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잘 자, 푼푼




3권

특별히 바라지도 않은 기적을 '우연'이라고 한다면 그런 우연이 이끄는 대로 몸을 기대려는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아름답지 않아.



4권

마음이 편해졌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를 짓눌렀던 건 그 때 소녀를 구하지 못했던 죄책감 때문이었지만 그 모든 게 한낱 걱정에 불과하게 된 지금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무겁고, 힘들다. 등줄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깨달아버렸다. 나는 죄책감 덕분에 살아왔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손가락 하나 허우적대지 못하고 그저 숨을 죽이고 죄의식에 혼자 괴로워하면서 내가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 행위 '그 자체'가 내가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였던 것이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나 있지…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같은 꿈을 꿔. 누군가를 계속 기다리는 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물가에서, 계속 누군가를 기다리는 거야. 몇 년이건, 몇십 년이건 계속.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를 계속 바라보던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돼. 완전히 낯선 사람인데도, 난 너무 기뻐서 다리를 절뚝이면서 그 쪽으로 달려가. 그런데 잘 보니, 그건 수면에 비친 내 모습이었어. 왠지 모를 외로운 기분으로… 잠에서 깨곤 해. 죽음의 순간에서도 이런 식으로 혼자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막막해져.

기억 나? 초등학생 때 썼던 작문. 나는 커서 영화배우나 가수나 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었지.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줬으면 해서 그런 것 같아. 그렇지만 지금은 아냐. 딱 한 사람이면 돼. 딱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빠짐없이 전부 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 그 사람과 단 둘이 있을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만약에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야.



5권

만약에, 모르면서 아는척 하는 것이 어린애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어른이라면 나는 아직 어린애일지도 모른다고 푼푼은 생각했습니다.


손님은 머잖아 돌아갈 사람이잖습니까. 그렇죠? 돌아오길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제가 바보여서 잘은 몰라도, 죄를 지은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벌이 아니라 용서받는 아픔을 아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6권

당신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에요… '이젠 괜찮아'라고… '미안해'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만약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넌 걱정하고 슬퍼할 자격이 없는거야….



7권

"아뇨. 그립거나 다시 시작해보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그 쪽이 하는 말이 너무나도 불쾌해서 불편해 죽을 지경입니다."



8권

네가 매사에 얼마나 신중한지는 잘 알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만 다닐 순 없는 거야. 네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야 알 길은 없지만, 아무에게도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혼자서만 지내고픈 네 마음은 나도 잘 이해해. 그치만 너도 알다시피 세상은 혼자서도 충분할만큼 그렇게 단순한 곳은 아니야. 무엇보다 넌 그정도의 깡도 없잖아. 내 말 틀려?


"사치… 넌 정말이지 너무나도 친절하고 착해서, 그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따스하게 대해줄 것만 같은 멋진 여자야…. 그런 너에 비해 나는, 항상 일만 그르치는 밑바닥 인생일 뿐이야… 그러니까 자꾸만 나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주면… …너를 좋아하게 될 것만 같단 말이야…. 말하지 않으면 내가 못 참을 것 같아서 말해버린 거니 방금 한 말은 잊어줘… 난 이미 지금의 우리 사이에 있어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9권

네가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을진 대충 알고 있으니까 그냥 내가 먼저 말할게. 오노데라가 부담 가질 필욘 없어. 울고 싶다면 눈물샘이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울어도 좋아. 네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생각하고 움직이기만 한다면, 내가 언제나 네 옆에서 널 지켜봐 줄 테니까.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건 말이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필요가 없어졌을 땐 팔 수도 없다는 소리다.



10권

푼푼은 나 좋아해?

"좋아해."

잘됐네. 그럼 나도 좋아해.



11권

"…이제 다 괜찮아."


날 혼자 두고 떠나지 마….



12권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서 떠들어봤자 하나도 소용 없다니까."

미안해….

"…하지만, 그게 얼마나 부질없던 간에, '만약'이나 '만약에 아니라면' 따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게 되는 날이 왔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 …있잖아, 나 지금 이 순간이 정말로 행복해. 그리고 널 만나게 된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 아이코…. 고마워."



13권

나를 잊지 말아줘.


나… 굳이 너한테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서야 왔냐고 묻지는 않을게. 그래도 언젠가 말 하고 싶은 때가 오면, 네 편에서 들어줄테니 부담 없이 얘기해줘도 돼. 그리고 만약 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문이 막히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너 대신 그 사람들과 얘기해줄게.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리든지간에, 내가 항상 기다려 줄 테니까. 그럼… 내일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