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안전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수명 80세를 가정했을 때 일평생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1.02%고,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은 35.2%라고 한다. 각 100명 중 1명, 3명 중 1명이다. 생각보다 꽤 높은 수치다.
나와 맞은편이는 멀쩡히 인도를 걷다가 정면으로 달려오는 티볼리에 받혔고, 그 티볼리는 우리와 차 사이를 가로막던 가드레일을 부순 뒤 내 뒤에 있는 가드레일까지 부수며 우리를 날려버렸다. 커다란 둔기가 천천히 내 몸 전체를 밀어붙이고,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로 무기력하게 밀어붙여지다가 시선이 90도로 꺾이는 그 때의 경험은 아직도(라봤자 한 달도 안 됐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가끔 떠오르며, 그 불안함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한다. 불안함은 다른 불안함을 쉽게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기 때문에, 잘 때 누군가 문이나 창문으로 침입해 오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빠져 문과 창문이 잘 잠겨 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 후에야 편하게 누울 수 있다.
몸의 상처가 적기 때문에 마음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아니, 사실 몸의 상처와 고통도 내가 겪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며, 겪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꺾여선 안 될 각도로 휘어지고 부은 팔을 둔 채 사고 현장과 응급실에서 기다려야 했던 일, 마취 없이 세 번이나 부러진 팔을 잡아당겨 뼈를 맞추던 일(소리 지르면 통증이 감소한다는 논문이 생각나서 맘껏 소리질렀다), 일반적인 확률보다 낮다고는 하지만 마취와 수술 과정, 수술 후에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전해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수술 전날의 새벽(사고 당한 것 자체가 일반적인 확률이 아닌데, 두 번 그런 일이 없을 거라 누가 확신하겠는가-_-), 정육점 냉동고보다 더 싸늘하게 추운 수술실에 누워 추위와 공포에 온 몸을 벌벌 떨며 마취를 기다리던 때, 수술 후 팔에 피 주머니를 달고 다니고,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느껴지던, 팔에서 심장이 뛰던 듯한 고통, 진통제와 마약성 진통제를 넣고도 안 아픈 게 아니라 '덜'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잠들 수도 없었던 며칠의 시간, 내 팔 안에 있는 철심과 왼쪽 손목 안쪽에 길게 남을 수술의 흉터, 1년 후 받을 철심 제거 수술. 억울하고 화나고 짜증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받아들이다가도 울컥 울컥 치솟아오르는 그 감정들.
가해자에게도 그 사고는 원하던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분명 그 사고는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나의 시간은 다시 정체되었고 안 그래도 부실한 체력은 더 쉽게 지치는 저질 체력이 되었다. 씻는 것, 가방을 잠그고 여는 것, 움직이는 것, 잠드는 것 모두 일상적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나을 거라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다.
마음의 상처-골목이나 건널목에 서 있을 때 멀리서 다가오는 차를 보면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고 뒷걸음질치거나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게 된다. 사고 장면이 눈 앞에 오버랩된다. 내 시야 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차의 본넷 뿐. 고개를 돌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사고 당시의 움직임, 땅 아래 곤두박질쳐 있을 때 사고 현장에 모여 나를 보며 소리지르고 발을 동동거리던 사람들… 아주 멀리서 지나가는 차를 봐도 저 차들 하나 하나가 누군가를 치어 버리는 상상을 하고 그게 내가 될 것 같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1.02%. 분명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고였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두 번째로 생의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이렇게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고 싶다. 죽을 때가 되면 죽고 싶다. 아직 깁스가 풀리지 않았고, 손가락은 당연하게도 완전히 굽혀지지 않고 있으며 그것도 힘겹다고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그리고 힘든 재활과 한 번의 수술이 더 기다리고 있다. 마음과 몸의 상처를 이겨내야만 하고, 그렇게 하고 싶고,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할 것이다. 지나치게 좋았던 상황과 운에 감사하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나는 살아가야만 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라 생각한다. 그 가치를 나 스스로에게 증명할 것이다.
내일은 가해자와 형사 합의를 하는 날이다. 이런 내 느낌을 다 전달하고 싶지도 않고, 말한다 하더라도 가해자인 그 사람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많이 힘들 것 같고. 내가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