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chbox/of the Moonth

2019 albums of the year

1월에는 1월치 믹테 대신 2019년에 가장 좋았던 앨범 10개를 꼽아보기로 했다. lastfm 스크로블링 기록 보니 가장 음악을 많이 들었던 한 해였기도 했고, 나름의 연말정산도 해 보고 싶어서 남긴다. 2020년 연말에도 할 생각. 순위는 무순.




1. Jai Paul / Leak 04-13 (Bait Ones)


2013년 4월, 제이 폴(Jai Paul)이 데뷔 앨범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었던 데모 음원 컬렉션들이 밴드캠프에서 <Jai Paul>이라는 셀프 타이틀드 앨범으로 판매되었다. 문제는 판매자가 제이 폴 본인이 아닌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였다는 것이다. 이 음원 유출 사건으로 제이 폴은 큰 충격을 받고 장장 6년 간 일체의 음악 활동을 접게 된다.

2019년 6월 1일, 긴 침묵 끝에 제이 폴 본인이 <Leak 04-13 (Bait Ones)>라는 제목을 붙인 첫 앨범을 발매한다. 유출 앨범의 트랙리스트를 그대로 따라하고, 앨범이 유출되었던 날짜(13년 4월)를 기록하듯 이름지어진 앨범 타이틀은 제이 폴이 마침내 자신의 상처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끝내는 이겨내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트랙들이 07~13년 사이, 그러니까 거의 10년 전에 만들어졌고, 게다가 미완성 또는 데모 버전이라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창작된 지 10년이 넘은 시간 뒤에 들어도 여전히 독창적이고 세련된 그의 음악에 감탄함과 동시에, 앞으로는 그가 준비되었고 완성되었다고 느끼는 시기에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Jai Paul - Str8 Outta Mumbai




2. JPEGMAFIA / All My Heroes Are Cornballs


나는 줄곧, 자신이 머무는 음악 장르를 특정하지 않고 그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는 뮤지션이 뮤지션을 넘어 아티스트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JPEG마피아(JPEGMAFIA)는 어떠한가? 불협화음 위에서 멜로디컬한 팝을 부르고, 난데없이 오토 튠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트랩 사운드가 페이드 인 되며 스물스물 기어나온다-모두 한 곡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 곡들의 모음집이 <All My Heroes Are Cornballs>다. 아방가르드, 익스페리멘탈 힙합, 노이즈, 인더스트리얼, 트랩, 베이퍼웨이브, 글리치 합… 앨범을 구성하는 장르는 다양하지만, 어느 하나 앨범의 명확한 장르라고 할 수 없다. 곡들은 각자의 뚜렷한 개성만큼이나 그 연결이 느슨하지만, 장르의 종잡을 수 없는 콜라주, 그리고 반복적으로 채용되는 소스가 구성하는 유기성이라는 점에서 서로를 팽팽히 지탱한다. 청자로 하여금 긴장과 몰입을 유도하면서 느닷없는 변주로 집중을 흐려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결국 어떻게든 받아들이게 될 수 밖에 없는 이런 모순들의 교집합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JPEGMAFIA - Free The Frail




3. Brittany Howard / Jaime


앨라배마 셰이크스(Alabama Shakes)의 리드 보컬 브리타니 하워드(Brittany Howard)의 첫 정규. 30살 생일을 기점으로 돌아보게 된 자신의 삶을 탐구하고 음악이라는 형태로 기록했다. 앨범 타이틀은 1998년 악성 종양으로 사망한 언니인 Jaime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이름붙여진 것.

앨범을 들으며 그녀가 자신의 음악을 얼마나 완벽하게 이해하고 음악이란 형태로 재구현하려 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중성적인 보컬 톤이 굉장히 매력적인, 그녀의 삶과 신념이 궁금하다면 필청.


Brittany Howard - Stay High




4. Flying Lotus / Flamagra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는 내게 캐치한 멜로디나 리듬이 없어도 귀가 즐거울 수 있다는 경험을 처음으로 선사한 사람이었다. 뒤엉키고 무질서한 소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질서를 부여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으며 그의 음악이 동 장르의 다른 아티스트와 비교해 더 창작, 어쩌면 창조에 가깝다,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기존에 드러내던 재즈/ 힙합/ 일렉트로니카 색채에 더해, 썬더캣(Thundercat)의 영향으로 보이는 훵키함까지 배가되어 사운드적으로 견고하면서도 듣기 편한 앨범을 '또' 만들어냈다. 많은 앨범을 들었지만, 10개를 꼽아야만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앨범 중 하나.


