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손명환의 사짜 불교강의

색즉시공이 무슨말일지 햇갈릴때, 
마르크스의 '현상적인것은 본질적이며 본질적인것은 현상적인것이다'
를 떠올림 ㅇㅇ

오랜만에 손명환의 사짜 불교강의를 시작해보겠음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를 구분하는 가장 핵심은 空사상이고, 이 공사상의 집대성은 반야경임. 그런데 이경전 반야경은 진짜 엄청어려움 아무나못봄. 그리고 이 경전을 풀어슨게 반야심경이라는 그 유명한 경전임.ㅇㅇ 반야경의 핵심사상은 오온개공. 5가지 감각이 고정된것이 아니라는거임. 인데 여기에대해서 좀 이야기해보겠음. 

지금 내가설명할 구절이 이 색즉시공 네글자임.

여기서 색은현상을 뜻함. 즉시는 이꼴이랑 같은말이고 문제는 공에대한해석임

일반적으로 일체개공 공사상 등에서 空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라는 뜻으로 사용됨. 

공사상에대해서 조금 깊게 이야기해보겠음. 또 이걸설명하려면 불교의 삼법인 

세가지 도장찍어놓을만한 깨달음을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음. 

삼법인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세가지로 구성됨

제행무상은 모든혹은 여러것이 움직인다. =고정된 것이 없다 라는뜻임

이 움직임은 관계와 관계가 만들어내는 인연속에서 움직임. 무슨말이냐면 나랑 이 글 읽고있는 당신이랑 어제의 관계랑 오늘의 관계 또 일년후의 관계와 이년후의 관계가 다르다는걸 생각해 보면됨. 또 님 스스로또한 님자신과 관계를 맺을거임. 나는 아 오늘 인터넷그만해야겠다 스스로한테 다짐하면서 스스로 또 못지킴. 그러니까 그 어떤것도 딱 그대로 존재하는게아니라 인연의 흐름에따라 변해간다는거임. ㅇㅋ? 

제법무아는 모든 깨달음속에 내가 없다 라고 풀어 쓸수있는데, 이게무슨말이냐 이건 1의 제행무상과 연결시켜서 이해해야함. 아까 말했듯이 모든것은 고정되지않고 움직임. 그리고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존재하는게아니라 나라는 존재자체도 움직이고있는거임. 그니까 지금 이순간에도 나는 조금더 나이를 먹어가고 5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쪼금씩이지만 바뀌어가는게 아니겠음? 그러니까 고정된 '나'라는 존재자체가 있다는것또한 허상이라는 말임. 님 10년전의 님을보면 지금의 님과 다르지않음? 그때와 님이 고정되서 똑같은사람임? 아닐것임

그리고 세번째는 일체개고임 모든것이 고통이란뜻이고, 이 고통은 모든것이 변해가는데 변하지않고 집착하고 무언가를 잡고 욕심내는데서 생김.

여튼 이 제행무상과 제법무아 두개의 핵심은 고정된실체가 없다는데에 수렴함. 고정된실체가 없다는것은 공사상의 핵심근간이고,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인연을 자각할수 있음. 내가 하나로고정된내가 아니고 변해감. 너도 하나로 고정된 니가 아니고 변해감. 그렇다면 나랑 너랑 하나 하나로 구분해가느것은 딱히 의미가없음. 나도 변해가고 너도 변해가면 언젠가 니가 과거의 내가될수있고 언젠가 지금의 내가 미래의 너와 비슷할 수있는거임. 여기서 자타불이. 나와 남이 다르지않다는 깨달음이 나오고 자비심이 나오는거임.

요약해봄 공의 깨달음에서 자비심이나온다. 모든것이 변한다는 꺠달음에서 자비심이 나온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핵심임. 소승불교처럼 자기의 해탈에만 집중하는게아니라, 모든것이 변해가니 내스스로 지혜를 쌓음과 동시에 남들에게 자비를 배푸는것이 당연해 지는것임. 남도 다만 남이아니니까 말임. 그리고 이 행동을 우리는 보살행 혹은 바라밀 이라고 부름.

자 다시 이제 색즉시공에대해서 설명해 보겠음.

