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괜찮아 고생했어 잘 버텼어 잘컸어. 잘했어. 괜찮아 괜찮아


내 기억력을 총 동원해서 제일 어릴적 기억나는건

6살? 7살때.

아빠는 엄마를 안방에서 때리고 있고

엄마는 나를 침대위에 꼭 안은채 울고있다.

아빠는 나를너무 , 딸을 너무 좋아하셔서 엄마를 못때리고 있다.

무섭다. 무섭다.

정말 무섭다. 엄마 울지마.. 우리엄마 울지마

아빠 때리지마. 아빠 그러지마 무서워.

이모든 말을 속으로만 말하며 엄마랑 같이 나도 그저 울고만 있다.




7살 이전부터 아빠는 

나보다 3살 많은 오빠는 놔두고 

나만 데리고 다녔다.

하루는 같이 놀이동산을 가면 입구에 어떤 아줌마가 서있다.

아빠는 '엄마' 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냥 '엄마' 라고 불렀다.

아무 생각없었다.

하지만 집에 있는 '진짜엄마' 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은 했다.




초등학교 1학년. 8살때

엄마가 없어졌다.

아빠는 오빠랑 나를 앞에 앉히고 엄마랑 이혼했다며 

누구한테 가서 살거냐고 묻는다.

다짜고짜.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고,

오빠는 '..아빠..' 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은 그냥 '오빠랑 같아..' 


내가 8살. 유니텔, 천리안(?) 등 이 생겼을쯤.

그때 아빠는 컴퓨터로 엄마가 썼던 일기라며 장문의 글을 몇개 보여줬다.

글의 내용은 'xx이가 내옷을 벗긴...ㄷ..'

쓸수가 없다. 사실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적인 맥락과 내용만 기억날뿐.

.. 엄마의 일기라며 보여준 글이다.

사실 우리엄마는 맞다가 못견뎌서 .. 또 아빠가 다른여자 만나려고 이혼하자해서 

옷하나 못가지로 입고있는 옷만 가지고 쫒겨난거였는데..

나 8살. 오빠 11살.




내가 기억나는 한장면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고 우린 이사가고

그 좁았던, 엄마가 그렇게 맞았던 빌라에 이삿짐 차가 왔다갔다 하며

난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앞에서 그 관경 앞에서 보도블럭이 깔린 땅을 발로 슥-슥- 그으며 생각했던 말..

갑자기 사라진 엄마한테는 말로는 하지 못한말.


'엄마 행복하게 살아야되.. 잘했어.. 이제 맞지마..'









그뒤로 아빠는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결혼하고..

아들 둘이 있는 아줌마와 결혼.. 같이 살게 되고..

아들 하나는 나보다 동생, 나머지 아들 하나는 나보다는 오빠지만 우리 친오빠보다는 어린 동생..

아줌마는 아들만 있어서 그런지 나는 좋아했지만 우리 오빠는 싫었나보다.

우리오빠는 그당시 12?..13살.. 

안좋은 집안환경 덕분인지 성숙해져서 사춘기가 빨리온건지..

아줌마가 불편해서 아침에 화장실에서 빵먹고..그랬나보다..

그당시 게임 cd만 할때..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좋아하는 남자애들한텐 혁명일때..

새벽에 몰래몰래 다들 게임할때..

아줌마는 벌거벗고 물마시러 나왔다가 오빠가 게임하는걸 보고 놀랬나보다..

...누가 벌거벗고 나오래..?

그렇게 지금의 나도 모르겠는 미운 털이 박힌 오빠

아줌마는 아빠한테 오빠가 이상하다고 말했고

우리 오빠는 그때부터 아빠한테 비인간적으로 참.. 더럽게 맞았다.

그러다 아빠는 개버릇 남못준다고 아줌마를 이불로 돌돌 싸서 때리기 시작했고

..난 안방 넘어로 이불소리와 함께 퍽퍽 소리가 나서 알수있었다.

그뒤로 아줌마와 또 이혼했고

우리 친오빠는 계속 맞았다.

우리는 비좁은 원룸으로 이사왔다.

부엌엔 살림을 제대로 못해서 쌀벌레 구더기?같은게 기어다니기도 하고

그 좁은 집에서는 아빠가 오빠를 때리는걸 바로 눈앞에서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나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오빠가 악!! 소리 한번 못지르고

때릴때마다 윽. 윽. 하며 맞는걸 소리내서 울면 나도 맞을까봐 그저 소리없는 울음을 내뱉으며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개월이 흘렀을까.

