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군대 사고 경험담

제 인생에서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이고, 제대 할 때 까지 단 한번도 집합과 얼차려, 구타를 하지 않았던 계기가 됐던 사건이기도 해서 아직도 복잡한 마음입니다


사건은 9x년도 강원도의 17xx부대 신병교육대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망 사건이니 만큼 다른 부대에도 소개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 혹시나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거라 생각되요


이 사건의 사망자는 일병이었고, 가해자는 상병이었습니다

가해자인 상병은 후임들에게 욕 한마디 안하던 순딩이처럼 착한 사람이었고, 부모님들은 인사동에서 미술품 도매상인가를 하고 있었어요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토요일인가 일요일로 얼핏 기억하는데 낮 시간대였고, 내무반에서 쉬고 있던 도중에 일어났죠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처럼 그런 일상이었습니다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뭔가 사건이 일어나겠다는 전초도 전혀 없었어요


그 날 피해 당사자인 일병은 후임들을 갈구고 있었습니다

얼차려를 준다던가 구타를 한다던가 그런게 아니라, 늘상 해오던 말로써 긁어대는 갈굼이죠

큰 소리로 윽박 지르면서 갈구는 것도 아니고, 옆에 앉아서 조곤조곤, 자근자근 껌 씹 듯이 씹어 먹고 있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보이면 택도 없는 이유를 갖다 붙혀서 갈구는 그런 아주 루틴한 상황인지라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어요

일병의 선임들이 보기에도 그냥 아 시끄럽네 정도였을테죠


가해자인 상병도 그랬던 거 같습니다

피해자인 일병에게 지나가면서 한 마디를 했어요


"그만해라 임마. 넌 뭘 얼마나 잘한다고"


하면서 뒷통수를 툭 건드리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군대가 어떤 곳인지 알면 상병이 그 정도로 하고 갔으면, 그냥 그걸로 끝이라는 걸 알죠

하지만, 이 가해자인 상병은 평소 착해도 너무 착했던지 일병이 말대꾸를 시작했습니다


"아니 애들 앞에서... 이러면 애들을 어떻게 통제 합니까 ?"

"x상병님께서 너무 착하시니까 애들이 이렇게 개판으로 기어 오르는 거 아닙니까 ?"


일병의 언행이 다소 부적절하기는 했지만, 일병의 행동은 자기를 지나서 지나가는 상병을 향해 일어나서 뒤돌아 보며 , 자기의 행동이 자기가 못된 놈이라서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 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보다 후임인 일병이 대놓고 불만을 표출 한다는 건 아무리 착한 상병의 입장으로써도 그냥 넘어가선 안되는 위상의 문제이기도 했죠

아마 당시 내무반에 있던 병사들 중 이 상병이 최고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만 두라고 할 상황이라 생각해서 최고참인 자기가 중지시키려고 했던거죠

괴롭힘을 당하던 후임병이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건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아 ! 그만 하라니까 !"


가해자인 상병은 가던 길을 돌아서서 일병을 향해 이렇게 말하며 양손으로 일병의 가슴팍을 툭 밀었습니다

다소 감정이 섞인 제스쳐였긴 하지만, 쌔게 가격을 하려던게 아니라 달려들 듯 도발적인 일병에게 그러지 말라고 경고의 의사를 표현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자기를 지나쳐 가는 상병을 향해 뒤돌아서서 말하고 있던 일병의 자세가 좋지 못했습니다

정자세로 서 있었더라면 툭 민다고 해서 뒤로 넘어지거나 그러지 않았을텐데, 다혈질이었던 피해자인 일병은 침상에 걸터 앉아 있다 일어났고, 그것도 뒤로 돌면서 항변을 했던터라 자세가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던거죠

증언 중에는 짝다리를 짚고 서있었다는 증언도 있었고, 일병의 몸이 바르게 서 있지 않았다는 증언이 다수 있었습니다


뒤로 밀리면서 다리가 얽히고 중심을 잡지 못한 일병은 그대로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침상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이때까지도 설마 무슨 일이 생길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내무반에 있던 모두가 피해자인 일병이 뒤로 넘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서도 


'저 (일병) 새끼 왜 저래, 저거 무슨 약 처먹은 거 아냐 ? '

'아 그만 좀 하지 시끄럽게...'

