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비비안 웨스트우드


19살인가 20살인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일명 김다울 패딩이 유행하고 입술티가 유행하던 시절, 웨스트우드맨이라는 카페에서 어떤 글을 본 적이 있다. 비비안여사가 한 말로, '어떠한 옷을 이해하고 있으면 그 옷을 한달간 입어보라' 라고 했었다나. 그 시절에 나는 일본의 오니이계스타일에서 일본 특유의 모드패션(하이스트리트)으로 넘어가는 중이였고, 여러가지를 실험해보는겸 해서 정말 온갖 옷을 입었는데, 일단 저 소리는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인것을 제외하고 한국서는 중-고등학교시절엔 교복을 입는다. 매일같이 입는데 우리는 그 교복에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있나? 그 교복에서 간지를 내기위해 항아리핏으로 바지를 수선하거나 오히려 꽉 조이게 수선하는 테러를 자행하는걸 보아하니 저 말 그대로는 확실히 개소리로 받아들여졌고, 게다가 난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싫어한다. 브랜드를 싫어하는게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자기의 애인이자 동업자였던 말콤 맥라렌과 그 유명한 'SEX'매장을 차리고 세디셔너리즈라는 전설적인 펑크웨어 브랜드를 같이 진행하다가, 비비안여사가(당시엔 여사가 아니였겠지만) 동업자의 뒤통수를 빢!!하고 갈기고 디자인을 훔쳐와 차리고 현재까지 유지되는게 비비안 웨스트우드이다. 솔직히 말콤 맥라렌이 죽고나서 과연 비비안은 장례식에 참가라도 했을까? 비비안이 먼저 죽었다면 말콤이 그 무덤에 침을 뱉었을지도.




그리고 군대엘 갔다, 23살에 늦은나이에.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외부로 소통하는 것 보다 내부로, 즉 생각하는 시간이 존~나게 많아졌고 내가 만약 브랜드를 차리면 어떤 컨셉으로 차릴까, 훈련소에서 별 보면서 행군하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으로 스팀펑크를 기반으로 한 워크웨어컨셉을 만들면 괜찮을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하다가 갑자기 비비안여사가 한 저 대사가 떠올랐다.




현재 패션에서 밀리터리를 빼놓을 순 없다, 밀리터리 디테일을 안 쓴 브랜드를 찾는게 손에 꼽을 수 없고, 여튼 간접적으로 체험하던 것들을 실제로 입어보고 활동하고 하다보니 비비안 여사가 무슨말을 하려고 했는지 슬슬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말 안에 뼈가 좀 굵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내가 제대로 생각도 안해보고 그냥 넘겨버렸으니, 여튼.


이를 뭐라고 말로 풀어서 설명해야 할 까, 매일 입다보니 보이지 않았던 면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고무링을 어떻게 차느냐부터 두께로 바뀌는 핏의 변화, 전투화 끈 처리를 어떻게 할건지, 전투화 끈을 꽉 조여멜건지 살짝 헐렁하게 할 건지, 사소하게 바뀌는 요소들이 입었을 시 핏부터 컨셉이 변하는걸 봤다. 그리고 밖에있을 시절 내가 샀던 옷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쁘다'라고 산 옷들이 대부분이였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코디하는데 범용성 범주가 좁았다는 것. 솔직히 말해서 난 어떤 청바지를 입으면 그 청바지에 어울리는 특정한 상의를 입고 전체 컨셉이나 느낌에 통일되는 신발을 신거나 혹은 도식화된 스타일을 비꼬거나 살짝 비트는 느낌의 신발을 신던지, 생각해보니 이건 그냥 공식이였다. 난 여기서 좀 큰 충격을 받았던게 획일화된 스타일이나 클론패션을 깔보고 비판했던 내 모습을 다르게 보니 결국 나도 그 범주 안에 들어가있던 것, 단 내 스타일이 유행과 상관없다 뿐이지 난 내가 비판하던 대상이 결국 나임을 확인한 순간이였다. 좀 충격적이였다.


전역하고 나서 가장 먼저 바뀐건 옷을 살 때 디자인과 동등하게 이 범용성이란 범주도 디자인과 동등한 위치를 두고 옷을 고르고 사입기 시작했고 현재도 그렇다. 단순히 '와 이거 개이쁨 이거 지금 놓치면 절대로 사지도 못하고 이쁘니까 일단 사자'에서 벗어나서, 현재 갖고있는 옷들로도 충분히 코디네이팅이 가능하고 몇개만 바꿨을 뿐인데도 느낌이 확 바뀌는 그러한 옷들로. 그리고 바뀐것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찾은것은, 물론 우리는 당연히 거울을 봐야함이 맞지만, 상상하기 시작했다. 즉 내가 입은 모습이 아니라 다른사람이 입었을 때의 모습과 다른사람이 날 보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조금만 미스난다면 그 코디는 수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물론 내가 어떤 옷을 입었기에 그 특정한 모습이 나오는건 당연하다, 괜히 패완얼 패완몸이란 말이 나온게 아니니까, 그래도 난 조금 더 범위를 넓혔고 덕분에 군 전역 이후로 옷을 정말 덜 사게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또 생각해봤다, 이 글을 적기 전에 직장에서도, 이 글을 쓰면서도. 솔직히 난 저 말이 정확하게 말하는 바는 자기가 직접 많이 입어봐야 그 옷에대한 이해도가 늘어난다, 라고 말하는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천하의 썅년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근데 저 말이 날 바꿔놓은 계기중 하나가 되었고 정말로 비비안여사가 의도한 바가 뭘까, 난 아직도 모르겠다. 늙어서 나온 헛소리일수도 있고 이걸 내가 확대해석해서 장황하게 글을 쓰게 만드는 걸 수도. 별 소리 아니라고 넘기는 사람도 많을거고.





솔직히 개개인이 옷을 어떻게 사는지는 내 알바 아니고, 난 그저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소비에 보수적이 되어서 일수도 있다. 근데 나는, 단순한 단벌신사로 만드는 옷들은 정말 나쁜 옷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옷이나 신발이 특정한 코디를 강요하는거는, 정말이지 개인이 펼칠 수 있는 요소를 배재해버리고 옷이 사람을 속박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두고 흔히 패완얼이니 패완몸이니(난 이 말들을 굉장히 싫어함) 말하는게 아닐까?



옷이 옷을 사게 만드는 옷은 정말이지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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