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여중생A, 80~105화

맛있는 걸 먹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 누군가한테 달려가서 말할 수 있는 거... 그거 진짜 좋은 거더라구... 그래서... 너한테 고맙다구...


지 엄마 닮아서 벌써부터 나돌아 다닌다고? 그래서 교육을 시켜줘야 한다고? 어차피 눈에 띄면 때릴 거였으면서 왜 그런 이유를 붙이지? 행복을 기대하거나 경계했던 일련의 행동들 자체가 큰 착각이었다. 삶의 의지를 쥐고 있는 건 내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날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애써 사귄 아이들에 섞여 들려면 멀쩡한 척 해야 한다. 나한테도 자상한 엄마와 배울 점이 있는 아빠가 있다는 듯이. 내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걸 눈치 챌수록 아이들은 나와 멀어지려 할 테니까. 다만, 오늘은 매일같이 맛있던 점심밥도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동안 묵혀둔 감정의 응어리들이 차고 넘쳐 뿜어내는 악취에 코가 마비되었을지도 모르지


아빠는 나에게 "무슨 정신머리를 하고 다니는 거냐"라고 했지만 나야말로 무슨 정신머리로 살아가야 하는 건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내가 한창 게임에 빠져 살았을 때 말야... 현실과 맞지 않게 붕 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 게임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보니까, 외부의 충격에 몇 배로 타격을 받는 거야. 나는 게임 속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방심하고 있다가, 어차피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여기라는 충격과 더불어서.


무슨 일 있으면 얘기해봐, 도와줄게

뭘 도와줄 수 있다는 거야... 내 인생 전부를?


나도 한때는 사람을 낙원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 다시는 그런 짓 안 해.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사람을 낙원으로 삼아선 안 돼. 사람은 움직이는 거니까. 나는 지속가능한 낙원을 가꾸어야 한다.


나만 낙원을 찾아 헤맨 게 아니야 아이들은 이미 저마다의 낙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난 그런 거 안 들어" 라고 했으니... 애들이 날 어떻게 생각했겠어.


미래야, 미안하지만. 아무리 너라도 이런 식의 글은 읽어줄 수 없어.

나야말로 미안하군. 난 앞으로도 이런 식의 글을 쓸 거거든.


반응이 없어도 괜찮아. 계속 고쳐나가면 돼.


음... 근데 여기 나오는 남자애. 이거 완전 난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내 주위에 멋있는 남자는 너밖에 없으니까... 나도 모르게...


글은 또 영화나 책을 보는 거랑 다르달까... 글은 내 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하루종일 글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그렇게 영원히 빠져들 수 있다는 게 정말... 자기 전에 이런저런 생각 계속 하다보면 결국엔 나쁜 생각만 떠오르잖아. 이젠 그 생각 대신 글 쓸 생각 하면 되니까 정말 좋아


친구... 친구라고 해주는 구나


이제 알겠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매달리는지. 무슨 일이 나면 꼭 이렇게("야! 옆반에 누구랑 누구 싸운대!") 중계하러 오는 애가 있잖아 얘는 이 말을 하러 달려오면서 얼마나 설레었겠어 자기 말 한 마디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따라와 주는데. 지금 이 사람들에게는 이 상황이 게임인 거야. 그 정보가 무엇이든지, 한 글자라도 더 말해서 주의를 끌면 이기는, '게임'.


내가 좋아하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야. 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걸 쓸 뿐이야. 


모두가 당연히 살아 나가는 오늘에서, 가치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이단적으로 보이는가 혹시나 해서 무뎌져 있던 감각이 학급 또래 아이의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되살아 났다.


저기, 그런데... 한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 뭐, '죽고 싶다' 이런 거...

그건,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이지, 정말로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잖니 누가 정말로 죽고 싶어서 '죽고 싶다'고 하겠어...

('죽고 싶다'는 단순한 말에 그런 속뜻이 있었다니... 나야말로 충격적이다. 나처럼 퓨즈 끊어지듯이 마감함으로써 모든 것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구나... 난 사람들이 하도 '죽고 싶다'는 말을 쉽게 하길래, 은근히 동질감 느꼈었는데... 제대로 말했으면 큰일날 뻔 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나서지 않았으니까. 나부터도.


사람이 무너지기 전 지탱해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딱 한 명이면 충분하다, 그 때의 나처럼...


그런 게 네가 말하는 다른 세계라면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아


착한 일진이라니... 정의로운 조폭만큼 이상한 말이다.


나는 송재민이 말하는 일진들의 '다른 세계'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들에게 다른 아이들은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고, 언제든지 핸드폰을 빌려 쓸 수 있는 대상이었다.


뭐, 내가 칭찬을 받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솔직히 저런 리플보다는 나한테 칭찬을 해주시는 분들의 리플이 더욱...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한달까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도 잘 모르겠고, 잘 와닿지가 않아... 무리해서 칭찬해주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누구 마음은 순수하고, 누구 마음은 안 순수하고. 그런 거 아니잖아.


글쎄, 그럼 결국 그건 네 마음이 편하고 싶었던 거 아닌가? 오늘 나한테도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처럼?


와~ 컴퓨터 엄청 좋은 거 쓰네, 너 게임 해?

