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py

별 -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

이 소설은 신앙을 제재로 삼아 유신론과 무신론을 감동적인 필체로 다룬 것입니다. Arther C. Clarke는 이 소설로 56년 휴고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예전에 TV 환상특급에서 방영하기도 했읍니다.





--------------------------------------------------------------------------------

바티칸 교황청까지 아직 3천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신이 창조한 자격이 있다고 굳게 믿어온 것처럼, 나는 한때 이 광활한 우주도 신앙의 위대한 힘은 어쩔 수 없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역시 신의 영광을 받고 탄생했을 어느 피조물의 운명을 알게된 뒤, 그동안 흔들림없이 지켜왔던 나의 믿음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우주선 객실 안(마크 6) 컴퓨터 위에 걸린 예수의 십자가상을 바라보면서, 난생 처음으로 저것은 그저 공허한 상징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에 잠겨 있는 것이다.

아직 아무에게도 이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를 속이거나 할 수는 없다. 문제의 자료들은 끝없이 긴 마그네틱 테이프와 수천 장의 사진에 담겨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과학자들은 손쉽게 그 자료들을 분석해 낼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는 기독교 신학사의 오점으로 남아 있는 몇몇 기록들처럼 그 자료들에 담겨 있는 진실을 왜곡하거나 숨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다른 승무원들도 허탈한 심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난 그들이 도대체 이 엄청난 아이러니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신앙을 갖고있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내게 무신론을 주장하면서 차마 이 일을 거론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주선 안에서는 지구를 떠나는 순간부터 비록 사사롭고 어디까지나 점잖은 것이지만 꽤나 심각했던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이 있었다. 우주선의 수석천체물리학자인 내가 예수교(Jesuit)의 신부라는 사실은 그들 무신론자 승무원들에겐 몹시 재미있는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특히 선내의사인 챈들러 박사같은 경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대개 의사들은 왜 그렇듯 철저한 무신론자일까?) 이따금 나는 그와 관측실에서 마주치곤 했다. 관측실은 조명이 어둡기 때문에 바깥의 별빛들이 마치 무한한 영광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찬란한 별빛으로 가득찬 창밖을 말없이 바라보곤 했다. 몸으로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우주선이 천천히 자전하고 있었으므로 창 밖의 우주는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저어, 신부님."

그는 머뭇거리다 말을 꺼내곤 했다.

"저 우주는 이제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아마 영원히 존재해 나가겠지요. 그리고 분명히 무언가가, 또는 누군가가 이 우주를 창조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 창조주가 우리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믿으십니까? 과연 창조주가 이 보잘것 없는 우리를 각별히 돌보아 주겠습니까? 솔직히 저는 이 점이 가장 궁금합니다."

논쟁은 이렇게 시작하기 마련이었다. 창밖에는 수많은 별들과 성운들이 우주의 침묵 속에서 천천히 우리를 스쳐가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승무원들에겐 심심치 않은 화제거리가 되었지만, 사실 나는 매우 곤혹스런 입장이었다.

나의 논문이 [천체물리학회지]에 세 편, 그리고 [왕립천체물리학회보]에 다섯 편이나 수록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를 예수교 신부로만 여길 뿐, 과학자로는 대접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오랜 동안의 연구 생활과 학문적 업적이 나를 저명한 과학자로 알려지게 했다는 사실을 말하곤 했다. 물론 성직자가 동시에 뛰어난 과학자인 경우는 드물지만, 18세기이후 나와 같은 인물들이 천문학과 지구물리학에 기여한 바를 고려해 보면 그 적은 수에 비추어 보아 결코 과소평가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불사조(Phoenix)]성운에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 돌아가면, 과연 수천년에 걸친 기독교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일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처음에 그 성운에 그런 이름을 붙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몹시 어울리지 않는 이름임엔 틀림없다. 만약 그 이름에 어떤 예언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앞으로 수십억년 동안은 입증될 수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성운]이란 말조차도 오해될 여지가 있다. [불사조]성운은 글자 그대로 우주에 퍼져있는 거대한 먼지 구름이 아니라, 아주 작디 작은 잔해에 불과하다. 성운이란 원래 은하계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먼지 구름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장차 태어날 별들의 원재료가 되는 이 거대한 먼지 구름들과는 달리, [불사조]성운은 우주적인 규모에서 바라보면 정말로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어느 별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엷은 가스막에 지나지 않았다. 또는 이전에 한때 별이었을지도 모를 흔적이거나.....

