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Screep
저는 1987년 포항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업을하시는 아버지와 정신지체1급 장애를 가지신 어머니밑에서
그렇게 3년을 살았습니다...
3살되던해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어렸을적일이라 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공을 주으러가다가 버스에 치엿다고 할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그렇게 전 왼쪽 다리를 버스에 깔렷습니다..
다리가 절단될뻔할만큼...과장되었을지 몰라두 정말 살이 하나두없이 뼈밖에 안남앗엇다고 하시더군요..
버스에 왼쪽다리가 깔렷으니..살은 다 없어젓을만두하죠..
아버지는 버스회사와 합의를 보셨습니다.
그떄당시 70만원인가로..현재돈으로 얼만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그돈으로 작은아버지와 술드시구..그렇게 돈을 다 쓰셧습니다.
합의금을요..
저는 그렇게 왼쪽다리가 없이 평생을 불구자로 살뻔햇습니다..
근데 가까스로 이모의 노력으로 4년간 병원신세를 진뒤 이식수술을 여러번(자세히 몃번받앗는지 모르지만
정말 많이 받은거 같습니다, 엉덩이살,허벅지살을 왼쪽 다리로 이식한거라 엉덩이 허벅지에도 흉터가 많이 있습니다.) 받구 퇴원을 했습니다..
4년간의 병원신세를 마치구 8살에 퇴원을 하였습니다..
아..참..제가 병원신세를 지고잇을때쯤..7살이 되던해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만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전 영문도 모른채..서글프게 울었습니다..어머니도 우셨습니다..정신지체1급인 어머니도..
그냥 같이 살고 있던 가족,,아버지란 사람이..나에게 무엇하나 해준거없고..어머니를 괴롭히고 때리고 
아내가 아닌 그냥 같이사는 여자로만 여기셨을지도 모를 아버지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셧는데도..그냥..그냥 하염없이 울었습니다..어린나이에
무엇을 알았기에....어머니도 무엇을 아셧기에..그날은 그렇게 아버지의 차디찬 모습을 보며 지나갔습니다..
다음날 아버지는 화장되어..뼈는 화장터 근처에 뿌려젔습니다.
그뒤로 그곳을 가본적도..근처에 가본적도 없습니다..어딘지도모릅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제기억속에서 희믜해져 가셨습니다..
8살떄..병원에서 나와 할머니댁에 갔습니다.
그때당시 할머니댁에는 외할머니와 사촌(가명:이준섭,외삼촌의 아들)과 외삼촌(어머니의 동생분)과 외숙모(외삼촌의 아내)가 살고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저를 비롯해 6식구가 그집에서 생활하였습니다.
당시 준섭이의 나이는 7살. 저는 8살로 제가 형이었지만
초등학교 1학년을 같이 들어가서 지금까지 우린 20살과 19살이 아닌 고3과 고3(현재 준섭이는 자퇴해서 고3은아닙니다.) 으로 친척을 넘어선
누구보다 친한친구로 지내고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몃달 생활하고있는데..
외삼촌과 외숙모가 이혼을 하셨습니다..(한2년쯤뒤에 제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던날 외삼촌이 술드시구 그러시더군요..제이름을 대시면서 OO의 엄마만 아니었어
도 내가 이혼까진안햇다고..어떻게 정신지체1급장애 가진 누나를 갑자기 집에 그렇게 같이 살수가있냐고..그러니 그렇게 이혼까지한거라고...자세히 듣지는 못
했지만..삼촌도 얼마나 속이상하셨을까요..2년동안 ..아니 지금까지도...얼마나 억울하실까요..정말 죄송합니다....정말죄송합니다..그렇게 준섭이의 가정에 평
화가 나와 어머니떄문에 꺠질줄은 몰랐습니다...죄송합니다....)
그렇게 1년정도를 할머니댁에서 생활하다가
도저히 저와 어머니를 책임질 형편이 안되셔서(외삼촌은 그때당시 버스기사인가 택시기사셨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이모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이모댁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모댁에서 몇일 지내다보니 동네 아이들과 친하게되어
성격상 아이들과 노는걸 좋아하고 친구 사귀는거에 꺼리낌이 없어
여러친구들과 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또당하였습니다..
머리 뒤통수와 자가용빽미러가 부딛치는 사고였습니다.
나를 놀리고 도망가는 친구녀석을 혼내주려고 쫓아가다가 그만 찻길을 걷다가 
자가용과 부딛친것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떄일이라 정확히 기억나네요..
