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

음악생활

진짜 뭐 하기 싫어하는 나에게 그나마 어떤 이상의 수준과 식견을 갖고 있다. 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게 딱 하나 있는데-참고로 내가 나를 어떻다고 정의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겐 "나 요즘 매일 잠도 못자고 우울해. 우울증인가봐." 이렇게 쉽게 말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나를 스스로 무엇이다. 라고 말하기에 내가 부족한 것이 참 많기 때문이고 그렇게 무언가를 정의시키는 것 자체가 어떤 잠재나 가능성을 부정해버리고 그 정의라는 틀 안에 속박해버리는 것 같아서.- 그게 바로 음악이다. 물론 나보다 한참 앞서 내가 이제서야 접한 음악들을 몇 년 전에 페이버릿에 올려두는 사람들을 가끔 보면 자괴감을 느끼긴 하지만 어쨌든 음악에 있어서 나는 내가 다른 범인들 이상의 수준과, 그것을 가려낼 수 있는 식견- 좀 오버해서 좋은 음악을 가려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2008년 즈음 정도까진 그냥 국내힙합만 줄창 들었었다. 다른 음악은 지독히도 안들었는데 소녀시대 멤버들 이름도 다 모를 정도? 그 이전 어렸을 때부터 원타임, 드렁큰 타이거, 다이나믹 듀오 등의 테이프를 사면서 무브먼트를 알게 되고, CSP 등이 포진한 소울커넥션 노래도 듣다가 지기펠라즈와 소울컴퍼니에 빠졌다. 힙합플레이야 발매된 앨범 메뉴 맨 끝까지 다 뒤져서 전부 듣고 난 뒤(물론 쓰레기같은 앨범들 빼고) 아, 한국 힙합에는 이제 내가 더 이상 들을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드는거다. 물론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그때 한국힙합이 끝장난 것은 아니었기에 계속 신보가 나오고 그랬지만 나올때마다 전부 바로 체크해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엔 앨범 릴리즈가 되게 드문 드문 되고 해서... 그래서 그때부터 외국힙합으로 눈을 돌려 닥치는 대로 듣기 시작했다(이쯤에서 힙합이면 힙합이지 한국힙합은 뭐고 외국힙합은 뭐냐 하고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냥 편의상 나눈 것임). 아는 사람에게 공짜로 얻은 Outkast, 8mile OST, 그리고 Illmatic, 50Cent 등으로 시작해서 힙합플레이야 등 다 들어가면서 그냥 닥치는 대로 듣고 했던 것 같다. 이 쯔음에서 한국힙합에서 내게 톱은 단연 Verbal Jint 뿐이었고 버벌진트 포함 몇을 제외한 몇은 전부 개 쓰레기구나 라는 옳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IDM에 빠진 계기가 정확히 뭐였는진 생각이 안나는데, 어느 날에선가부터 '난해하고, 어렵고, 실험적인 음악'이 찾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나와 음악 공유/교류를 하던 사람(들)에게 전부 이런 음악이 있냐 주문했었는데 그 때 추천 받은 게 Def Jux 레이블의 뮤지션들. 다는 아니지만 El-P, RJD2, Murs, Mr. Lif, Cannibal OX, Aesop Rock 등 찾는대로 들었고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카니발 옥스의 The Cold Vain 앨범. 표지도 그렇고 뭐 음악도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근데 이 사람들 음악이 지나치게 실험적인 면도 있지만 도저히 내가 원하는 그런 소리가 아니었다. 더 난해하고, 어렵고 나에게 맞는 음악... 내 머리를 끄집어내서 내가 원하는 음악이 뭔지 공유하고 싶었지만 물론 불가능하고 자꾸 나랑 어긋나는 음악만 들어와서 그때 또 정체가 왔던 것 같다.

앞 문단에 IDM에 빠진 계기가 정확히 기억 안난다고 했는데, 빠지게 된 곡은 기억하고 있다. 바로 Royksopp의 Happy Up Here이란 곡. 한창 글에 bgm 붙이던 게 시작되던 때 누군가가 글에 붙여넣은 음악이 듣자마자 팍 꽂혔고 그때부터 Royksopp을 필두로 해 비슷한 음악가들을 마구마구 디깅하기 시작했다. 로익솝이랑 비슷하진 않지만 Brainfeeder를 알고 광팬이 된것도 이 때고... 아,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해서 언제 무슨 음악을 어떻게 듣게 됐는지 기록했다면 좋겠건만

무튼 음악을 들을수록 끝이 없다는 걸 느끼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는다고 남에게 말할 수 있는게 그나마 나에겐 다행이고 유일한 자부심이다. 그거 아니면 난 아무것도 없으니까...ㅎㅎ.ㅎ 사실 요즘 들어 세번째 정체기가 온 것 같긴 하다. 남들보다 더 많이 알려고 억지로 음악을 듣는 것 같다는 기분이 요새 자꾸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냥 겉으로만 음악을 듣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고... 뭐, 이 또한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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