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상처받으라고 한 말에 상처를 안 받을 방법은 없어요

오선지 2021. 7. 11. 10:34

그건 내 모든 감정을 동시에 마비시키는 것 뿐입니다. 그걸 선택하겠다면, 말릴 수는 없겠지만요. 최대는 내 바운더리 설정, 즉 "그런 말 하지 말라", "지금은 듣고 싶지 않다" 정도입니다. 거절을 한다고 상처안받는 것도 아니고요. 받은 상처를 안 받은 척 하는 건, 실제로는 자신을 혹독하게 대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감정표현 불능 상태로 한발짝 다가갑니다. 그건 자기보호(protection)가 아니고, 그냥 방어에 불과해요.
21세기입니다. 옛날 패러다임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저 희망사항일지라도요.

갑옷 입으면 상처 안받죠. 맞아요. 상대가 내게 주먹날려도, 지 주먹 아프죠. 그렇죠. 그런데 갑옷입고 비오는 날 못 나갑니다. 갑옷입고 다른 사람과 손잡을 수 없어요. 갑옷입는 삶은 자기계발이 아니에요. 잠재적 폭행이죠. 내 아픔을 어떻게든 알아채야 합니다. 언제 어떻게 누구로부터, 무슨 단어들로, 어투로부터 상처받는지를 알아채야 해요. 갑옷입고 이걸 알아챌 방법은 없어요.

느슨한 연결이요. 그건 연결이 아닐 겁니다. 그냥 회피죠. 서로 관계의 비용(취약성 노출)이 없는 관계는 연결되지 않아요. 그냥 이미지 게임이죠.

안전감-취약성 노출-연결감 은 하나의 루프 입니다. 중간에 하나라도 빠지면, 이 루프는 생성되지 않아요. 이 루프는 매우 탄성적(elastic)인데, 느슨함과는 물리적으로도 모순되죠. 종이컵 전화에서 실이 느슨하면 소리가 전달되지 않듯이요.

상대가 준 지적이든, 날 위해 한 소리든 그 무엇이든 나에겐 거절할 권리가 있습니다. 거절할 힘은 다른 차원입니다. 어쨌든 거절했을 때, 비로소 그 관계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거절한다고 방패를 휘두르는 건 거절이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고요. 물론 거절이 안통해서 좀 세게나가는 건 가능.

내 경계선 바깥 까지만 밀어내는 게 거절입니다. 내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경우 없는 겁니다. 물론 경우 없는 사람과도 살아야 할 때가 있으니, 그 뒤로는 좀 피해도 괜찮겠죠.
내 경계선(boundary)를 모르겠다고요. 네. 아직은 모를 수 있어요. 이건 learning by doing으로 알아갈 수 있습니다. 작은 거절을 해보면서 알아갈 수 있고요. 그렇게 내 경계의 허용폭을 찾으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두려움, 슬픔, 즐거움, 기쁨, 흥분, 당황스러움, 압도당함 등을 누리면서요.

어쨌든 피드백이라 부르든, 조언이라 부르든, 스크래치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버드 피드백의 기술-제목이 안티인 책. 절판이지만 중고를 뒤지면 나옵니다.

정리하면요, 누군가의 말(피드백 등)에 상처를 받는 걸 부정(deny)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때가 기회인 것은 맞습니다. 이 상황에서 내 감정을 드러내면(폭발X) 상대는 또 부정하기도 쉽죠. 그런 의도 아니었다고요. 의도와 관계없이 내 감정은 내 감정인 거죠. 이 루프를 만들기 어렵죠.
그래서, 갑옷이 편할 겁니다. 네. 갑옷을 벗는 건 용기가 필요한 겁니다. 두렵지만 나아가보는 일. 힘들지만 시도해보는 일. 이 fear walking을 거치지 않고, 변화는 이뤄지지 않아요. 그 변화없는 서로의 방어상태를 저는 20세기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멘탈 갑"이 어딨어요, "갑옷 갑"만 있죠.

ps. 누군가 상처주는 말에 "유머"로 승화시키는 것에 대해, 이건 2가지 경우가 있어요. 1. 방어기제. 2. 그냥 자존감 상태라서. 이걸 구분하는 건, 지나고 보면 압니다. 지난 후에 여파가 있어서 계속 곱씹게 되거나, 이불킥하면 1번. 2번은 그냥 별 여파 없죠. 너와 나는 다르다 정도니까.

ps2. (이건 잠시 타래와 벗어난 얘기) "승화"는 방어기제 중 하나로 분류되잖아요. 방어기제도 간혹 긍정 부정으로 나누는데, 이것 또한 질문해봐얄 지점. 방어기제 자체인 것이 중요하지, 왜 긍/부정을 나누는 것인지. 긍정이면 다르고, 부정이면 다른가요. 결국 방어기제임이 중요한 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