분광측정기의 관측기록들을 놓아 둔 곳 위 벽에, 루벤스가 조각한 로욜라(예수교의 창시자)의 상이 나를 비웃듯이 내려다 보고 있다. 성인이시여, 당신이 겪은 세상은 이 우주에서 지극히 작은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여 그처럼 깊은 신앙 세계를 만들어 내셨나이까? 당신이 이룩한 신앙이 나의 모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의 신심은 몹시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녕 우리의 신앙에 위기가 닥친 것입니까?

당신꼐서는 물론 세상을 널리 살펴보셨겠지만, 저는 당신이 천여년 전 처음으로 예수회를 세울 때 상상했던 세계보다도 훨씬 더 멀고 색다른 곳들을 여행했습니다. 이처럼 먼 곳까지 날아왔던 지구의 탐사선은 한 척도 없습니다. 인류가 뻗어나가고 있는 우주에서 우리들은 최선두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불사조] 성운으로 진로를 잡아 마침내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귀로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중입니다. 전 솔직히 그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싶지만, 그저 속절없이 당신의 이름만을 되뇌이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일천 년의 시간과 수천 광년의 거리를 둔 채.

당신이 들고 있는 책에 새겨진 글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DEI GLORIAM: 예수회의 모토)]
그러나 이제 저는 더 이상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발견했던 것들을 당신도 보셨다면, 그래도 당신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물론 우리들은 [불사조]성운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은하계 안에서만 해도 일년에 백여개가 넘는 별들이 푹발하는 것을 관측할 수 있다. 보통 때보다 수천배나 밝아진 채로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 동안을 빛나다가 이윽고 폭발한 잔해들이 흩어지면서 우주의 암흑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흔히 우리들이 신성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별의 최후는 우주에서는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들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달의 천문관측소에서 일하고 난 뒤부터도 이러한 현상을 열 번이 넘게 관측하여 분광사진자료로 기록해 왔다. 그러나 3백 년, 또는 4백 년에 한번 꼴로 신성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매우 밝게 빛나는 별이 나타날 때도 있다.

이것은 이른바 수리샛별(초신성)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자기가 속한 은하계 전체의 다른 모든 별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수도 있다. 서기 1054년에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당시 수리샛별이 나타났음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5백년 뒤, 1572년에 카시오페아 자리에서도 수리샛별이 나타나 밝게 빛났다. 그 별은 너무나도 밝았기에 대낮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 뒤에도 모두 세 변에 걸쳐 수리샛별이 관측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 탐사대의 임무는 그런 별의 잔해를 찾아서 폭발과정을 거슬러 추정해보고, 가능하면 그 원인까지도 알아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둥그렇게 겹겹이 싸여 있는 가스층을 천천히 통과하여, 이미 6천년전에 폭발했지만 아직도 팽창을 계속하고 있는 [불사조]성운의 중심부로 다가갔다. 가스층의 온도는 매우 뜨거웠고 강력한 자외선까지 내뿜고 있었지만 우리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니었다. 별이 폭발하게 되면 표면을 덮고있던 외곽층은 별의 인력을 뿌리치고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태양계보다 수천배나 큰 거대한 가스구가 되어 폭발한 별의 잔해를 들러싸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폭발하여 불타버린 잔해들 가운데엔,우리가 백색왜성이라고 부르는 환상적인 별이 생겨나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 하얀 난장이별은 지구보다도 작은 크기이지만, 질량은 오히려 수백만 배나 더 나가는 밀도가 매우 높은 별이다.

우주선 주변을 둘러싼 가스층들은 밝게 빛나면서 우주공간의 영원한 밤을 서서히 몰아내주었다. 우리들은 우주의 시한폭탄이 폭발한 잔해 한가운데로 계속 접근했다. 폭발은 수천년 전에 발생했지만 그 잔해와 가스들은 아직도 눈부신 불꽃을 내며 계속 우주공간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워낙 천문학적인 규모의 엄청난 폭발로 말미암아 이미 파편들은 수십억 마일이 넘는 거리를 날아갔기 때문에, 육안으로 느낄 수 있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10년 정도는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겨우 파편의 움직임이나 가스층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폭발의 규모는 상상만 해도 너무나 압도적인 것이었다.

우주선의 추진장치들을 다시 한번 점검한 뒤, 우리들은 작지만 엄청난 인력을 가진 중심부의 하얀 난장이별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 별은 한때 우리의 태양과 같은 평범한 항성이었지만, 폭발과 함께 단 몇 시간만에 모든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그 잔해를 백만 년 정도 계속 흩뜨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한순간에 날려버린 에너지들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지금은 잔뜩 웅크리고 있는 욕심장이처럼 조그마한 난장이별이 되어 있었다.