하마터면 큰일날 사고였는데
다행히 조금의 출혈정도로 끝낫으니..
그렇게 2번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구 있습니다.
아참..라면 국물에 손도 디어서 오른손 6cm정도로 팔찌처럼 상처가 오른손을 감쌋습니다.
라면국물이 오른손을 타구 아래로 흐른거같습니다.
이거 역시 어렷을적 사고라 잘 기억이 안납니다..어머니가 라면 라면 하시면서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씀하시길래 라면국물로 인한 흉터라고 아직까지 생각하고있습니다.
여러번의 사고와 아버지의 돌아가심 외삼촌의 이혼 등등을 겪으며 전 초등학교 5년의 생활을 보냈습니다.(어머니는 초등학교 3학년 초에 다시 할머니댁에 가셔
서 저만 이모네서 생활을하였습니다. 어머니 보고싶다구 해서 방학때랑 주말떄마다 할머니댁에 스스로 찾아갔습니다. 버스타구 40분정도가야할곳을 초등학교 3
학년부터 5학년11월달까지 쭉 해왔습니다. 그냥 엄마얼굴보려고 그것만으로 행복해서 계속 그래왔습니다. 엄마못보는 평일날은 보고싶어서 하염없이 울기까지
했는데...지금 엄마와 같이 생활하고있는데 어렷을때의 보고싶던 감정은 잊혀진채 어머니께 정말 불효만합니다..정신지체1급이라구 무시하고..욕도..하고.중학
교 2학년떄는 심하게 어머니를 떄리기 까지 했습니다...어머니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전정말 죽어야 마땅합니다..어머니 죄송합니다...어머니..)
초등학교 5학년 11월달에 이모가 일본을 가시는 바람에..
저는 고아원에 가야할 처지에 노였습니다..(그런데 할머니댁에 갓을때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주말마다 다녔던 교회에 목사님께서 저의 사정을 알고 저와 어머니
에게 무료로 방을 주시겠다고 와서살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11월달에 어머니와 전 교회아래서 둘만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어머니와 이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1년이나 되었을까요..2년이나 지낫을까요 ..중학생이 되면서 어느덧 그토록 보고싶던 어머니에게
저는 설날에 친척분들이 어머니께 주신 돈이나 뜯고 어디가서 돈좀 벌으라고 소리치고 "엄마 내일 내가 돈벌어서 돈줄게 그러니 있는 돈 다줘"이런식으로 어머
니에 모든것을 빼앗고 안주면 욕하고..좀 머리가 커가니..어머니에게 손찌검을.....(죄송합니다어머니......지금도 눈물이 흐르네요..죄송합니다...어머니.....
머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제가....죄송합니다..아무리 정신지체1급이신..의료보험증이 파란색이아닌 흰색이신 ..장애인증을 가지고 계시지만..제 어머니인데
..어머니 죄송합니다..하염없이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어머니...사랑합니다...)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한뒤 목사님에게 정말 심하게 혼난뒤 잘못을 꺠달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의 나이로 아...내가정말..뭔짓을 한건가..꺠달았습니다..
그떄도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눈물이 마를 만큼 울었습니다..
그뒤로 어머니에게 다시는 손찌검같은짓은 하지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절대 그러지않을것입니다..아무리 화나도..절대 그러지않을것입니다..용서해주세요..
지금 글을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에게도 죄송합니다..이못난 저를 용서해주세요..
잠시..코좀 풀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중학교의 생활을 보냈습니다.
중학교에선 보통 평범한 아이들처럼 생활했습니다. 
단지 다른아이들보다 1년 늦게 들어온거
그게 정말 왼지 쪽팔리고 놀림거리가 될거같아 3년 내내 아니 초등학교떄부터 9년내내 숨겨가며 보냈습니다.
그러다 중3떄 어느아이가 제 학생증뒤를 보고말았습니다..
주민등록번호를 보면 나이를 알수 있어서 87년생이었던 저는 칼로 7자를 긁어서 안보이게 했습니다..
그아이가 외 여기 안보이냐고 너 1년 꿇엇냐?라고 해서..
어떻게 되다보니..그렇게 제가 1년 꿇은건 금새 퍼저갔습니다..학교 전체에
그치만 친구들은..정말 착했습니다.
꿇으나 안꿇으나 우린친구라구..
그렇게 중학교때 친구들은..정말..좋은친구들이었습니다...
(고맙다 친구들아 너네들 속인거 미안하다..정말 ..미안하다 친구들아 고맙다..)
