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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정 "마룬파이브가 '끝내주는 여행'이라고 했죠"

앨범 '브이' 앨범 재킷 작업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마룬파이브는 분명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해외 팝그룹이다. 팬이 내한을 고대하는 팝스타야 많지만 국내 실시간 음악 차트에서 한국 가요와 맞상대할 수 있는 뮤지션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마룬파이브가 지난 6월 발표한 싱글 '맵스'는 이례적으로 국내 실시간 차트 1위를 휩쓸며 탄탄한 팬층이 있음을 보여줬다. 밴드의 보컬 애덤 리바인이 부른 영화 '비긴 어게인'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로스트 스타즈'는 발매 4개월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런데 밴드와 한국의 인연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룬파이브가 지난 9월 발매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V'(브이)의 얼굴, 즉 앨범 재킷도 한국에서 탄생한 것. 황량한 대지에 초현실적으로 우뚝 선 거대한 '브이'의 형상이 밴드의 야심만만한 성숙을 예감케 하는 재킷은 바로 사진작가 이정(42·여)의 작품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마룬파이브 측에서 이메일이 와 있는 거예요. 미국과 시차가 있으니 밤중에 왔던 거죠. 너무 놀라서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최근 종로의 카페에서 만난 이정 작가는 마룬파이브 측으로부터 콜라보레이션(협업) 제안을 받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면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작년 말 밴드의 매니지먼트사가 예술 관련 사이트와 블로그를 통해 작가의 작품을 접하고 협업에 관심을 보였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올해 봄 정식으로 재킷 작업을 제안했다.


"밴드 측이 저의 작업을 이미 잘 알고 좋아해 주셨어요. 작품의 분위기를 많이 좋아해 주셨죠. 어떻게 보면 '브이' 작업은 '무'(無)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전폭적인 신뢰가 있어서 전권을 위임받아서 작업을 할 수 있었죠."


재킷 사진은 언뜻 보면 복잡한 컴퓨터 그래픽이 가미된 이미지 같지만 사실 작가의 고유한 개성과 오랜 끈기의 결과다. 장소 선정부터 '브이' 조형물 제작까지 모두 작가의 손이 닿았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장소는 경기도의 어느 저수지에요.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죠. 배경으로는 남들이 안 가는 장소를 택해요. 너무 눈에 익고 다듬어져 있으면 상상속 장소라는 느낌을 주기 어렵거든요. 버려진 땅을 좋아합니다."


지난 5월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발길이 닿는 대로 '버려진' 곳들을 찾아다녔다. 머릿속이 '어디에 브이가 가야 할까'라는 물음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고생 끝에 작가의 눈에 들어온 장소는 바로 물이 방류된 저수지.


"방류된 저수지에 나무와 풀이 올라오고 있었어요. 풀이 죽은 곳에서 다시 올라오고, 바로 옆에는 죽은 나무도 있었죠. '브이'는 굉장히 긍정적인 이미지니까 주변에 이런 것들이 있으면 유머러스하면서 풍부한 스토리를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에 그린 이미지를 운 좋게 찾은 것이죠."


배경이 정해졌으니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 작품의 전면에 등장하는 '브이'는 네온으로 만든 것이다. 높이가 1.3m로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처음에는 작게 만들었는데 어울리지 않아 확대했다고 한다.


"네온은 습기가 있어야 잘 번져요. 그런데 계속 날씨가 맑았죠. 매일 시도했는데 다행히 거의 보름 만에 번졌어요. 사진을 모두 촬영하고 감개무량해서 혼자 감동받아 먼 산을 바라보며 울었죠.(웃음)"


그는 "내 작품을 처음에 인터넷으로 보신 분들은 포토샵으로 만든 줄 알았다가 나중에 실제를 보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실제 만든 것이어서인지 묘한 분위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애매한 느낌이 좋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작품 전체적으로는 밴드의 '성숙한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마룬파이브의 이번 앨범은 심화와 발전의 차원에서 변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밴드가 20대의 풋풋함과는 다른 30대의 성숙함을 고민할 것 같았죠. 나중에 뮤직비디오가 나온 것을 보니 굉장히 센 성숙미가 느껴져서 재킷과 연계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작업은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예컨대 눈을 보고 싶다면 눈을 간절히 바라야 한다"면서 "사랑이 있어야 뭔가가 떠오른다. 마룬파이브와 작업하는 동안에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마룬파이브의 음악을 생각했다"며 미소 지었다.


"제 느낌에 마룬파이브 분들이 굉장히 쿨한 것 같아요. 좋고 싫고가 확실하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작업이 끝나고 그쪽에서 'What a Journey!'(끝내주는 여행이었다)라고 해줘서 기분이 무척 좋았죠."


작가는 "마치 범인이 범죄 현장에 다시 나타나듯 작업이 끝나면 다시 가본다.(웃음) 2주 뒤에 가보니 저수지가 풀로 덮여 있었고, 다시 2주 뒤에는 물에 잠겨 있었다"면서 "이제는 어디인지 알아도 사진의 풍경을 볼 수 없다. 그런 얘기를 해줬더니 밴드 측도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2007년 데뷔한 작가는 처음부터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뒤늦게'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해외에서 여행을 다니다 문득 운명처럼 '네온'에 끌렸다.


"여행 중에 유명 프랜차이즈의 흔한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왔어요. 네온사인이 말도 안 되는 풍경에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문득 생각이 들었죠. 도시의 익숙한 느낌을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기는 어려운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유학생활에서 비롯한 텍스트에 대한 관심과 네온에 대한 흥미가 더해지며 그의 전작인 '아포리아', '데이 앤드 나이트' 등 시리즈가 탄생됐다. 'MY HEART IS YOURS', 'I STILL REMEMBER' 등 익숙한 메시지가 황량한 공간에서 빛을 뿜으면 충돌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빚는다.


"네온은 최대한 단순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마음속으로 단어의 메아리를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죠. 무겁지는 않은데 다만 깨지기가 쉽습니다. (웃음)"


작가는 네온을 중심에 두면서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집어넣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내년 3월에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


"마룬파이브와의 협업이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배운 점도, 느낀 것도 많고요. 진심으로 마룬파이브의 음악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밴드의 팬이니까요. (웃음)"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4/11/01/0901000000AKR201411010451000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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