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염증

오선지 2013. 9. 13. 18:26
역경이 경력이라는 말,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가 된다는 말, 아이고를 다시 읽으면 I go가 된다는 말.
 
이런 말들이 싫다. 말장난스러운 재치를 뽐내는 말들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 재치에 매달리다보니 깊은 의미가 없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가난이 아름답다는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 가난에 처한 (가령 겨울철 전단지를 붙이러 다니며 곱은 손을 지하철 화장실 온풍기로 녹이곤 하는) 사람에게는 역겨운 소리다.
 
왜 미움과 마음이 같은 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외면되는가.
사람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라고 말하면서, 어째서 사람이 아니라 그가 내게 베푼 선행을 사랑하는 것은 비판하는가.
어째서 아픔을 담고 있는 소설에 대한 소위 잘나가는 동료 소설가들의 서평은 '...그럼에도 삶에 대한 따뜻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따위로 끝을 맺는가.
 
고난을 고난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든 아름다움이나 행복으로 연결지으려는 시도에 염증이 생긴다. 지겹다. 순수하게 악과 절망을 노래하는 소설을 괴로워하며 읽고 싶다. 이것이 너무 큰 기대라면, 적어도 절망을 직시하는 것이기만 해도.
 
긍정적인 시각은 분명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 있어서는 부족하다. 인생은 페이스북과 달리 좋아요 버튼만 있는게 아니라는게 문제다.
 
도저히 좋다고 말하지 못할 때,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압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픈 슬픈 배고픈 상황이,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마치 큰 잘못처럼 여겨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생의 이상적인 정답이 널리 수용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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