중학교 생활을 마치구
내신이 50프로 정도 였던 저는 인문게를 가면 공부만해야하는데
공부를 하는애들은 과외에 학원에..전 그럴 형편이 못되어서
제스스로 고민해본뒤..
실업계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집근처에있는 실업계를
사촌인 준섭이와 함께(준섭이는 초등학교떄나 중학교떄도 정말 친하게 지내고 있어서 고등학교도 같은데
갔습니다.)OO정보산업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중학교떄 친구들은 한명도 고등학교에 같이 올라온애가없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아는애는 준섭이뿐..
하지만 친구사귀는거에 꺼리낌이없는 성격탓인지
1달도 안되어 반애들과 다 친하게 되었습니다.(학교마다 있는 침좀뱉고 노는아이들과도 전 직접적으로 같이 다니진 안지만 친분유지할정도로는 지냈습니다.)
중학교떄처럼 공부도했는데
고등학교 처음 성적표를 보니 반에서 1등이더군요..
당황했습니다..아니 황당했습니다..그리고 꺠달았습니다...
아..인문게가 아니니까 ..공부조금만해도 성적유지할수있구나..
그렇게 지금의 고3까지 반에서 1~2등 과에서 1~3등을 성적을 유지하며 내신을 관리하였습니다.
한 친구가 어느날 "OO야 너 나 1등하면 부모님이 OO사준댄다 성적표 주라 "이런식으로
장난90프로 진담 10프로 정도로 말하더군요..
그래서 전 당당히 1등 성적표를 목사님에게 보이면서
"목사님!!저 OO사주세요!!"라구 했습니다..
목사님은 알겠다구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성적표 나오면 또 그러구..또그러구..철이 정말 없었씁니다..하지만 그때는...기대감이 컸을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목사님이 절 부르셨습니다..
"OO야..너네 엄마 명의로 나오는 생활보조금 ..목사님이 관리하구있는데
너 이제곧 대학가잔니..그렇게 공부열심히해놓구(사실은 열심히한것도 아닌데..죄송합니다...) 대학도 못가면안되잔니
목사님이 니네돈 여기이렇게 통장에 모아놓고 있어 정말 너한테 줄꺼 안주고 아낄거아끼고 모으고 있어
근데 ㅇㅇ야..목사님 맘 알아줘야지..목사님은 이렇게 아끼고 ㅇㅇ 너 바르고 착하고 아끼고 남들 도와주는 사람 되게 키우고싶은데 ㅇㅇ도 그러길 원하지?..
미래를 생각해야지..넌 다른아이들과 다르잔니..아빠두 천국에 계시구 엄마도 일못하시니..ㅇㅇ 너가 아끼고 다른애들 하는거보다 열심히해야 대학도다니구 돈
도 벌어서 너 도와준분들에게 은혜도 갚지안겟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1시간동안 대화했는데..요약하면 저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 그것도 모르고 ..1등햇다구..자랑하고..공부도 별로안해놓고..실업게에서 1등한걸로..
공부열심히한척해서 목사님께 조르기나하고..
이글을 쓰기전인 방금도 목사님께 학교 과1등했다고 성적표 보여드리고 왔습니다..
목사님이 " 우리ㅇㅇ 정말 열심히하는구나 그래 열심히해서 꼭 좋은 대학가자!!ㅇㅇ 뭐 해줄까 목사님이 한턱쏠게~"
라구 하셨습니다..
"아니요 괸찬아요 저..화장지가 떨어진거같은데 화장지좀 사주실수잇으세요??.."
라구 했습니다..
근데 집에와보니 신발이 겨울용이라 하루신으면 발에 땀나구 냄새가나서 다시 목사님께 올라가서
"저기 목사님..죄송한데 신발..좀..."
라구햇더니 사모님께서
"너 신발산다고 돈가져가놓고 안삿니?.."
"아뇨 샀어요.."
"그럼 그거 뜯어젓니??"
"아뇨..겨울용이라 하루신으면 발에서 냄새나서요.."
"니형을봐라 (목사님 아들 말씀하시는겁니다.") 저거 군대가기전에 산건데..아직도 신구다닌다..
다 뜯어지고 빵구나도 신고다닌다.."
"............"
"그래 ..좀잇다 O마트 갈거니까 ..신발 사자..아니.. 이름잇는거 사야하지?(저 또한 꼴에 멋낸다구..이름잇는 신발아니면 안신을려고했습니다..이거또한 죄송합
니다..죄송합니다...)
"아니에요..음..그냥 신발 다음에 살게요"
하고 내려와서 이불뒤집어 쓰고 울었습니다..
