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

다들 있고 싶습니다 혼자 나가주세요

1. 드물게 찾아왔던 공황증상이 최근 심하게 두 번이나 찾아와서 몇 년만에 다시 병원을 찾게 됐다. 신체적인 증상일수도 있다며 처음엔 Alpram 0.25mg이라는 안정제만, 다음에 방문했을 때는 A-Xat Cr 12.5mg이라는 Paxil의 제네릭(카피약)을 처방받았다(예전에 팍실 먹었다고 했더니 그걸로 줬다). 약으로 인해 마음이 흐려진다거나 하는 건 없지만 약을 먹으면 의존하게 될 것 같아서 찝찝하고 안 먹으면 다시 우울해지거나 공황이 올 것 같아서 찝찝하다.







2. 최근에 읽은 책들


막스 뮐러 / 독일인의 사랑
아멜리 노통 / 살인자의 건강법
천명관 / 고래
라우라 에스키벨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무라카미 하루키 / 어둠의 저편


[독일인의 사랑]은 다소 어려우면서 뻔하고 잔잔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몇 번을 읽어도 참 아름다운 문장들의 집합이라고 느끼는 책이다. 한 번은 모니터 텍스트로, 한 번은 책으로 읽었는데 소장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살인자의 건강법]은 재밌지만 그냥 딱 거기까지인 느낌. 급하게 탈고한 원고를 읽는 기분이었다.

[고래]는, 제 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다거나 19쇄를 찍어 낼 만큼 대단한 소설이라고 절대 생각되지 않는다(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이 결코 그 미디어의 퀄리티의 보장을 말 할 수는 없다. [7번방의 선물], [괴물], [타워]는 아주 그런 것들의 아주 좋은 예). 의도는 좋았으나 곳곳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어휘들과 옅은 남미 문학의 냄새. 나름 머리 열심히 써서 연대기 소설이랍시고 썼지만…. 이쯤에서 버벌빠인 나는 그의 가사가 생각난다. 「그래 골머리 꽤나 쓴 라임들인 건 인정해. 오, 고민 많이 했겠지, 3년쯤 전에 나랑 내 친구들이 이미 결론 내버린 명제」 클리셰들을 버무려 클리셰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해봤지만 너무 얕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그래도 한 번은 더 읽어 볼 생각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책 후반부 작품 해설에서 인용해보자면 '원제인 [Como agua para chocolate]은 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리 상태나 상황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국내에서는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소개되었고, 그 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매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도 영화 제목을 따르기로 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뭔가 애매한데 잘 번역한 제목이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을 통해 알게 되고 단번에 매료된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 위에 요리와 성이라는 소스를 잘 조합해 풀어냈다. 보면서 자꾸만 [백 년 동안의 고독]과 비교하며 아쉬움도 많이 느꼈지만 잘 읽었다고 생각한 책.

[어둠의 저편] 이름만 계속 접하다 처음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쓰레기.







3. '~한 것 같아요'라는 말. 처음엔 이런 표현 쓰는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좀 있었는데 왜 쓰면 안되는데?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맛있다가도 나중에 다시 생각했을 때 맛 없어질 수도 있는거고 좋다가도 싫어질 수도 있어서 '좋은 것 같은데요.' 식으로 말 할 수도 있는거지 특히 나처럼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사람한테는 꼭 필요한 어법이란 말이야!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걸 트위터랑 블로그에 한 번 썼던 것 같긴 하지만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입니다.' 역시도… 죽음을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남긴 저런 댓글에 온갖 빈정거림과 비아냥으로 도배된 군중들을 본 적 있는데 하도 많이 인용되기도 했고 그만큼 익숙한 사람들에겐 식상하고 아무 효과 없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어디 모두에게 같을 수 있을지…. 처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많이 봐 온 말이라도 자신의 입장에서 새로이 보게 되면 나쁜 무엇인가를 환기시킬 수 있는 참 좋은 표현인데 누군가의 진심어린 위로를 식상하다며 함부로 욕하고 바보로 몰아가는 댓글을 보면서… 죽고 싶은 사람 위로하러 모인 글에 또 누군가를 상처주는 쉽게 내뱉은 말들을 보게 되니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4. 늘 예상하고 있고 예상대로 진행되는 삶에서 받게 된 뜻 밖의 커피 한 잔.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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