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

no defence

오선지 2019. 8. 30. 15:49

목에 뭐 닿는 걸 엄청 싫어했었다. 겨울에 교복 안에 목폴라 입는 게 너무 예뻐보여서 그렇게 입어봤는데, 목 부분을 자꾸 잡아당겼던 기억이 난다. 묘하게 거슬리는 듯 불편했던 감촉 때문에… 그 때는 내가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느낌을 받는지, 나에 대해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었다.

이게 더 심해진건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파악된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점점 '나는 목폴라를 못 입는다'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했다. 그게 감각조절장애의 한 유형이란 걸 알게 된 건 작년이었다. 그 전까지는 나도 '태아 때 탯줄에 목이 졸린 적이 있어서 그런가' 라는 추측만 하고 넘어갔었는데… 사람이 참 재밌는 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더라도 문제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편해지는 부분이 있다. 확실한 것, 믿고 싶은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속성이라고 생각했기에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부분. 심지어 곰곰히 생각해보면 '에게 문제가 있다'라는 게 확실해진 것임에도 마음 속 깊이 안도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이 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내 감각에 대한 민감성이 얼마나 되냐면 촉각의 경우 목폴라뿐만 아니라 그냥 유넥 티를 입어도 쇄골 쪽에 부담스럽게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기본적으로 있고, 잠들기 직전이나 조용한 곳에 있을 때 같이 다른 감각 자극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더 심해져서 아예 티를 벗고 자거나 턱 쪽으로 끌어당겨놓고 잔다. 벗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냥 어쩔 수 없이 티의 목 부분을 막 매만지거나 하는데 한 번 불편함이 느껴지면 마치 숨 쉬는 걸 의식하게 되는 것처럼 계쏙 신경쓰이게 돼서 아주 죽을 지경이다 

겨울에는 그래도 옷이 너무 예쁘니까 폴라를 입을 때도 있긴 한데 그 날은 하루종일 후회함


음 이것도 촉각 방어에 해당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모르는 사람의 접촉도 엄청나게 민감해하고 거슬려하는 편인데 가령 지하철에 앉았을 때 옆 사람이 자꾸 팔을 움직여서 옷깃이 팔에 닿을 때라든가… 옷과 옷 간의 접촉이라도 닿기만 하면 엄청 신경이 곤두서게 되어서 가끔은 그냥 안 앉고 서서 갈 때도 있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종종… 어쩌면 자주……


청각의 경우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귀를 날카롭게 찌르는 느낌이라든가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고 이게 더 민감해지면 일상적인 사람 떠드는 소리나 생활소음 정도에도 되게 민감해져서 이어폰 끼고 다니는 게 버릇이 됨

시각적인 것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눈에 들어오는 걸 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 인생이 총체적 난관이네요


아무튼 요즘 들어 이런 내 예민성이 극도로 날카로워져서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고 부정적인 생각을 줄이려고 노력할 때도, 거기에 그냥 굴복할 때도 있었는데 어제 확실히 느꼈다. 요즘에 대인관계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내가 스스로 생각하던 것보다 내가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걸…

내가 받아들이지 못 할 정도의 무게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나는 내가 그 정도로 힘든지 몰랐고 그렇지만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고 그래서 그걸 풀 곳이 필요했던 거다. 그게 예민성이 더 예민해지는 식으로 방어기제처럼 작용한거고 남한테 피해는 안 주지만 나를 깎아먹는 식으로 나름의 해소를 하고 있었던 거라고.

뭐 이렇게 해서 당장 해소되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촉각방어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와는 다르게 문제와 원인 파악은 물론 해결법도 알았으니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 게 있었다. 그냥 나는 혼자 푹 쉬는 시간이 충분히 필요한 거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최대한 줄이고, 가끔은 나가서 걷기도 하고.

이번 주말에는 한강에 가서 자전거를 타거나 사진을 좀 찍고 올까 싶다. 더 이상 나를 깎아먹고 싶지 않다. 남 헐뜯기를 가장한 스스로 상처주기는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