행성을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설사 별이 폭발하기 전에 그 주위를 도는 행성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최초의 폭풍으로 이미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며, 혹 찌꺼기가 남아있더라도 곧이어 닥친 별의 잔해들에 쓸려 온전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우리들은 낯선 태양계에 접근할 때면 항상 그러듯이 자동 탐색장치를 가동시켰는데, 뜻밖에 매우 먼 거리에서 공전하고 있는 작은 행성 하나를 발견했다. 이 무명 행성은 우리 태양계의 명왕성처럼 쇠락해버린 이 별의 가장자리를 외롭게 돌고 있었다. 태양에서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기에 생명이 피어날 수도 없었겠지만, 그 대신 파국의 운명으로부터는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폭발의 화염은 이 행성의 표면을 불태우면서 이전에 행성의 표면을 덮고 있던 얼어붙은 대기층을 모두 우주공간으로 날려버린 듯했다. 우리는 그 행성에 착륙했고, 그리고 동굴을 발견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동굴은 반드시 눈에 뜨이도록 되어 있었다. 동굴 입구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선돌은 별이 폭발할 때 윗부분이 녹아 무너져 내렸으나, 아무튼 우리가 그 행성에 접근하여 처음 찍은 사진을 보면 지성을 가진 어떤 존재가 구조물을 남겼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잠시 뒤 우리들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방사능이 나오는 것을 포착했다. 그 방사선들은 지표 밑에 어떤 물체들이 파묻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설사 동굴 위에 세웠던 안내탑 같은 것이 날아가 버린다 해도, 이 방사능만큼은 절대로 없애버릴 수 없는 확실한 표식이 된다. 가없는 우주공간으로 언제까지나 퍼져나가는 메아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주선을 마치 과녁 한가운데 꽂히는 화살처럼 정확히 그 지점에 착륙시켰다.

동굴 입구의 안내탑은 아마도 처음 세워졌을 때에는 일 마일 정도의 높이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본 것은 다 타고 녹아내린 양초처럼 바닥에 뭉개져 붙은 모습이었다. 마땅한 장비가 없었으므로 녹아붙은 암석을 뚫고 들어가는 데에는 꼬박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들은 대부분 고고학자라기보다는 천문학자였지만 아무튼 큰 어려움 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우리들은 애초의 탐사 목적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태양에서 엄청나게 먼 이 외딴 행성에 이처럼 방대한 유적을 남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어었을 것이다. 이 외로운 유적이 의미하는 바는 따라서 오로지 하나뿐일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의 태양이 머잖아 폭발할 것임을 미리 깨달은 어느 발달된 지성종족이, 스스로 문명과 문화와 존재의 흔적을 영원히 남기고자 최후로 건설해 놓은 거룩한 비명(碑銘)인 것이다.

동굴에 남아있는 모든 유적들을 낱낱이 조사하려면 아마도 앞으로 몇 세대 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듯 했다. 이들의 태양은 폭발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파국의 조짐을 드러내며 경고를 했을 것이므로, 유적을 건설한 자들은 그나마 넉넉한 준비기간을 가졌던 모양이었다. 그들이 보존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과 그들의 지성이 남긴 모든 업적들을 종말의 날이 닥치기 전에 이 머나면 변경 행성으로 날라온 것이다. 누군가 다른 외계의 지성인들이 유적을 발견하기를, 이 우주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비장한 안타까움으로 이 유적을 남긴 것이다. 과연 우리 인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들처럼 흔적을 남기려 애썼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운명에 절망하여 체념한 나머지 결코 누려보지 못할 미래를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을까?

그들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들은 자신의 태양계 안에 있는 행성들로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문명을 발달시켰지만, 안타깝게도 항성간의 머나먼 우주공간을 건너가기에는 기술이 부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과 가장 가까운 태양계는 100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하긴 항성간 우주 여행 기술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대피할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몇 백만 정도였을 것이 오히려 그들로서는 다 같이 최후를 맞는 것이 덜 가슴아픈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각 등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인간들과 놀라울만큼 닮았지만 설사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문명에 감탄하고 또한 그들의 운명에 몹시 슬퍼했을 것이다. 그들은 수천 개의 화면기록 레코드와 영사장치를 남겨 놓았으며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들로 장치의 사용법을 설명해 놓고 있었다. 또한 그다지 어렵게 보이지 않는 그들의 문자로도 설명을 달아 놓았다. 우리들은 레코드들 중에서 여러 개를 직접 틀어 보았다. 근 6백여년만에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그 기록들은 그들이 여러모로 우리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따뜻한 종족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네 문명의 좋은 면만을 모아다가 남겨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라도 흠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보더라도 그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평화와 행복이 충만했던 것 같았다. 그들의 도시는 어떤 인간이 보더라도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일하는 모습과 노는 모습을 보았으며, 여러 세기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들리는 그들의 음악소리같은 말소리들을 들었다.

