 절감으로 비춰질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으며 너무나 우아한 비례감과 균형을 갖추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계를 채우고 있는 개별 요소들을 그저 즐겨도 너무나 만족스러운 경험이겠지만, 마치 탐구하듯 세세히 이 시계의 설계를 뜯어보고 분석하고 이해할 때 즐거움과 애착은 배가될 것이다. 비록 완벽한 시계는 아니지만, 절대로 대체재를 찾을 수 없는 5303을 훌륭한 다이버 워치 중 하나라고는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