우리오빠 14살. 나 11살.

오빠는 집을 나갔다.

어느날 학교끝나고 집에와서 당연스레 '아빠 오빠는 ?' 하고 물으니 

돌아오는 짧은대답 '니오빠 갔다'


알수있었다.

'아.. 엄마한테 갔구나'








11살때 그렇게 오빠가 집나가는 모습도 못보고

어느지역에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채

14살 겨울에 다시만날때까지

속으로 몇천번을 아니 몇만번을 되세김질하며 말했다

'오빠 잘했어. 오빠 엄마랑 행복하게 살아. 꼭 행복하게 살아 . 오빠잘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는 그때 우리아빠가 집나간 오빠를 찾아다니는줄 알았다.

오빠는 친하게 지내던 동네 친구집에서 몇일있다가

피시방에 있고 그랬었다는데..

그 친구가 나중에 한마디 하더라.

'미안한데 욕한번만 하자.. 니네 그 xx같은 아빠란 인간은 니오빠 찾지도 않았다' 라고..












아빠가 속상할까봐 엄마의 엄자도 오빠의 오자도 꺼내지 않으며 살았다.

그와중에 아빠는 여러 아줌마들을 '새엄마' 라며 집에 데리고 왔고,

안그래도 아빠일때문에 이사도, 전학도 많이다니던 난 

파주의 전교생이 200명도 안되는 초등학교에서 일산의 전교생 2000명이 넘는 초등학교로 전학가게 되었다.

적응이 안되었다.




학교가는게 싫어서 mp3에 음악몇곡을 담아 골목골목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학교를 1주일 정도 안갔다.




아빠가 알았다.

그날은 내가 처음 생리를 한날 저녁.

아빠랑 어떤아줌마랑 케익을 사들고 좁은 아빠랑 나랑 둘이사는 반지하 원룸집에 왔다.

나는 그날 아빠한테 학교안갔던것도 얘기하고 적응이 안된다고 얘기하려 했다.

하지만, 초를 끄고 케익을 반정도 먹고서 아빠는 나를 앉히고 학교를 안갔냐 물었다.

안갔다 대답했더니 우리오빠를 때릴때 처럼 , 우리엄마 수많은 아줌마들을 때릴때처럼..


 


초경한 날 그렇게 날 때렸다.

맞다, 맞다. 맞다 그렇게 맞다가 죽을까봐 본능적으로 집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어린애가 집밖으로 나갔다고 얼마나 나갔으랴

집앞 빌라 복도계단에서 흐느끼며 울고있었다. 아줌마가 와서 달래주었고, 

그날은 그냥 그렇게 잠들었다. 무섭고 슬프고 아팠다. 맞은곳이.







좁은 원룸집은 좋지 않았다.

아줌마랑 아빠의 잠자리를 실시간으로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야동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볼필요가 없었거든, 어릴때 하도 실시간으로 봐서.

그러다 아빠가 술먹은 날은 나를 아줌마들로 착각했는지

13살 초등학교 6학년때 자고있는 내 가슴을 만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14살이 되었고

나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적응안되었던 초등학교와 달리 너무 재미있었다.

공부도 너무 재미있었고 선생님도 좋았다.

입학식 지난지 얼마 되지않아 아빠가 날 앉히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재혼하고 싶다고 .

그런데 그아줌마는 이번엔 필리핀에 있다고 한다.

난 내 학교생활과 친구들, 선생님을 두고 필리핀에 가기 싫었다. 

그래서 아빠한테 처음으로 말했다.

아줌마 때리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고.

아빠는 알았다며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믿고 3월 31일날 자퇴서를 쓰고 

4월 10일날 필리핀을 갔다.

...? 아빠는 1주일 같이있다가 한국으로 갔다.





아빠는 달에 한번 5일~1주일씩 있다가기만 하고 나는 생판 처음보는 아줌마와 그딸, 아들과 같이살았다.

그사람들.. 정말 착했다.

언니오빠도 착했고 새엄마도 착했다. 

그런데 아빠가 3개월 정도 지나니 아줌마를 때린다.

술병같은것도 막 깨고 그런다.
         
나는 밤마다 울었다. 향수병? 친구들보고싶어서? 아니. 절대아니.

'또 잘살고 있는 남의집에 와서. 못살게 괴롭히는 구나 ..' 싶어서. 그래서 미안해서 울었다.