아니, 그냥 아빠가 맞춰준 건데. 아빠가 친구한테 "우리딸이 쓸 거니까 제일 좋은 걸로 달라"고 했대.

(사랑 받고 있구나...)


한번 손을 씻기 시작하니까 이제 나갔다 와서 안 씻으면 찝찝하단 말이지


놀고있네 나랑 논 것도 안 논 것도 다 자기들 마음대로 였으면서.


요즘은 가끔씩, 좌우명이 '호사다마'였던 그 때가 생각난다.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모든 것을 징조로 받아들였던 그 때.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손을 내밀어야 사람은 손을 잡고, 내 글을 봐달라는 노력을 할 때, 사람들은 보아준다. 근거 없는 결과는 없다. 보잘 것 없는 경계심으로 운명을 짚어보려 했던 것이, 오히려 인간 능력 밖의 오만한 가늠이었을지 모른다.


뭔가 잘못된 건가? 그럼 그렇지 일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어른 커피다... 난 지금 어른 커피를 마시고 있어!


나처럼 나이 먹으면 다 까먹어서 학원물 그리기도 힘들다구요


원래 선물이란 게, 자기 돈으로 사기 아까운 거 사주는 거야.


엄마가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지? 혹시... 아닐 텐데...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야 엄마가 날 사랑할 수도 있다는 건.


여기 아주 독특한 소설과 멋진 작가를 소개한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여중생A>

수줍은

영웅


너 여기 수염 덜밀렸다. 그런 거 여자애들이 싫어하는데~ 아직 면도할 줄 모르나봐?


예쁘다는 소리 듣는 것도 지겹겠다, 넌. 그치?

...솔직히 몇 번을 들어도 좋아 여자애들이 그렇게 말해주는건.

그래? 남자애들한테 듣는 게 더 좋은 거 아냐?

별로... 남자애들이 예쁘다고 하는 건 무서워 나는 가만히 있는데, 혼자서 사랑과 이별을 한다고. 부담스럽게 잘해 주다가 고백을 거절하면 상상도 못할만큼 무섭게 돌변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려. 나도 한때는 인기 많은 게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야.


봐, 나도 이렇게 남들 다 할 때 안 해서 지금 뒤늦게 해야 할 일이 많잖아 하지만 난 오늘 하나도 귀찮거나 싫지 않았어 왜냐하면 이건 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가. 오늘 네가 같이 와준 것처럼... 우리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서로 힘이 되는 친구였으면 해...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으레 착각하죠 작가 데뷔가 일생의 목표인 것처럼. 하지만, 작가의 본분은 '살아 남아 계속 글을 써 나가는 것'. 그러려면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우리, 같이 열심히 하는 거예요 같은 작가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살~아남아 뒤돌아 웃는 것이~ 인~생의 묘미, 삶의 비밀!


살아 남자! 본 게임에 들어갈 때까지!


영화가 재미 없으면 그걸 고른 나도 원망할거잖아...


좀 재미 없으면 어때 어차피 같이 보는 영화라면 누구와 봤는지가 중요한 거잖아


영화를 본 후 우리는 한참동안 그 영화의 구린 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영화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사실 오늘도 놀면 안되는 날인데... 누구 누구가 너무 휘둘리며 사는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무지 노력을 하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됐지, 뭐.


응? 도움이 안 되는 영화는 없어요 형편없는 영화였다면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그걸 분석하면 되죠 그리고 영화를 보러 간 것도 괜찮아요. 어차피 손해 보는 건 내가 아니잖아요?


자유를 얼마에 살 수 있는지, 그런건 어떤 어른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나는 금기를 엿본 것과 같은 충격에 빠졌다.


나오니까... 바깥 바람이 너무 차요

그래요? 자고 가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침에 맞는 바람은 더 찰 거예요


가끔은 완벽한 가족 구성원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구성원의 존재가 행복한 가정의 필수 조건일까?


내가 락 음악 안 좋아한다고 그동안 수없이 말했는데...


아, 드디어! 이 문 밖으로 나갈 수 있어!


정말 모르겠어? 네가 이러는 거, 내가 헤어지자고 한 이후에도 계속 그러면 그건 그냥 네 오기일 뿐이야 나에게 통하는 노력 같은 게 아니라고...


향수? 이백합한테 나던 좋은 냄새가 향수냄새였단 말야? 아니, 중학생인데 향수를 뿌린다고?!


짜증 나. 난 지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때문에 너랑 이렇게 얼굴 붉히게 된 거잖아.


예전에도 그랬어 잘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거리 둘 때, 나만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이런 게 이유였단 걸 알게 되면 얼마나 허무한 줄 알아?


진심으로... 미안해 네 말대로 너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질투가 난다고 해서 그게 너한테 못되게 굴 이유는 안되잖아


엄마는 백합이가 결혼을 안 해도, 글을 쓰고 싶다고 해도, 다 찬성이야. 하지만 불행하게 살게 하지는 않을거야 알겠니? 지금은 네가 가진 것들로 힘을 길러야 해 아빠의 지원이 없을 때에도 글을 쓰려면 말야... 물론 엄마는 언제나 백합이 편이야,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