'오늘 또 지랄났네, 저 (일병) 새끼 빡돌면 또 개 같아지는데, 젠장...'

뭐 이런 생각들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평온함과는 반대로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사태가 심각한 걸 인식하고 즉시 군단병원으로 후송조치를 했지만 후송차 안에서 사망이 확인 됐습니다

현장에서 사망 한건지, 후송차 안에서 사망 한건지는 정확하게 발표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발표문에는 후송조치를 했지만 이미 사망했다고 표현했습니다


발표문을 들었을 때 까지만 해도 저희는 육군교도소를 가느냐, 아니면 형을 크게 받아서 불명예 재대로 민간교도소를 가느냐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상황은 과실치사니까 부대장의 의사가 판결에 크게 영향을 미칠거라고 운운 하면서 신병교육대장(대대장)에게 부탁해 보고, 탄원서라도 쓰자는 말도 있었습니다

심하게는 개xx 하나 때문에 멀쩡한 사람 하나 병신 됐다고 하기도 하고, 병장들은 나는 앞으로 아무 것도 안할거니까 나한테 아무 소리도 안들리게 하라고, 군생활 얼마 안남았는데 부대 생각한다고 나서다가 나까지 병신 될 일 생기면 누가 책임지냐는 말도 하고 그랬습니다

정신나간 놈은 식당에 밥 먹으러 갈 때도 후임 두명이서 옆에서 가드하라고 넘어지기라도 해서 뒈지면 어떡하냐고 하는 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며칠 못갔습니다


사건 다다음 주 화요일이었을 겁니다

오래된 일이라 요일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고, '대충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후'라고 기억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다시 알려줄게 있다고 취침점호시간에 일직사관이 말을 꺼내더군요

부모님이 어제 3번째인가 몇 번째인가 면회를 왔다고 하더군요

일 끝나고 밤에 차를 몰고 오셨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트럭이 중앙선 침범을 해서 교통사고가 났고 양친 모두 즉사였다

사고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중이라 정확한 결과는 재판에서 알 수 있지만, 경찰에서는 어두운 야간 빙판 길에 트럭이 미쳐 대비를 못하면서 미끌어져 중앙선을 침범해 일어난 사고라고 사료된다

트럭 운전자도 즉사


청천병력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군대에서는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을 글썽이는 경우도 있을 정도인데, 양친이 모두 돌아가셨다니 충격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재수 없이 당했다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도 농담조차 안하고, 취침점호 얼차려도 없고, 사병들 끼리 모이지도 않았습니다

신병훈련소라 교육이 매일 있기 때문에 많이는 못 모여도 잠깐씩 짬을 내서 농구나 미니축구를 하기는 했는데, 근 3주 정도를 그것 조차 안했던 거 같습니다. 정말 다 뿔뿔이 흩어져서 생활했어요

토요일 일요일에도 전술훈련소에 박혀서 소설 읽는 사람, TV보는 사람, 헬쓰기구 들면서 운동하는 사람, 겨울인데도 평상에 앉아서 하늘 보는 사람, 훈련병 내무반에 박힌 사람, 신병훈련소 1개 중대라고 해봤자 행정병까지 합해서 20여명이라 더 그랬던건지, 5명 이상 모이는 곳은 행정반 사무실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점호 준비하면 쭈루룩 내무반으로 모이고, 청소하고 점호시간에는 전달사항만 짧게 전하고 끝내고 그랬죠


우는 사람도 꽤 있었어요

다 큰 남자가 남자들 끼리 있는데, 술 취한 것도 아니고 맨정신에서 자기 일도 아닌데 어떻게 우냐 할지도 모르지만,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하고 감정 정리가 안되니까 의외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황당해도 너무 터무니 없이 황당하니까요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대체 무슨 감정인지 파악도 안되는 지경이었습니다