한 장면은 아직도 내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신비한 파란 색의 모래로 뒤덮인 해변가에서 지구에서처럼 한 무리의 아이들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하는 파도와 어울려 노는 모습이었다. 마치 회초리처럼 생긴 신기한 나무들이 해안을 따라 줄지어 서 있고, 매우 커다란 동물 하나가 아무의 주목도 받지 않은 채 얕은 물에서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 속으로 점점 저물어가고 있는 태양이 있었다.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언제까지나 친근하고 따뜻하게 감싸줄 것만 같았던 태양이 비치고 있었다. 그 태양이 어느날인가 무서운 배반자로 둔갑하여 이 순진무구하고 행복한 종족들을 일순간에 멸망시켜 버린 것이다.

우리들이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향수에 민감한 상태만 아니었어도 그토록 깊게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탐사대원들 중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미 멸망해버린 외계문명의 유적같은 것을 접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이 종족의 비극은 정말 특별한 것이었다. 지구에서처럼 어떤 나라나 민족이 흥하고 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우인 것이다. 지성을 가진 한 종족 전체가 생존자 하나없이 완전하게 멸절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이 쌓아 올린 모든 문명과 유산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과 조화시켜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탐사대의 동료들은 내게 이 문제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고,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답을 했다. 성인 로욜라시여, 아마 당신이라면 저보다 좀 더 나은 대답을 해 줄 수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저는 당신이 남긴 책[심령수업 (Exercitia Spiritualia)] 에서 도움이 될만한 구절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결코 악마의 종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종교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다면 과연 어떤신을 섬겼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수천년의 시간을 넘어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그들 삶의 행복하고 사랑스러웠던 모습을 보고나니, 폭발해 버리고 만 그들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감동이 북받쳐 오릅니다. 그들은 정말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그들은 멸망해 버려야만 했습니까?

이제 지구로 돌아가면 동료들이 내게 뭐라고 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우주는 애초부터 아무런 목적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생겨난 것이며, 우리 은하계만도 일년에 백여개의 별들이 폭발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의 어느 한 구석에서 이름모를 외계 종족이 순식간에 죽음의 길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종족이 역사가 평화롭고 착한 것이었든 악행과 부덕으로 가득찬 것이었든 파국적인 종말을 맞는 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며, 처음부터 신이 심판하는 정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국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물론 우리가 본 것들은 그런 논의와는 수평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성격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감정적인 느낌으로 말하는 것이지, 엄정한 논리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신은 자신의 행위를 인간에게 정당화시켜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우주를 창조한 신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파괴를 할 수도 있다. 신의 피조물인 우리가 감히 신을 향해 그럴 수 있다, 없다고 따지는 것 자체가 오만한 태도이다. 신을 모독하는 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애써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이 행복한 세계가 순식간에 불덩이 속으로 사라져 버린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나의 신앙심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할 즈음, 계산 결과 한 가지를 앞에 놓고 나는 마침내 새로운 사실에 직면했음을 알게 되었다.

별이 폭발한 뒤 그 잔해가 퍼져나가 성운이 된 경우, 직접 그곳에 가보지 않고서는 과연 그 별이 언제 폭발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불사조]성운에 도달한 뒤, 치밀한 관측 결과와 외곽에 홀로 남은 외딴 행성의 암석들이 녹은 연대를 측정하여 그 별의 폭발시기를 매우 정확하게 추정해 낼 수 있었다. 나는 그 별이 폭발하는 섬광이 지구에는 과연 언제쯤 도달했는지 정확히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우주공간으로 희미하게 흩어져 버렸지만, 처음 지구의 하늘에 나타났을 때에는 얼마나 밝게 빛났을 것인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의 동쪽 밤하늘에 아주 낮게 떠서, 마치 동방의 새벽을 알리듯이 아주 밝게 빛났을 당시의 그 별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젠 아무것도 의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옛부터 내려오던 신비가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오오, 하나님. 정녕 당신께서는 다른 수많은 별들중에서 하나를 택하실 수는 없었단 말입니까?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다 길을 잃은 동방박사들에게 방향을 인도하기 위하여, 이 평화롭고 행복한 외계종족을 송두리째 파멸로 이끌면서까지 베들레헴의 밤하늘에 동방의 별이 빛나도록 만드셨단 말입니까?

* 참고: 이 소설의 부제는 `동방의 별'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