필리핀에 있었던날들 .. 6개월.

3개월정도는 학교를 다녔고, 학생비자가 나오질 않아 한국에 2주정도 가있게 되었다.










필리핀에서 엄마랑 이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다.

나 필리핀 가기 얼마전에 우리 외할머니가 꿈을 꿨단다. 

'oo이가 절벽에서 떨어져서 내가 잡아주려고 손을뻗었는데 그손을 안잡고 나를 너무 원망스럽게 쳐다보더라.. 무슨일 있나 잘사나 한번 가봐라..' 

하셨단다.

엄마는 못오고 우리집에서 같이 살기도 했던 막내 이모가 날보러 왔다.

4년만에 보는 이모얼굴.

서로 보자마자 소리없이 울었다.

그냥 아무말도 못하고 울었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이미지 사진 한번 같이찍고

나는 이모본다는 말을 1주일 전에 들어서

1주일동안 우리엄마 주라고 종이별을 가득 접어 병에 담아 이모에게 건네주었었다.






엄마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말했다.

나는 그당시 아빠가 일때문에 나혼자 집에두고 일주일씩 집에 안들어오고 했었는데

집에 널부러져있는 담배를 호기심으로 한번 피워봤고,

필리핀에 있던 새엄마 아들딸, 언니(그당시 19살) 때문에 술도 마셔보았고 담배도 피워봤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이메일로..


 '엄마딸 어릴때 착하고 이쁘던 딸 아냐, 나 술도 마셔봤고, 담배도 피워봤어, 그런데도 나 데리고 갈거야?' 라고...





비자때문에 한국에 왔을때 처음으로 오빠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얘기는 차마 못꺼내고..

나 오빠보고 싶다고, 어차피 2주뒤에 필리핀 가면 언제볼지도 모르는데..

나 오빠랑 일주일만 있다오면 안되냐고..

아빠는 욕을 하며 화를 냈지만 중간지점 수원역에서 엄마에게 나를 보냈다. 1주일만 있다오라며.

하지만 나는 1주일이 아닌 엄마에게로 아주 온건데..



엄마는 아빠랑 소송을 하며 법원을 왔다갔다 하며 그렇게 나를 데려왔다.







그때 내나이 14살 10월.

필리핀에서 학교 다녔던거 이런거 저런거 잘 모르겠지만 여튼 나는 3월에 중학교에 전학을 하게된다.

15살. 중1로 . 복학.

전학 2개월 전부터 밤마다 울었다. 억울해서 싫어서.

그래도 학교엔 잘갔고, 

이상하게 전에 나 중학교 (1개월 이지만) 에선 그런게 없었는데 

겉모습이 어쨌는지 나는 단정했는데

전학온 첫날부터 반애들, 다른반 애들이 자꾸 놀거냐고 물어봤다.

노는게 뭔지 몰라서 '우와,,, 전학온 나한테 다들 놀자고 하는구나' 싶어서 같은반 여자친구와 전학온 첫날 영화를 보러갔고

얘기를 들었다. 

논다는게 껌좀 씹고 침좀뱉는거라는거.. 같은학년 교복도 줄이면 잡고 그런거라는거.

집에와서 고민했다. 껌좀씹고 침좀뱉는거 그런거에 관심있어서가 아니라

그 사춘기 어린마음에 한살 어린 친구들한테 무시받을게 너무 자존심이 상했나보다.

그 다음날 선배들이 와서 놀거냐 묻길래 놀거라 대답하고, 

나는 바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학교끝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가고 하면서 선배들 얼굴도 안보고

거의 그 무리에 속하지 않게 되었다.







17살. 중3.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한 남자아이를 알게되었다.

사귀었다.

처음으로 잠자리를 갖게되었다.

결혼해야되는줄 알았다.

아빠처럼 이여자저여자 만나며 그런건 싫었다.

잠자리를 갖는다 = 결혼 = 영원한 사랑. 

나한텐 이거였다. 멍청한년.



그 남자애는 날 때렸다.

정확히 364일을 사귀었다.

그중 100일을 뺀 나머지는 다 맞았었던듯 하다.

담배피우는데 라이터가 없다고 나보고 빌려오랜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사람에게 라이터를 밀렸다.

남자랑 말했다고 앉은 자리에서 뺨을 20대로 더 넘게 맞았다.

 그 남자애는 원룸에 동새이랑 둘이 살았다.

