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메디아스 레스
소설이나 영화에는 "인 메디아스 레스 (in medias res)"라는 수법이 있습니다. "사건의 도중"이라는 뜻인데요.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설명하지 않고, 바로 일이 벌어지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007 영화들이 대부분 이렇습니다. RPG에서 사용하면 특히 좋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좋은 점이란 바로 재밌는 부분에서 시작한다는 거지요. 술집에서 퀘스트를 받을 일 없이 바로 오크들의 습격을 받으면서 시작합니다. 출근해서 신고를 받아 출동할 필요 없이 바로 살인 현장에서 시작합니다. PC들이 만나는 장면은 생략하고, 바로 함께 위험에 빠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야기에 바로 추진력이 생깁니다. 당장 일어난 일이 있고, 거기서 해야 할 것들이 명확하기 때문이지요. PC들이 왜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만났는지 같은 것은 나중에 정해도 되는, 당장 플레이를 시작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정보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던전월드에서는 모두 던전 판타지 액션 모험을 하러, 크툴루의 부름에서는 호러 수사를 하러 모였기 때문입니다. 대충 무엇을 할지는 캐릭터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정해져 있거든요. 많은 경우, 동기와 경위는 어차피 하게 될 일에 개연성을 부여할 뿐입니다.
일단 긴박한 상황을 만들고 그것이 숨을 돌릴 수 있을 정도로 해결되면, 그런 정보는 그때 가서 회상으로 만들어도 괜찮습니다. 이미 이야기에 추진력이 충분히 생겨서, 당장의 이야기를 더 진행하고 싶어 그조차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 메디아스 레스를 적극적으로 권하는 작품으로는 던전월드와 아포칼립스 월드가 있습니다. 사전 준비를 최소화하는 것이 이런 작품의 한 가지 의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설정을 할 시간에 액션을 하고, 플레이를 통해 알아내라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