슬픈건지, 억울한건지, 분한건지, 동정인지, 공감인지... 뭐라고 정의돼지가 않았어요

신병훈련소는 부대 전체가 120명 정도 밖에 안돼서 일반 부대의 일개 중대규모이기 때문에, 같은 중대가 아니라도 선후임처럼 대우하고 생활하니, 두 사람 모두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저는 못나게도 충격이 크게 느껴졌는지 화장실에 처박혀서 꺼이 꺼이 울었죠


사람들의 분위기가 더 오래 가라앉았던 이유는 유산 때문입니다

양친께서 남기고 가신 빚이 5억이었습니다

당시 5억이면 지금은 그 배가 넘는 부담감의 액수겠죠

부채가 자본보다 많을 경우 유산 상속을 전부 포기하면 된다지만, 여동생이 하나 있었고, 본인은 교도소에 가야 할 상황에서 당장 모든게 경매로 넘어 갈 지경에 모든 유산을 포기해 버리면, 여동생은 정말 몸만 가지고 길거리로 쫓겨 날 판이라 그 빚을 본인이 감당해야 했다는 겁니다

이 미술품 도매상의 사업자 형태가 유한회사였고, 아버님이 대표로 있었기 때문에 모든 재산이 다 걸려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빚 상환을 유예해주는 댓가로 남매 2명이 향후 벌어서 갚겠다고 했답니다

이 사건 하나로 양친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본인 뿐만 아니라 여동생까지 평생을 저당 잡힌거죠


부대에서 두 번의 공식 발표가 있었고, 면회를 갔던 중대장이 전해준 유산문제를 들은 이후에는 제가 제대 할 때 까지 아무도 이 사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얘기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고, 은폐하려고 한 적도 없지만,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았죠

기억을 되새김질 해봐야 본인들이 상처를 입으니까요

부대에서도 병사들의 상황을 감지 했는지, 상병에 대한 판결도 알려주지 않았고, 피해자인 일병에 대한 보상금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유산 상속을 어떻게 결정했는지, 트럭운전자에게 보상을 어떻게 받게 됐는지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모두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걸 물어보자는 생각을 아무도 못하던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요 ?

어떻게 그런 걸 물어보냐가 아니라, 물어본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당사자와 그 가족들 뿐만 아니라 부대원 전체가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겁니다

이 상병이 제대 할 날짜가 지나서도 부대에 온 적이 없는 상황을 유추해서 대략적인 판결을 짐작하긴 했습니다


이렇게 쓰고나서도 왜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제가 잘못하거나 관련된 일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왠지 그 상병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정리가 안됐다 싶기도 해요

아마 평생 기억하고 살 거 같습니다

이런 마음이 정상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깊이 생각해보려 한 적은 없었어요

제대하고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문득 문득 생각나고,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고, 도와 줄 수는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딱히 도와줄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잠시 스쳐간 인연일 뿐인데 얽매이는게 오히려 오지랖이라는 생각도 들고, 가뜩이나 연락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같이 복무했던 부대원들에게 연락처를 묻고자 소식을 탐문해 보기도 했지만 아는 사람은 없더군요

워낙 부대내에서도 터부시했던 일인지라 당시에는 연락처라도 알아둬서 도와주고 싶다고는 아무도 신경을 못 썼던 듯 합니다

하긴 부대내에서 연락처를 주고 받아도 사회 나오면 연락도 안하고 지내는게 일반적인데, 그렇게 까지 생각이 못 미치는 건 당연했을지도요


이 방송을 그 상병이나 일병의 가족들이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저 역시 당시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거 같습니다

가슴 속에 뭔가 모를 묵직하고 답답한게 맺힌 거 같아요

방송을 본 후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감정을 정리하는 건 어려울 거 같습니다

그냥 이대로 묵혀두는게 때로는 좋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잘 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