하염없이..여러생각들이 나더군요..
아빠생각..엄마생각..내처지생각..목사님..가족..준섭..외삼촌.할머니..돈..가난..비굴..눈치..
목사님께 뭐 사달라고 말하기가 얼마나 눈치보이는지..
목사님께선 당당하게 말하라구 하시는데 정말 어렵습니다..
말도 잘안나오구..
학교에서 정말 말도잘하고 ..친구들과도 잘노는데..
외 목사님앞에선 그게안되는지..
만약 친아빠엿다해도 그랫을까..
눈치보엿을까..
이런저런생각..
슬픔..
등으로..하염없이 울다가
이렇게 와서 글을남깁니다.
울면서 쓰는글이라..
또 워낙에 글제주가 없는지라....
죄송합니다..
아직도 죄송할건 많은데..
중학교 2학년때 100만원 은행에서 가난한아이들에게 주는걸 혼자 50만원쯤 쓰다가 걸려서 뚜들겨 맞았습니다.......당시 유행하던 플레이스테이션과 무선RC카를사니 큰돈이 금방 사라지더군요..
초등학교떄 학교에서 무상우유급식대상자라 우유 꽁자로 주는거 이모한테 말안하구 우유값 9900원씩 매달 받아서 다쓴적도잇고..
목사님을 속으로 욕한적도..싫어한적도 잇고..
죄송합니다..정말..
준섭아..
미안하다..니가 자퇴하고..엄마없이 사는거
다 나 떄문이야..미안하다 준섭아..
정말..미안하다..
미안하다 준섭아..미안하다 준섭아....내가 돈많이 벌게..
너랑 같이 꼭 성공하자 준섭아..미안하다..
목사님..
목사님 생각 모르고..
돈 막막쓴거 죄송해요..
죄송합니다..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다른저인데 그런아이들과 똑같이 살려고했으니..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목사님..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지금뒤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어머니..
오늘따라 어머니가 너무 늙어보이십니다..
나이 50이신데..5살처럼 어리신어머니..
저를위해 빨래,설겆이 청소..더러운화장실청소까지 다 해주시는어머니..
화내는 저에게 어머니도 화내시구..
욕하는 저에게 어머니도 욕하시구..
원래 그러시지 안으셧는데
다 이못난 아들에게 배우셔서
하지도않던 욕하시구 해보지도안앗던 화까지 내시고..
죄송합니다.어머니..
제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어머니....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나이들수록 치매증상도 온다는데
어머니..치매들어도 제가 모시고살겠습니다.
몸 아프시면 이제부터 보살펴드리겠습니다..
또 죄송합니다..아프시다고하면 무시햇엇던 저를..용서해주세요..
이못난 아들을..
어머니 ..못드시고..
네..어머니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울게요 엄마..
엄마..조금만 더울게요........
엄마...
엄마 못먹고..
못입고 ..
못가본거
내가 돈벌어서 다해줄게..
엄마..
남들에게 손가락질당하고
무시당하는 정신지체1급 장애인 인 엄마...
아들에게 마저 무시당할때..얼마나 슬프셨을가..
엄마..
조금만 더울게요..
죄송해요..
곤히 잠드세요 엄마 소리내서울지않을게요..
이못난 20살짜리 아들....
엄마죄송해요..
고등학교 잘 마치구
대학가구
돈벌어서
엄마 호강시켜드릴게요..
사랑해요엄마..
너무나도..죄송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요엄마.....
죽지말구 저랑 오래오래살아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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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은 저 글 작성시에 제목 그대로 적었습니다.
 
 
오늘 7번방의선물을 혼자 보고 왔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지신 아버지의 관한 내용이더군요.
저 또한 정신지체장애를 가지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도중.. 문득 어릴적 다짐하며 적었던 메모가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뒤져봤습니다.
약 7년전 글이지만 다행히 백업데이터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저 글을 작성할 당시만해도 어머니께 효도하며 지내왔는데
세월이 지나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그 마음이 빗물에 씻겨가듯 사라진건 아닌가 후회해봅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한번.. 여기 오유분들 앞에서 다짐해보려 합니다.
순수한 아이같이 맑고 착하신 어머니께서 행복하게 웃으실수 있는 날을 많이 만들어 주겠노라고..
 
 
혼자 영화를 보고 오느라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다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봐야겠습니다.
 
 
글을 쓰는 도중에 아까 주문한 찜닭요리가 배달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입니다.
오늘 밤도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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