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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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사와 진단 유무, 증상 등의 구체적인 부분은 나중에 의사한테 맡기면 될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내게 의사소통 면에서 무언가가 결여된 건 맞다. 진단명은 대략의 선일 뿐이고 사람마다 그 원인과 이유는 다를 것이며, 그렇다면 그건 어떤 것 때문일까, 정확히 어떤 게 어떻게 문제가 되는가가 궁금해졌는데 이건 나도 생각은 하고 적을 수는 있으니까? 이 부분에 대해 찾다가 좋은 생각들을 얻어서 내 생각과 함께 정리해본다.


2. 내 감정이 있는 것(심지어 나는 감정은 물론 사고도 깊다…고 생각한다)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나 공감하는 것은 별개의 분야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기적인가?

아니다. 의도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냥 이렇게 태어난 거다.


3. 사회성,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사회 자체가 그러한 이타적 태도를 기반으로 삼는 개념이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없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적으로는 아니다.

바로 '타이밍'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같은 말을 전달할 때 친구와 어른에겐 톤앤매너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갖가지 상황에서 통상적으로 행동하는 것, 반대로 어떠한 행동을 받아들이는 처리 속도와 판단력이 일반인보다 늦기 때문에 오해를 받을 때가 있고 스스로도 서툴고 어색하다고 느낄 수 있다. 공감은 할 수 있어도 적절한 표현을 못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공감력 자체의 결여로도 보일 수 있다는 것.

가령 영화를 관람할 때, 영화의 상황은 관람객의 입장에서 천천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반면, 실제 일상생활은 실시간이고 빨리 돌아가며, 내가 직접 당사자이기 때문에 처리 속도에 지장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나는 공감의 결여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 타이밍, 처리속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4. 감정의 깊이가 다른 사람보다 깊은 것은 나 같은 사람들의 특질인 것 같다. 사회성이 결여된 대신, 또는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은 자신의 내면의 감정이나 느낌, 가치관 등을 더 깊이 파고들고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게임이라고 치면 다른 사람들은 자기 감정에 1스탯, 커뮤니케이션에 1스탯을 찍는다면 나 같은 사람의 경우 자기 감정에 2스탯 전부 몰빵하는 식으로…. 그리고 이건 악순환인 것 같다.


5. 나는 지나칠 정도로 타인에 대해 정중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주로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가령 문 열어주고 기다리기, 계산 시 카드 두 손으로 주고 받기, 꼬박 꼬박 인사하기, 식사하고 그릇 정리하기 등으로. 그런데 이것은 나의 방어기제 혹은 처세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을 잘 못하고, 힘드니까 적당히 거리를 두고 벽을 쌓을 수 있는 행동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힘들기 싫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타인에 대한 배려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늘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뒤돌아보면 항상 뭐 하나가 빠진 듯한 삶이었다. 지켜본, 함께 했던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6. 그렇게 느낀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을,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나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정말 고마워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왜 고맙다고 자주 말하냐며 비난받고 싶지 않다.


7. 얼른 검사와 진단을 받고 싶다. 내가 어떤 진단명도 나오지 않았을 때 '그럼 나의 문제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게 될 때의 두려움, 그리고 진단명이 나왔을 때 '내 문제는 이거였구나' 하고 체계적인, 그리고 자기인정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기쁨이 마음 속에 있다. 물론 증상이 있다는 것이 무적권 좋은 것은 아닐 것이고 그런 자기인정 후에는 사회적인 인정의 문제도 남아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나는 사회라는 써클 안에 들어가고 싶고, 받아들여지길 필연적으로 원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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