나는 아르바이트 하면서 그남자애 집세, 동생용돈 반찬 다 주었고,

그와중에 난 학교를 그만두었다.








17살, 중3 자퇴.

그 남자애의 좁은 원룸집에서 지겹도록 참 많이도 맞았다.

말대꾸 할수도 없었다.

말대꾸하면 더맞았고, 도망갈수 없었다.

그 좁은집에서 나가면 사람도 없는 골목길, 당연히 남자애가 나보다 달리기가 빠를거고

나는 이 구석탱이에서 이아이를 밀치고 문을 열고 문밖에 턱을 넘어서

대문을 열고 사람없는 골목길을 달려 도망칠때까지 이남자애에게 안잡힐 자신이 없었다.











자해.

중학교 1학년때부터 했다.

엄마한테 온뒤로 아빠랑 처음 연락했었는데
(그냥 전화걸고 목소리만 듣고 끊은..)

너무 미안해서.

우리아빠가 정말 나쁜사람이지만 나는 엄마도 아빠도 사랑하니까.

딸이니까자식이니까. 미안해서 .

차라리 말을 할껄. 말못하고 배신하고 온것같아서

아빠가 받았을 상처 내몸에 내가 상처내서 퉁치자?.. 는 식이었던것 같다.







그 남자애에게 맞으면서 내 자해는 더 심해졌고

4차선 차도에 죽으려고 뛰어들고

몸에 불도 지르고

정말 내 삶의 밑바닥을 거기서 본것 같다.

   


그러다 정신차리고 헤어졌고

헤어지자마자 검정고시 중졸, 고졸 두개다 따고

전문학교에 갔다.

그전에 남자친구들 몇명이 있었지만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머리쓰다듬어 준다고 손만 들어서 때리는줄 알고 움츠러 들고

내인생 내주위 모든게 흑색이었던 그때에 어느 누가 나를 사랑해 줬으랴.






 그뒤에 아르바이트 하던곳 사장이 자자고 하고,

그충격으로 그만두고 다른곳에 아르바이트 자리 구해서

첫출근, 환영회겸 첫 회식날 또 사장이 따로 단둘이 술먹자고 하길래 또 그만두고

지하철에선 이상한 아저씨가 내 허벅지를 만져서 파출소 가고

택시아저씨가 내려달라는곳 안내려주고 이상한곳 가서 말다툼 하고

전문학교라고 갔더니 학교 교수는 다같이 술먹고 담배피운다고 단둘이 있을때 자꾸 뽀뽀하라고 하고

참 그지같았다.

그리고 맹새컨데 나는 단한번도 그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을 행동을 한적이 없었다.







여튼 전문학교에 갔을때. 나 21살.  

그때 지금 남자친구를 만났다.

나이는 나보다 6살 많았지만 유쾌하고 센스있는 말장난이 좋아서 먼저 고백했다.

그때까지 나는 술에 찌든 아이.

맨날 술마시는 아이.

6개월에 한번씩은 꼭 자해하는 아이.

성격이 쾌활하고 낮가림도 없어서 다들 내가 유쾌한줄 알고 사귀었다가

내 우울한 모습들을 보고 감당안된다며 뒤돌아 서던 그런 아이.




남자친구는 다 받아주었다.

처음으로 사랑받는구나 라는걸 느꼈다.




학교를 다니고 학교다니면서도 학과장이 공금횡령해서 학과대표라 이사장실 불려가고.. 참 버라이어티 했다.




남자친구랑 사귀면서도 자해하기 싫어서 처음으로 정신과도 다니고

참 많이 고치려고 노력했다.

불안정할땐 이유없이 남자친구에게 단한번 헤어지자고 하고 잠수탄적도 있다.

헤어지자고 하면 남자든 여자든 제정신이 아니니까

나한테 또 안좋게 할까봐.. 무서워서

그래서 항상 내 연애의 끝은 일방적인 잠수였다.



그런데 내 남자친구는 다시 만나서 얘기했을때

'니가 많이 불안한거 아니까 이해하려고 지금 노력중이다. 괜찮아 별일 없었으면 됐다 그거면 됐다' 하는데 

이런사람도 있구나,

아니 이런사람이 정상일텐데 나는 참 이제야 만나는구나 해서 그때 만난 남자친구와

지금 3년넘게 잘 만나고 있고.

학교 졸업하고서 취직도 어찌 되어 사무실에 출퇴근도 잘 하고있다.