Flying Lotus - Pilgrim Side Eye




5. Panda Bear / Buoys


리버브드된 보컬, 어쿠스틱 기타와 최소한의 사운드 소스만으로 이런 음악을 만드는 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닐 것이지만 판다 베어(Panda Bear)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음악 소비층 중 젊은 사람들에게 특히 친화적으로 다가가고 싶었다는 시도가 가미된 이 앨범은 그런 점에서만 성공한 것이 아니다. 듣기 좋으며, 여전히 판다 베어스럽다.


Panda Bear - Master




6. Shura / forevher


이 앨범은 사랑이 주는 순간의 짜릿한 전율, 그리고 약간의 불안을 음악으로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만 같다. 그녀의 음악은 조심스러우면서 거침없고, 때론 혼란스럽다가 분명해지기도 하며, 빙그레 웃다가 이내 울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는 그런 사랑을 통한 영원을 마냥 엄숙하게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각적인 가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위트가 트랙마다 하나쯤은 반드시 있다. 강한 열망과 행복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것,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Shura - the stage




7. Benny Sings / City Pop


노골적인 타이틀처럼, 이 앨범은 당연히 시티 팝 앨범이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영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통상적인 시티 팝과는 분명 궤가 다른 점이 있다. 베니 싱즈(Benny Sings)의 눈으로 바라 본 시티 팝은 쿨하고 단순하지만, 보다 더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특유의 목소리와 단순하고 캐치한 멜로디 위주의 구성 때문에 완성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될수도 있지만, 이 앨범은 대단히 감각적이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굉장히 많다. 새로 만든 곡도 있으나 몇 곡은 이전에 만들었던 것을 수정·보완한 것이고, 전체 맥락에 맞게 손 본 부분이 어디였는지 비교해가며 들을 수 있어서 더 재밌게 들었던 앨범.


Benny Sings - Dreamin'




8. Deem Spencer / Pretty Face


어쩐지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의 <IGOR> 앨범을 떠올리게 됐다. 사랑과 상실에 대한 내적인 내러티브, 단조의 인스트루멘탈, 로우한 느낌이 충만한 멜로디컬 랩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IGOR>가 월등함에도 둘을 비교하다 굳이 이 앨범을 꼽은 이유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못내 마무리하지 못하는 <IGOR>의 이야기보다 '상실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Pretty Face>의 서사와 음악적 전개 방식 및 스타일이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 비트, 보컬 활용에 있어서 어떠한 음악 장르에 고착되지 않으려는 노력, 동시에 공허함과 상처에 대해 가감 없이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하려는 방법론이 오히려 치유의 과정을 밟는다는 아이러니함.


Deem Spencer - But




9. Dan Friel / Fanfare


단순한 신디사이저 멜로디를 주축으로 쏟아지는 왜곡된 드럼과 리듬 라인. 이것들이 구성하는 유기적이고 밀도 있는 음악은 쉽게 압도되기에 충분하다. 인더스트리얼, 노이즈 등 비교적 비주류 속성을 가진 장르를 곁에 두고 있지만 규칙성 있는 중독적인 멜로디 때문에 엄연히 팝의 범주에도 그를 놓을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다소 진부한 트랙들도 있으나 2019년에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앨범 중 하나.


Dan Friel - Opening Ceremonies




10. tortuganónima / Imago


칠레에서 활동하는 4인조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 곡들의 구성이 듣기 편하면서도 굉장히 치밀하다. 변칙적인 박자 변환은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만들고, 그것을 빈 틈 없는 기타 리프와 신디사이저 멜로디가 채운다. 위태로운 듯 하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트랙들의 연속이 인상적이었던 앨범.

앨범 타이틀인 이마고(Imago)는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상상 속에 완벽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 인물의 상'을 뜻한다. 이를 '밴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운드를 앨범을 통해 구체화하고 싶었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청자의 입장에서 답한다면, 그렇게 들렸다.


tortuganónima - Uki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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