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

500원

너저분하고 잔뜩 가라앉은 6인 병실의 텁텁한 공기까지 마시자 폐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잔뜩 소리를 질렀지만 어른이 되어 배운 특기인 표정 감추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그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TV에서 종종 틀어주곤 하는 소년/소녀 가장들의 굳은 발자국을 초등학교 졸업을 1년여 정도 남겨둔 저 남자 아이는 따라 밟아야 할 것이다. 어린 동생을 목에 매단 채 말이다. 창문 쪽 침대를 차지하지 않았더라면 도대체 어쩔 뻔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 중 덩치가 더 큰 쪽 아이는 간이 침대 위에 간신히 닿는 발을 스치면서 몸을 틀어 창 밖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다가가며 미리 내다볼 수 있는 그 아이의 시선이 꽂힌 곳은 별 거 없는 후줄근한 동네의 풍경 뿐이었지만, 나도 어릴 땐 그냥 도로만 쳐다봐도 영웅과 괴물들이 잔뜩 등장해서 싸우는 거리 따위를 상상하곤 했다.

상온에 두고 파는 감귤주스 상자를 침대 옆에 내려놓으며, 미처 털어내지 못한 먼지가 눈에 띄였지만 아이들이 어디 그걸 신경 쓰겠는가. 아이란, 미지근한 주스도 맛있다고 금방 따서 마셔버리는, 그것이 차가워질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을 배우지 못한 어린 동물이다. 사건에 대해 말은 하지 않고, 뭘 보니, 저번에 봤던 경찰 아저씨 기억하지, 어른은 잠깐 어디 가셨니 하는 시덥잖은 얘기 몇 마디를 건네자 금세 또 피곤해졌다. 나는 그냥 이 병실을 다시 따분한 고물 TV와 냄새나는 환자들의 떠들어대는 소음으로 메워지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얇은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손과 목에 둘러진 붕대가 족쇄라도 되는 마냥 형제 중 덩치가 작은 쪽은 일어나지 못한 채 깊이 자고 있었다. 내가 환자라면 이런 곳에서 잠들긴 커녕 1분이라도 눕는 것을 거부하고 빚을 져서라도 1인실로 옮길 것이다. 왕관이 너무 무거운 잠 자는 숲 속의 왕자를 가운데 두고 창문에 걸터앉은 채 따분한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형, 그 맞은편의 삐걱거리는 철제 접이식 의자에 앉아 최대한 그늘 안으로 몸을 감추려는 나. 어린 동물은 태양 빛에 생길 수도 있는 주근깨나 피부가 타는 것 역시 신경 쓰지 못한다. 나는 침대 자락의 수상한 무늬를 보는 척 하며 형제의 먼 친척이 올 때 까지 형 쪽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의 손에 무심한 듯 탐욕스럽게 아무렇게나 쥐어진 장난감 모형이 눈에 띄었다. 니스나 기타 코팅 같은 것을 한 것인지 광이 나는 형의 장난감은 두어달 전 초등학교 하교 시간 즈음해서 방영하기 시작한<supearth>의 애니메이션 등장 인물을 구현한 것임이 틀림 없었다. 한 때 열광하던 코믹스를 그런 식으로 망쳐놓은 것을 처음 봤을 때 정말 화가 났던 기억이 잠깐 솟아 올랐다. 그런데 저것 비싸던데, 친척들이 심심하지 않게 갖고 놀고라도 있으라고 사준 것인지. 아이가 피겨를 다루는 것을 지켜보았을 때 필시 녀석 손에 들어간 지 며칠 안 된 새 제품임이 틀림 없으므로 내 추측은 이번에도 맞을 것이다.

사고는 사람들이 가볍게 재잘대는 만큼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폭발 사고와 화재였을 뿐. 사소한 의문-수도, 간이 가스버너, 보일러, 가스 배관 등 밸브란 밸브는 전부 열려진 상태였다-을 제외하고는 용의선상에 올려놓을 사람은 없었다. 아이 둘을 남기고 할아버지, 아빠, 엄마, 이모 전부 각자 다른 사인을 남기고 한 집안에서 최후를 맞았다. 창가와 현관 쪽에 아이들의 방이 있던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불행이라 해야 할까.

피겨를 가볍게 앉아있던 색 바랜 나무 창틀에 던져놓고 아이는 갑자기 다닥거리며 병실 입구로 향했다. 보호자가 온 건가, 하고 자동으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아이는 그저 문 옆 정수기에 물을 뜨러 갔을 뿐이었다. 자신이 한 컵 마시더니 다시 뜨고는 이쪽으로 오나 싶더니만 일렁이는 커튼을 확 걷고는 들어간다. "할아버지 이것 드세요!"

다음에 마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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