지금은 자해도 안하고

그렇게 매일 몇병씩 2,3차씩 가며 마시던 술도

요즘은 회식때나 친구들 오랜만에 만나면 한병~한병반씩 반주정도로만 마신다.


엄마한테도 잘하고

집에도 잘 들어가고.

1년반을 직장 다니면서 단 1분도 지각한번 한적없고

항상 20분 , 늦어도 15분 전에 출근하고 정말 잘 지내고 있다.



친구들은 몇명 없지만 착하고 좋은 친구 하나는 있다.







아빠는

18살때 그 때리던 남자애 만날때 한번 친구들 사이에서 오히려 내가 그 남자애를 때리고 집착했다는... 

뭐 더 안좋은 소문이 퍼져 아빠에게 간다고 이곳에 있기 싫다고 엄마에게 말하고

아빠사는곳에 가서 지냈었는데

어릴때 옛날 아빠 다리 주물러 주던 그 착한 딸이 아니라 속상 하셨는지 몇년만에 본 딸을 그렇게 때리시더라.

그다음날 다시 택시비 7만원.. 을 내면서 엄마집으로 돌아왔고,

그뒤로 아빠 핸드폰번호는 아는데 연락은 못하고 있다.





우리엄마는 여전히 착하고 소녀같으시다.

젊은날 아무것도 모르고 오빠랑 나를 낳으시고

맞으면서 자식때문에 참고사신 ..

그리고 이혼하셔서도 오빠랑 나 데리고 오면 잘키우려고 혼자 공부하셔서 자격증도 따시고

내가 방황할때도 무조건적으로 날 믿어주신.

훌륭하신 분이다.







우리가족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엄마는 아빠때문인지 술은 계속 싫어하시고

시끄럽고 안좋은 언어들은 싫어하시고

오빠는 사람이 좀 지금은 직장은 다니지만 폐쇄적이고

둘다 가족이든 남이든 누가 본인한테 안좋은 이야기를 하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변한다.

물론 나도 그렇고



나는 이런일 저런일 겪으면서 

특히 택시기사, 그리고 문열고 나가서 그밖에 있는 모든 사람을 안믿으려 한다.

물론, 안좋으신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는 사람 택배기사님들 

좋으신 분들한테는 잘해드리려 하고 같이 찾아드리고 인사 잘하려하고 하는데

그래도 은연중에 항상 생각하는건 오직 나.

지난날 내가 너무 불쌍했어서 멍청했던게

내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서

나만의 시간을 격하게 소중히 여기고 

하고싶은말은 단어하나 숨기지 않고 다 말하고

불평등, 혹은 부당하다 생각하는건 쓸데없는 정의감일 지라도 올바르게 짚고 넘어가려 한다.





지금 내 성격이 나는 너무 좋아.

그래,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아니면 이런 생각, 배려심, 좋은성격 못얻었겠지.

싶으면서도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아니면 이렇게 이기적이고 의심, 타인을 멀리하지도 않았겠지 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오늘은 주말출근.

출근해서 점심에 삼계탕에 실장님과 소주 한잔을 했다.




너무 재밌고 즐겁게 가족이야기 , 사소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사무실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 나 참 지금까지 잘살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멍청하고 철없고 나쁘고 모든게 내가 선택해서 자초한 일이지만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해서 겪어온 일들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지금 내가 뭐 하나 제대로 하는건 없지만

그래도



'잘 버텨왔다.. 지금 너 참 행복하구나

잘했어. 괜찮아

앞으로도 괜찮을거야

그동안 그렇게 울면서 우울해 했는데 .. 보기 참 좋다.'


라고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없었던 일들이 될수도 없고

어리든 주변환경이 어떠하든 모든 결과의 원인은 나인걸 안다.

그렇게 생각해야지 다른사람 탓을 안하게 된다.




중학교때 엄마가 했던말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있다' 라는 말.

내가 자유롭게 하고싶은대로 살았으면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거 .

하지만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난 너무 어렸고.

난 너무 사랑에 목말랐고.

난 너무 외로웠다.






지금은 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요리하면서 기분풀고

가끔은 여행도 다니고

고민이라면 '아~ 돈모아야되는데..' 혹은 '오늘저녁에뭐먹지?', '이전주말에 뭐해먹지?'

참 행복하다.