색즉시공 여기서 색은 현상을 뜻하고 공은 아까 고정된실체가없다는 뜻이라고 말했음.
그런데 여기에 공의 다른의미가 있다는것을 말하고싶음. 공이란 '궁극적진리'라는 함의 똣한 가지고있음. 왜 그런지는 불교박사님한테 물어보길바람. 그니까 어떤 '본질'이라는 뜻임. 그니까 색 현상자체가 곧 '공' 궁극적진리다. 이 말씀은 마르크스의 '현상적인것은 본질적인것이며 본질적인것은 현상적인것이다'와 아주 그대로 일맥상통함. 본질이 존재하기떔에 현상이그렇게 드러나는것이고, 현상이그렇게드러나는것은 본질이 그렇기때문임. 이정도로 이해하면될것임

그리고마지막 공에는 유와무. 그러니까 존재하면서 존재하지않음. 을 뜻하기도함. 무슨말인지알겠음? 미립자 혹은 쿼크를 물리학적 개념을 좀 차용하고싶음 쿼크는 존재하면서 안하는 오묘한 입자이고, 우리존재의 기본을 이룸. 마찬가지로 불교에서 색즉시공을말할때 들어있는 또 하나의 뜻은

현상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않는다라는거임. 말이 어렵지? 그니까 이런거임.

쾌락과 고통을 둘로 나눌수없음. 현실과 본질(이상)을 둘로나눌수없음. 불교식으로는 생사와 열반이 다르지않은거임.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핵심중하나인 '중도'에 다가서게됨. 꺠달음을 얻기위해 즐거움과 괴로움 있음과 없음 어떤 양극단에도 집착하지 말자는거임 ㅇㅇㅇㅇ

자 색즉시공정리

1.현상에 고정된실체는없다
2.현상이 본질을 본질이 현상을 보여줌
3.존재를 어떤 둘로 나눌수없다. 

이정도가 되겠음.







댓글

일단 위의 설명을 위해 삼법인이 들어올 필요는 없구요, 색즉시공에 대한 설명은 무척 정확하게 정리하신듯해요 근데 사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경우는 같이 물려다녀야 하는 개념이에요 그 밸런스가 깨져버리면서 분파가 성립되게 되었지요 색즉시공에 중점을 두게되면 명환씨 설명처럼 소승불교의 방향으로 흘러가게됩니다 '공'의 개념에 대해 집착을 하게되면서 색의 구분에 둔감해지고, 소위 말하는 허무주의로 빠져버리게되지요 쾌락과 고통도 구분이 안되고, 선과 악도 구분이 안되고, 생과 사도 구분이 안되는데 뭐 굳이 색의 세상에서 열심히 살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ㅋ 그러니깐 아무것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어지니 '색'또한 의미가 없어지고 결국 살아서 무엇하노, 사는것이나 죽는 것이 구분이 없는데.. 이래버리게 되는거죠 그래서 '공즉시색'의 의미가 중요한겁니다 이건 명환씨가 전개하신 논리를 그대로 역으로 적용하면 됩니다 색즉시공을 설명하시면서 현세의 구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뽑아내셨잖아요 결국 다 구분할 수 없다, 라고... 이거랑 동일하게 공즉시색은 모든 구분을 인정하고 들어가는겁니다 즉, 색즉시공에서 아무 구분이 없다하였으나 현실을 보니 아, 씨발... 조낸 다 구분이 되어있구만, 하는 좌절에 빠질때 공즉시색이 필요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이게 구분이 어쩌자는거냐, 할만큼 모호한 상황에서 또 다시 구분은 의미없다해놓고선 다시 구분을 인정하라, 이렇게 되어버리는거죠 저는 불교의 최고의 매력이 이 부분에 있다고 봅니다 나름 어설픈 종교학 전공자로서ㅋ 불교 교리의 최고 정점은 그래서 색즉시공이 아닌 공즉시색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종교'의 기능이 현실도피가 되는 일련의 종교들에 대해서는 제가 개인적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편이라... 암튼 불교는 공즉시색을 통해 지극히 현실적인 기능들을 하게됩니다 색즉시공을 통해 아놔, 나 혼자 해탈을 해버리고 말아야겠다, 라는 막가파들이 양산되는 것을 공즉시색을 통해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급하게 쓰다보니 얘기가 막 두서없어지는데, 암튼 그냥 거칠게 말하자면 '구분'과 '차별'에 대한 개념을 달리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굳이 '차별'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구분1, 구분2로 나눌수가 없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ㅋ 즉, 구분은 할 수 없는데 구분을 해야한다 아니면 구분은 무의미하나 구분을 해야한다... 뭐 이런말인데 이게 또 약간 선문답처럼 되어버리네요 그냥 그런거 생각해보면 될 듯 합니다 남여 평등문제를 놓고 볼 때, 남여를 인간적으로 다름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나 남여는 분명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상 만물의 구분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다음 단계의 '구분'에 기본 전제 조건인 것입니다 즉, 쾌락과 고통이 색즉시공의 의미에서는 구분될 수 없고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라면 공즉시색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쾌락과 고통을 구분되어 존재하고 그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그 구분의 무의미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고 좋은 글 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