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

사자에서 그림자로

1 타카하타 이사오전

 

이번 주말에는 타카하타 이사오전 다녀왔다. 종로 쪽이라 늘 있는 집회에 무슨 행사까지 겹쳐서 날을 잘못 잡긴 했지만 재미가 있었어요

영화 볼 때와 마찬가지로 감독이 대략적으로 어떤 작품만 기획/감독했는지만 알고 갔는데, 전시는 영화랑 성격 자체가 다르니 앞으로는 가기 전에 많이 공부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전이든 회고전이든 작가와 작품의 주변 이야기들을 두루 다루는 느낌이다보니 모르고 가는 것 자체가 좀 실례인 것 같더군요

사진 촬영 금지인 건 그럴 수 있고 감독이나 작품에 실제 쓰인 원고나 그림 등을 갖고 온 건 참 좋았는데, 번역을 포함한 소개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게 너무 아쉬웠다. 가령 감독이 효율적인 제작을 위해 어떤 시스템을 구축했다, 라고 소개해주는 부분에서 체계도에 일본어가 뭐라 막 쓰여있는데 아무런 가이드나 간략한 번역이 하나도 없으니 바보 된 느낌으로 지나갔음

그나마 3부였나부턴 번역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오타 투성이라 이걸 믿고 읽고 받아들여야 하는 겜 맞나 싶었네요

제일 마지막엔 감독이 애용했던 스톱워치, 라고 하며 한하트랑 세이코 그리고 기억 안나는 어떤 시계 세개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었음 이건 감독이 머릿 속에서 어떤 장면에 얼마나 프레임이 소요되는지를 알기 위해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시간을 재는 용도로 쓴 거라는데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그냥 스쳐지나보내게 만드는 전시는 과연 좋은 전시인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끝나고 파는 굿즈들을 좀 경멸스럽게 바라보다 나왔다

종로쪽과 그 부근엔 재미있는 게 많고

더워지는 날씨라 걸칠 게 없는데도 그 안에서 사람들이 다 옷을 잘 입어서 부러웠다

 

 

 

2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그늘은 그림자로

 

예전에는 왜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단계를 지나보내고 있는 것 같다

또 어떤 부분은 이미 고민을 마쳐서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가끔은 멍청한 사람이 된 기분도 들어요 옛날보다 생각을 덜 하고 살고 있으니

 

작년 말부터 올해 3월 정도까지 원하지 않은 상황과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받는 날이 너무 많았고 그걸 꽤 건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어내려는 충동을 누르느라 힘들었다. 물론 실패한 적도 많았고

그러다 문득 내가 이것들을 왜 다 책임지려고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왜? 내 몫으로 다 돌려서 어떻게든 이겨내고 책임지려고 하고 있지?? 하면서

시선을 좀 다르게 해소 생각해보니 그것들 대부분이 내가 짊어지거나 책임질 일도, 무엇보다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더라

이런 성격을 가진 일들이 주변에 뭐가 있나 하고 생각해보니 지진이나 해일, 태풍 같은 것 밖에 없음

이런 자연재해 같은 일들을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그러니 힘들었던 게 당연함

그래서 그냥 이런 일들이 생기면 자연재해를 겪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포기하거나 받아들이거나, 둘 다거나

물론 포기나 받아들임도 어떤 종류의 힘듦은 필요하겠지만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랑 견뎌내는 거랑은 그 무게가 꽤나 다르니까요 또 견뎌내면서 해야만 하는 일들도 있을 것이고

패배자가 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는 자신만을 잊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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