그냥 오늘같이 술도 많이 안마시고

반주로 반병정도 마신날

이렇게 지난날들이 스쳐지나가며

스스로에게 칭찬의 말을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날이 있다.

..그냥 

이렇게 정리?... 해서 풀어놓으니까 속시원하다..




가족한테도, 친구한테도, 남자친구한테도

수치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맞으면서 잠자리를 원하는데 맞을까봐 무서워서 잠자리를 했었던..

얼마나 맞았냐 물으면, 

입안이 찢어져 꼬매고, 갈비뼈, 코뼈가 부러지고 그랬던..그런 일들도 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참 길고 길게 읽는사람 지루할정도로 풀어내었다..





잘했다 oo아.. 라고

사람이 당연히 지녀야할 본능적인 선함을 잃지않고 잘 지내왔다...

지금 참 소소한거에 행복해하면서

엄마한테도 잘하고 

일도 열심히하고

잘했다.. 라고 칭찬해 주고싶어서..

더 상처받고 더 힘든사람도 많기때문에 내가 지내온 내가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흘리는 일들이 별일 아닐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야기하기 글쓰기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속시원하다..












최근엔 처음으로 핸드폰 배경화면을 검은색아닌 다른그림으로 바꿨다.

잘했다고 하는

엄마, 친구들, 남자친구..

내게는 이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나는 이사람들이 없어도 오직 나만을 위해서

그냥 살아가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먹고 자며 살겠지만

이사람들을 위해서 오늘도 나를 참 사랑했고,

내을은 더 사랑할거다.

지금은 자해도 안하고 속으로 참지도 않고 하고싶은말 다른사람 생각안하고 다 하고 살지만
(잘못됐다고 생각드는건 바로짚고 넘어가려 한다.. 성격참 이상하게 바뀌었다..)

가끔은 이기적인것 같은 내모습에 치가떨리지만 그래도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너무 행복해서 

내가 지난날들에 분명 상처아닌 상처준사람도 잇을것이고

나 그렇게 착하게 안살아 온것같은데..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혹은

내남자친구도 엄마도 친구도, 다들 언제든지 하루아침에 날 싫어하고 날 떠날것 같아서 불안하고 

한번씩 이렇게 우울하고 슬프고 그렇지만 

그래도 끝에는 항상 행복하다.. 내일더 행복해야지..라는 생각..



그리고 우리아빠.. 

아빠한테도 내 손발이 내마음대로 들을때 꼭 연락해서 미안했다고 건강하시냐고 꼭 물을수 있기를..














길고 재미없는 글 읽으신 분들도 정말..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고

세상 모든 상처입은 사람들.. 상처가 덧나기도 하고 흉져 없어지지는 않을지라도

그래도 좀더 강한 사람이 되어 그 상처를 품에 안고서 행복해 지셨으면 좋겠고..

내 남은 모든 행운과 복을 다 나눠드리고 싶어요.

저는 지금 이정도 행복도 너무 겨워서.. 괜찮아요.

오늘울었다고 누가 내일은 울면 안된다고 하던가요

오늘울고 내일도 울고 그다음날도 울어도 되고

매일 울어도 되는것 같아요

결국 행복하고 싶어서 우는거잖아요

그렇게 울다보면 행복을 찾게 되겠죠.

우는것도 행복을 향한 발걸음, 발버둥이라고 생각하면 무의미 하지 않아요

저는 정말 저를 너무 사랑해주지 않고 살아왔어요.

지금은 가족보다도 오직 나만 사랑해서 문제인것 같지만 나쁘지는 않아요.

돈때문에 힘들어서 울기도 해보고

살곳이 없어서 컨테이너 박스에서도 살아봤고

살기 싫어서 죽는시늉도 해봤지만

그래도 사는게 좋은것 같아요.. 

저는

 '그래, xx같아서 진짜.. 드러워서 진짜 내인생 죽기전날 어떤식으로 살았는지 
두눈 크게뜨고 내가 다 보고 죽을거야' 라는 생각으로

 내인생 어떤식으로 끝나나 내가 보고 죽는다 하고 버티자 했는데

그냥

나도 힘내고

모두 힘내세요

모두 사랑하세요 사랑할게 없으면 나만 사랑하면 되요.

...그냥 그렇다구요

반말로 했다가 존댓말해서.. 두서가 없어요

스스로에게 칭찬아닌 칭찬도 해주고 싶고 그동안 혼자 삭혀왔던 일들 자세히는 아니라도 글로 정리하니까

속시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