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

이해받지 못한 자

-감기 기운이 이제야 좀 가신다.

-하다 못해, 서로를 파악하기 위해 묻는 가장 기본적인 취향 파악 질문에서도 나는 막혀버린다.
'무슨 음악 좋아하세요?' '일렉트로니카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IDM요. Intelligent Dance Music의 준말인데, 뇌를 위한 음악이라고도 해요. 테크노 같은 그냥 춤추기 위한 Electronic Dance Music의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해요. 좀 난해하고, ㅎㅎ 뭐 그렇죠...'
이딴 식으로 대답해봤자 아무도 '오 진짜요! 나도 IDM 좋아하는데!'라고 대답하지 않고 'ㄹ으응..' 이따위 식으로 나올 것을 알기 때문에, 물론 그렇게 지나가버린 사람 중 혹여 광적인 IDM 매니아가 있었을 진 몰라도, 그냥 '아 저는 그냥 다프트 펑크나 마룬 파이브, 라디오 헤드 등등 좋아해요' 란 소리로 끝내버리는 것이다(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아는 뮤지션을 말했으므로 이래도 말이 안 통하면 답이 없다). 무슨 만화 좋아하냐는 질문에 '죠죠 좋아해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라는 만화의 준말인데 죠스케ㅇㅁㄹㄴㅇㄻㅇㄴㄹ' 이러지 않고 '그냥 블리치나 헌터x헌터 같은거 봐요 ㅎㅎ' 이렇게 대답한다. 어떤 이의 머리에는 이 정도의 대답도 소위 덕후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순 있겠지만, 나에겐 엄청 힘든 노력을 요하는 '일반인 코스프레 하기'의 일환인 것이다. 애초에 성격 자체도 더럽게 말이 없는데다 그나마 얘기가 통할 수 있을 법한 주제에서도 마이너하니까 이렇게라도 얘기를 안 하면 도저히 섞일 수가 없다. 노래방 갈 때를 대비해 부를 수 있는 한국 노래들을 억지로 연습하고 외워둔다. 싫어하는 주제의 얘기가 나와도 참고 웃으면서 들어준다. 아직은 사람이랑 어울려야 하는 상황이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필사적이진 않지만 나 나름의 힘든 노력을 하는 거다. 애초에 infp는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 자체가 굉장히 힘들고, 어렵고, 남들보다 배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말이 끊기지 않기 위해 골똘히 할 말을 생각해야 하고, 10초 이상의 침묵이 불편한 상황이 되어버리는 그런 인위적인 만남을 갖고 싶지 않다. 적어도, 아무 말 없이, 가끔 딴 생각도 하면서 앉아 있다가 한마디 툭 뱉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또 글이 줄줄 샌다... 그냥 '이해받지 못하는 취향에 대한 짜증남'과 '내가 이런데 취향 이상의 이해받지 못할 것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사는 것이 고통스러울까'를 쓰고 싶었다. 물론 세상 어디에도 자기가 원하는 사람만을 만나고, 싫은 것을 싫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저 먼 오지에서 아사하는 어린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고 내가 점심 한 끼를 못 먹어서 생긴 허기가 가실 수 있을까? 빕스 사달라고 징징대는 게 아니라 그냥 '그래, 너도 배가 고팠구나.'라는 말이 듣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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